소탐대실 - 미디어법을 보는 눈(1)
소탐대실 - 미디어법을 보는 눈(1)
  • 이태복
  • 승인 2009.07.27 09: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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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가 없도록 하는 말이지만, 필자는 어느 정당에도 소속되지 않은 국민의 한사람일 뿐이다. 국민의 처지에 이 글을 쓰고 있다.

여권은 미디어법을 기습처리해 차기 총선과 대선의 불안감을 씻어줄 강력한 무기를 확보했다고 흡족해하면서 후폭풍의 진화를 위해 민생법안과 개각카드를 만지작 거리고 있다. 이른바 국면전환이다. 어쩐지 진정성은 보이지 않고 공학적인 냄새가 너무 난다. 반면 당대표의 단식결의와 결사저지를 다짐해온 야당은 여당의 강행처리에 따른 절차의 불법성을 문제삼고 시민사회세력과 함께 장외투쟁에 나섰다.

국민 대다수가 반대한 미디어법안의 직권상정을 통한 강행통과에 청와대와 여권이 목맨 까닭은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유력 언론사와 대기업들의 압박 때문이다. 원내 다수세력을 갖고 있는 집권세력이 야당에 밀리면, 국정주도는 불가능하다는 비판이다. 하지만 이건 앞뒤가 안맞는 얘기다. 민심이반은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창했던 그들이 아닌가. 그런데 왜 미디어법만은 야당을 눌러야 한다고 말하는가. 그리고 왜 지금 시점에 꼭 대다수 국민들이 반대하는 직권상정을 통해 밀어붙이기를 해야 하는가? 몇 개월을 끌었으니 더 시간을 소비할 수 없기 때문에? 소수 야당의 무조건 반대에 밀리면 다수결의 민주주의 원칙이 무너지기 때문에? 산적해 있는 국정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유력언론과 여권이 내세운 명분이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자기이득을 확보하기 위한 형식논리에 지나지 않았다. 미디어법 강행통과에 앞장선 의원들이 이들 매체 출신이었다는 점이 이를 증거한다.

그러면 여권은 왜 총대를 맸을까? 대선공약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대운하도 국민들이 반대해서 접은 여권이 아닌가. 서로 이해관계가 일치된 것이 있었던 것이다. 여당이니 그건 정치적 이해관계다. 그 내막은 고분고분하지 않는 방송3사의 방송행태를 방치했다간 재보선은 물론 지자체선거, 총선, 대선이 어렵고 가뜩이나 여론이 나쁜 상황에선 방송만이라도 확실히 우리 편이 장악해야 한다는 게 여권이 강행통과한 배경이다.

정부 여당은 헛된 믿음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방송을 장악한다고 해서 정권창출이 보장된다는 법은 없다. 이번 미디어법 논란과정에서 그동안 조, 중, 동으로 대변되는 유력언론들이 쌓아왔던 공정성은 땅에 떨어졌다. 자사 이익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인상을 줌으로써 언론의 신뢰성에 큰 상처를 남겼다. 이런 유력 신문과 대기업의 방송이 결합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 힘이 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의제를 선점하고 자신들에게 불리한 사실을 은폐축소시킬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이미 그런 일방적인 언론환경을 겪어왔다. 당연히 여론 독과점과 축소 왜곡, 과장에 대한 반작용이 일어나게 돼있다. 아무리 인터넷에 재갈을 물리고, 광범위한 통제를 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저항언론의 방법은 무수히 많다. 정보화시대 아닌가?

정부여당이 핸드폰, 카드수수료 등 몇 개의 민생법안이나 지역안배 개각을 통해 국면전환을 시도하겠지만, 민심수습이 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 개각이 공학적 계산이 앞서는 한, ,그 밥에 그 나물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고, 폭리를 취하고 있는 잘못된 요금체계와 거대기업의 독과점 이익을 손대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판단은 건전한 상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왜 모든 역대 정권들은 이상한 정치공학적인 국정운영계획을 짜고 경제성장의 수치만들기에 열중하는 것일까? 그런 공학적 접근으로 일시적인 성공을 거든 예가 많고 우리 국민들은 잘 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인가? 그건 분명 실패한 역대정권의 전철을 밟는 것인데, 그런 역사의 교훈을 국정에 반영할 줄 아는 지혜가 없는 것 같다.

국권을 잡았으면 모름지기 공명정대하고 당당하게 국민을 설득하고 소수야당의 의견을 귀담아 국정을 운영해나가야 국민들이 마음의 문을 여는 법이다. 이번 미디어법 일방통행은 여론을 장악하기는커녕 여론의 바다에 자살골을 넣은 꼴이다. 소탐대실이다.

이태복 / 전 보건복지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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