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더 많이 '엉뚱한' 곳에 쓰였으면...
시가 더 많이 '엉뚱한' 곳에 쓰였으면...
  • 강찬호
  • 승인 2009.11.28 2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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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시평생학습원 공개특강...도종환 시인, ‘시가 가르쳐 주는 삶의 지혜’ 강연





▲ 도종환 시인은 시를 통해 우리의 인생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물었다.(위) 강연 후 바쁜 일정이 예정되어 있음에도 시집을 들고 사인을 받고자 하는 시민들에게 사인을 해주었다. (아래)

바쁘게 달리는 이들에게는 멈춰 서서 보아야 할 것들을 볼 수 없다. 정상만을 목표로 쉬지 않고 산을 오르는 이들에게는 산을 오르고 내리며 중간 중간 마주하는 숲속의 풍경들을 볼 수 없다. 시는 그런 것이다. 멈춰 서서 주위를 잔잔히 응시할 때 마주할 수 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에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들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도종환 시인은 자신의 시 ‘흔들리며 피는 꽃’을 소개하며 이 시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길가에서 마주한 꽃이 문득 자신에게 말을 전해왔고 자신은 “그 꽃이 전하는 이야기를 베껴 적어 왔다”며 바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꽃이 전하는 이야기를 전달한 것이고, 그것이 시인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약한 존재이고 흔들리는 존재라며 내 요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도종환 시인은 이 시를 통해 흔들리며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잠시 삶에서 여유를 갖도록 하고 싶었다며 그것이 시 한편이 갖는 힘이라고 말했다. 시인은 시를 읽어주었고 시를 노랫말로 만든 노래를 들려주었다.

광명시평생학습원은 매월 시민공개특강을 진행하고 있다. 11월 28일(토) 오전 11시 평생학습원 강당은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도종환 시인이 전하는 ‘시가 가르쳐 주는 삶의 지혜’를 만나고자 많은 시민들로 채워졌다. 시골에 머물러 살며 만나는 집 주변의 풍경을 소개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과학’이 있는 그대로의 사실에 접근하는 것이라면, ‘시’는 사실과 현상보다는 그 이면의 ‘의미’를 찾고 발견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시골에서 사는 것을 권하기도 했고, 인간중심의 사고로는 자연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꽃은 진종일 비에 젖는데 꽃의 향기는 젖지 않는구나. 우리는 세월 속에 변하지 않고 꽃처럼 향기를, 빛을 유지하고 있나. 우리는 꽃 한 송이 보다 잘 살고 있는 것일까. 부패하는 음식인지, 시간이 가면서 더 잘 익고 발효하는 음식인지, 인생인지...” 도종환 시인은 비에 젖는 꽃을 보며 우리의 삶과 인생을 생각한다. 시인은 그렇게 생각하고 사고한다. 너무 쉽게 본성, 진의를 잃고 변해가는 인생을 보면서 꽃 한 송이 보다 못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는다.

시인은 ‘흔들리며 피는 꽃’에 이어 고정희 시인의 ‘상한 영혼을 위하여’를 소개했다. 어느 여판사가 수차례 절도를 한 20대 죄수에게 판결에 앞서 이 시를 읽어 주었다는 기사를 접했다며, 그 판사의 모습을 그려보라고 제안했다. 시가 ‘엉뚱하게’ 쓰인 경우인데, 이렇게 시가 자주 ‘엉뚱하게’ 쓰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세상이 시를, 문학을 통해서 조금씩 변해갔으면 좋겠다고 언급했다.

정호승 시인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소개하면서는 우리 인생에 고난과 좌절, 절망이 언제든 찾아오지만 왜 그 때 나에게 고난이 찾아오는 것인지 묻고 의미를 찾자고 제안했다. ‘그늘, 눈물’의 의미를 묻고 우리의 인생이 아름답다는 것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자신의 시 ‘담쟁이’를 소개했다. 이 시는 시인이 직장을 잃고 인생에서 힘들고 어려운 시절에 썼던 시로 스스로 가슴에 품고 어려운 시기를 지나 온 시라며 담쟁이가 어느 날 말을 걸어와 쓰게 됐다고 소개했다. 묵묵히 그리고 혼자가 아닌 여러 잎들과 함께 자신을 가로 막고 있는 담을 넘어서서 결국 아름답게 덮어가는 과정을 보며 우리도 서로 연대하고 협력해 어려운 환경을 넘어설 수 있는 마음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도종환 시인은 끝으로 ‘산을 오르며’라는 자신의 시를 소개했다. 산을 오르고 내리는 과정을 인생에 빗댄 시다. 시인은 어느 봉우리를 오르던 하찮은 인생은 없는 것이라며 그 봉우리를 사랑하고, 오르고 내리는 과정을 소중하게 여기자고 말했다.

담쟁이  
- 도종환 -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느낄 때
그 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여럿이 꼭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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