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곳은 당신 자리가 아닌데요.” 이숙용할머니
“그 곳은 당신 자리가 아닌데요.” 이숙용할머니
  • 강찬호 기자
  • 승인 2002.11.13 21: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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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말벗 등 상담을 위해 틈틈히 작성한 노트를 보여주고 있다>
<오른쪽상단:일일일선행, 하나님과의 약속> <오른쪽중간:수거한 유흥주점 스티커들> <오른쪽하단:애지중지 키워온 화분들>


“그 곳은 당신 자리가 아닌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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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고다 공원은 어르신들의 놀이터, 모임터다.
간혹 시간이 있을 때 컵라면 10개를 사가지고, 찾아간다.
점심을 먹기 위해 선 줄이 너무 길어 급식봉사단체에서 하는 배식을 받지 못한 할머니들이 생기곤 하는데,
그 분들과 같이 드시면서 이야기하고 어울리기 위해서다.

관악산 입구를 찾기도 한다.
관악산에 오르는 어르신들과 만나기 위해서다.
입구근처에서 쉬는 어르신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곤 한다.
건강을 상담하기도 하고, 말벗을 하기도 한다.
일부러 상담을 하기 위해 찾아 나선다.

어느 날은 전철을 타고 도봉산까지 다녀온다.
경로석에 앉아 있는 젊은이들이 있으면, 그곳에 앉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곳은 당신 자리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이숙용 할머니 눈엔 한국사회 젊은이의 일그러진 모습니다.
경로석을 점검 하면서 도봉산까지 왔다 갔다 하시는 거다.
이런 할머니를 보고 자녀분들은 걱정을 하신다고 한다.
혹 무슨 일이라도 닥치면 어쩌나 하고.

올해 69세다.
28년 동안 독일에서 간호사로 일을 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것이 1997년 5월.
처음 2년 동안은 적응이 어려워, 돌아가고 싶기도 했다고 한다.
한국사회의 환경-무질서와 혼란-이 독일에서와 너무 달라 어려웠고,
아직도 그런 한국 사회 모습에 저항한다.

이번 칭찬 주인공은 철산12단지에 거주하는 이숙용 할머니다.

“할머니들하고 있으면 그냥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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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용 할머니는 일주일에 두 번 광명시 치매노인 요양센터에 들러 자원봉사활동을 한다.
“할머니들하고 있으면 재미있다.”
최근에 가장 관심 있는 일이 치매노인을 어떻게 하면 잘 돌보는가이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누구나 치매가 올 수 있다.
본인도 예외는 아니란다.
그래서인지 이숙용 할머니는 어르신들의 건강에 관심이 많다.
건강과 관련하여 상담도 하고 말벗도 하면서 어떻게든 도움을 드리고 싶은 것이 마음이고, 그 일이 재미있단다.
휠체어를 밀고 산책을 하기도 하고, 놀아 주기도 한다.
음식을 날라 주기도 한다.
요양센타에서 치매노인을 돌보는 데 요청되는 일이면 무엇이든 하고자 한다.
독거노인에 대한 관심도 많다.
얼마 전에는 요양센타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직접 공연에 참여를 했다.
경기도 금빛평생교육봉사단에서 교육을 받고,
후속 활동으로 안양시자원봉사센타와 연계해서 예술단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 팀을 직접 초대해서 공연을 할 수 있도록 주선을 한 것이다.

최근에는 유흥업소에서 주택가에 뿌린 선전물 스티커 수거 활동을 하고 있다.
모아 놓은 스티커를 꺼내 보인다.
이렇듯 이숙용 할머니는 광명시에서 자원봉사활동에 대한 정보제공 등 도움을 받고 있기보다는
경기도금빛평생교육봉사단 활동을 통해서 안내를 받고, 참여를 하고 있는 편이다.
광명시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곳을 찾고 싶은데,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광명에서 더 많은 자원봉사활동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활동영역을 소개해 달라고 주문도 한다.
한편 이숙용 할머니는 ‘사탕 할머니’로 통하기도 한다.
금빛봉사단 활동을 하게 되면 일정 실비가 나오는데,
이 실비를 가지고 동대문에 가서 사탕을 사와 요양센터 할머니들에게 나눠주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경로당을 부지런히 찾아다닐 계획이다.
우선 살고 계신 12단지 경로당부터 시작하시겠다고 한다.
경로당에서 소일거리로 ‘화투’를 하는데, 이에 대해서 반대다.
화투를 하다보면 다투는 경우도 있고, 성격을 드러내기도 한다는 것이다.
치매예방이나 건강관리에 도움이 되는 다른 활동을 경로당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해볼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일일 일선행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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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이런 열정이 나오는지 자못 궁금하다.
혹 삶의 좌우명이나 원칙이 있는지 여쭈어봤다.
하루 일선행을 실천하고자 노력한다고 한다. 하나님과 자신과의 약속이다.
누가 보지 않더라도 그렇게 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기록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관련 사례를 들려주기도 한다.
이외에도 할머니는 노트를 종종 하고 있다.
건강하게 노년을 보내는 법, 건강을 돌보는 법, 살아가면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글로 적는다.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들려주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나중에 동생에게 책으로 엮어 주고 싶기도 하다.

그런데 한편으로 엉뚱하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활동을 하는 측면도 없지 않은데,
왜 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살아오신 삶의 여정에서 드러난다.
7남매의 맏딸로 대학을 다니던 젊은 시절 부친이 하던 일이 잘되지 않아,
다니던 대학을 중단하고 진로를 변경하여, 간호장교 과정을 밟았다고 한다.
그 후 결혼을 하고서도 남편의 사업이 여의치 않아 독일로 건너가 간호사 활동을 했다.
외국인으로서 독일 현지에서 적응하기 위해서는 강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당시에 독일병원에서 자신을 ‘깡패’라고 부르기도 했다.
다행히 능력을 인정받아 병원의 책임을 맡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독일병원 원장 내외가 한국을 다니러 오면서 집에 묵어가기도 했다.
군에서 경험, 독일에서의 경험이 69세라는 연세에도 불구하고,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불합리한 일에 대해 그냥 묵인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주문한다.
“젊어서 일할 때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 저돌적이어야 한다”고.

자녀들과 떨어져서 혼자 아파트에 살고 계시지만, 그다지 외롭다는 느낌을 안준다.
안방 외에 문간방에는 항상 친구들을 위한 잠자리가 펼쳐져 있다.
찾아오는 친구들이 쉬고 묵을 수 있는 일종의 ‘사랑방’이다.
여행을 즐기기도 한다.
아파트 베란다에는 친구들 집에서 얻어 온 선인장 ‘접’을 애지중지 키워 가꾼 화분이 가득하다.
할머니는 잠시도 가만히 있는 성격이 아니다. 그렇다고 대충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인정을 받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전문 간호사로 살아 온 삶의 경험과
오랫동안 독일이라는 서구 생활에서 베인 합리적 사고방식과
타인에 대한 배려가 밑바탕의 힘으로 작용하기 때문일 듯싶다.
아직도 할머니는 싸울 일이 있으면 싸운다.
그 만한 근거와 주장이 있기 때문이다.
고지식하고 단순히 튀는 한 할머니의 모습인지,
아니면 무질서와 혼란 속에서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 지도 모르는 사회에 대한
경험 많고 애정 많은 한 어르신의 충고인지, 그것은 만나보고 접해봐야 할 일.
거실 한 가운데 정성스레 마련된 찻상위에 독일에서 온 커피라며 내 놓은 커피 잔이 어느 덧 비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 날 즈음, 주변이 어지럽다.
이야기 보따리를 풀면서 현재와 과거를 분주히 오가느라, 펼쳐놓은 자료들이다.
결혼하기 바로 전의 흑백사진, 간호장교 준비시절, 수거한 유흥주점 스티커들,
금빛평생교육봉사단 수첩, 자원봉사활동증 등....

그리고 선물 받은 것이라며 장미꽃 99송이 꽃다발을 보여준다.
양딸이 준 것이라고 한다.
이숙용 할머니를 보고 엄마 같다며 딸을 하고 싶어 양딸이 된 분이 선물 한 것이다.
할머니는 매일 양 딸의 가게를 들린다.

<강찬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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