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명사람들>노동운동가 이병렬씨
광명사람들>노동운동가 이병렬씨
  • 강찬호기자
  • 승인 2003.10.02 21:02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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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사람들> 노동운동가 이병렬씨

골수 노동운동권(!) 광명사람을 만나다.

 

 

 

 

▲ 보건의료노조 연대사업국장으로 일하고 있는 광명사람 이병렬씨

 

오랜만에 운동권(?)을 만났다. 광명에도 70,80년대 민주화 운동을 한 많은 이들이 있다. ‘386세대’로 칭해지는 이들은 사회에서 민주화 운동 세대의 ‘상징적 코드’로 읽혀지기도 한다. 학생운동 시절, 적극적인 학생 운동권으로 살기도 하고, 그 주변에서 지원을 하기도 한 경험들이, 당시 학생들이라면 한번씩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각 자의 현장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 때의 경험들은 저마다의 삶에서 나름대로 의미를 가질 것이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 그때의 경험들에 대해 달리 ‘해석’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누구나 자기 삶을 살아간다. 자신의 인생관과 세계관에 따라. 그럼에도 변함없이 한 길을 가는 이들에게 보내는 평가는 있다. 이번에 만난 광명사람 이병렬(40)씨가 그런 경우 중에 하나다.

이씨는 하안1단지에 살고 있다. 일터와 공식적인 직함은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노동조합(이하 보건의료노조) 연대사업 국장이다. 그는 노동운동 활동가다. 현재 보건의료에는 200여개 사업장, 4만2천여명의 조합원들이 가입해서 활동을 하고 있다. 병원 종사 노동자들의 권익향상, 환자와 보호자들의 권리 개선을 위한 의료개혁 활동을 주로 하고 있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최근에 의료개혁의 쟁점 중에 하나는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확대하는 일이라고 한다. MRI, CT 등 고가의료장비 등이 보험에서 제외되어 있어, 환자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민간병원 중심의 병원의료 체제도 개혁을 해야 한다고 한다. 공공의료기관을 대폭 확충해야 한다는 것이다. 건강보험을 통해 의료비를 부담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개인이 1년 동안 지급하는 총액을 정함으로서 본인 부담금을 줄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씨가 활동하고 있는 보건의료분야는 이런저런 일들이 많을 듯 싶다. 그리고 의료문제는 국민들이 직접 몸으로 겪는 문제인지라, 그 일의 중요성을 새삼 말하는 것은 자칫 오버(!) 일 수 있겠다. 그 문제의 중요성과 의료문제에 대해서는 누구나 다 할말이 있을 것 같다. 이씨의 고민에는, 활동영역에는 보건의료 노조 조합원들의 활동 강화와 지원, 그리고 의료개혁이 늘 따라 다닐 듯 싶다.

 

기업노조에서 산별노조인 보건의료 노조 전환이 가장 큰 보람

 

조금 더 이씨의 삶을 더듬어 보자. 과거로. 이씨가 보건의료 분야에서 종사한 기간만도 올해 8월 1일자로 10년이다. 이쯤되면 이 분야의 전문가, 이른 바배테랑(!)일 것이다. 보건의료 노조가 생기기 전 ‘93년부터 병원노동조합연맹(이하 병원노련)에서 활동을 했다. 기업별 노조가 해산이 되고, 산별노조가 만들어져 현재의 보건의료 노조로 전환이 된 것이 ‘98년 2월이다. 민주노총에서 가장 먼저 산별노조로 전환이 된 것이 보건의료 노조다. 이씨는 이일을 지금까지 활동 중에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일로 꼽는다.
이씨가 병원노련에 발을 들여 놓기 전에는 민주노조운동의 정통을 걸어 온 것으로 평가받는 서울지역노동조합협의회(이하 서노협)에서 활동을 했다. 그리고 서노협에서 병원노조 지원 활동을 담당했다. 90년도부터 92년도까지다.

 

그 전에는 3년 정도 구로지역에서 ‘노동야학’을 했다. 노동자들과 노조 간부들을 대상으로 노동자 교육을 진행한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에서 진보적인 흐름을 타는 구로민중교회연합 소속 한 교회에서 활동을 하기도 했다. 공장에 취업을 하기도 했다. 노동운동을 하고자 현장(!)을 찾은 것이다. 그리고 수배가 되기도 했다. 소위 ‘조직사건’에 연루가 된 것이다. 이쯤이면 운동판(!)에서 잔뼈가 굵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 같다.

▲ 10년째 의료노조일을 하고 있다.

 

 

최근에 광명에 얼굴 자주, 성애병원 파업 문제로.

 

민주노조운동이 성장해 가고, 보건의료 노조 운동이 성장해가는 그 한복판에 이씨는 서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그런 활동에는 변동이 없다. 광명시에 살고 있지만, 지역보다는 바깥일이 많다. 그런데 그가 최근에 자주 광명에 얼굴을 비친다. 성애병원 노조가 얼마 전에 파업을 하였기 때문이다. 성애병원은 작년에 노조가 결성이 되었다. 그리고 작년에 파업 직전 단체교섭이 성사가 되었다. 그러나 올해 사정은 다르다. 파업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병원 조합으로서는 처음 겪는 일이다. 당연히 이씨는 바빠진다. “성애병원 파업, 노조를 지키기 위한 파업이다. 그 동안 병원 노동자들이 억눌려 있었다. 이제 ‘정상’으로 가기 위한 투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환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다. 환자들의 권익을 위해 싸워온 그동안의 과정이 있다. 지역병원으로서 시민건강권을 지켜가기 위해서는 현재의 투쟁이 잘되어야 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파업에 대한 그의 생각이다.

 

결혼하고서 광명에 거주, 약수터 모임 통해 사람들 만나기도

 

이씨는 89년도부터 광명에 거주하고 있다. 그때가 결혼을 막 하고서다. 신혼을 이곳에서 시작하고, 자리를 잡은 것도 광명에서다. 그전에는 구로에서 활동을 했다. 집이 건국대 인근이었는데, 구로동 교회에서 잠을 많이 자곤 했다. 그리고 결혼을 한 상대도 구로에서 노동야학을 할 당시, 수강생으로 온 한 여성 노동자였다고 한다. 10살과 13살 자녀가 있다. 그리고 돌이 막 지난 늦둥이가 생겼다. 계획(!)의 실패였다고 한다. 늘어난 가족 살림이 부담이지만, 잘 키우겠다는 것이 이 부부의 계획이다.
이씨는 광명지역을 연고로 활동을 한 경험은 많지 않다. 그러나 ‘광명약수터 모임’의 경우는 다르다. 당시 지역에 있는 민주화 운동 출신 사람들끼리 모임을 가지면서 친목과 의미 있는 활동을 해 보자는 취지였다고 한다. ‘97년도 즈음 피해가 심각했던 북한어린이를 돕기 위한 모금활동을 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이 모임이 오랜 기간 유지가 되었으나, 국회의원 선거에 대한 입장차이 등 시간이 지나면서, 모임이 다소 힘들어지고 소멸이 되었다고 한다. 이씨는 이 부분에서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모임은 여전히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다.

 

일하는 사람들의 민노당에 희망 건다. “...나중엔 성대하리라.”

 

이에 반해 지금은 보다 적극적인 형태로 지역과 관계를 맺고 있다. 광명지역에서 지난 지방선거이후 민주노동당 준비모임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씨는 현재 광명민주노동당 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민주노동당(이하 민노당)은 이씨에게는 각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민노당이 내세우고 있는 ’일하는 사람들의 정당, 노동자, 농민, 도시서민들의 정당’이라는 추구가 그동안 이씨가 해온 일들의 연장이기 때문이다.
또 있다. 보건의료 노조 조합원들의 상당수가 여성인 특성을 감안, 민노당에서 여성정책을 형성함에 있어 보건의료 노조가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정치진출을 이뤄 ‘정치세력화’하는 과정에서 보건의료 노조와 민노당 관계의 중요성을 보고 있다. 그 예로 지난 선거에서 경기도와 전남에서 도의원으로 진출한 민노당 출신 여성의원들이 이루어 내고 있는 성과를 평가한다. 전남의 경우 얼만 전에 ‘급식조례’를 통과시켰고, 그 일을 주도했다는 것이다.

민노당의 지역적인 맥락에서 광명시는 이씨에게 또 다른 의미로 존재한다. 광명시가 수도권 지역 중에서 노동자의 비중이 높은 편에 속한다는 것이다. 즉 비정규노동자를 포함 경제활동인구 중에서 그 비중이 30%에 이른다고 한다. 광명민노당(준)에서 그 만큼 할일이 많다는 것이다.
한편 이씨는 아직은 민노당과 같은 진보정당에 대한 사회적인식이 낮은 것과 관련해서, ‘장기적인 투자‘ 개념으로 접근해 줄 것을 주문한다. 사람들에게는 현실적인 실현가능성만 따지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되면 늘 기존정당에만 한정된다는 것이 이씨의 생각이다. “처음은 미미하나, 나중은 성대하리라.” 이 대목에서 이씨는 성경구절을 인용한다. “노동자나 농민, 서민들이 자신의 이해와 요구에 따라 정치적 선택을 하지 못하고, 지역 등 다른 기준으로 정치적 선택을 내리는 현실에 대해 안타깝다.”고 이씨는 말한다.

 

지역은 교육문제로 끙끙!

 

끝으로 이씨는 광명지역에 대해 이렇게 평을 한다. “서민들이 살기는 아직은 나쁘지 않다. 그러나 교통문제나 여가시간에 갈 곳이 없는 것은 문제다. 늘 음식점이나 가야한다. 소비문화를 조장하는 것이다. 교육은 심각하다. 중학교 들어가는 아이가 학원을 보내 달라고 한다. 그 전에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이제 중학교 가는 아이가 진성고나 광명북고에 들어가지 못하면 챙피하다는 것이다.” 광명에서 교육문제는 이씨에게도 마찬가지로 다가오는 듯 하다. 고교평준화도 되어야 하는데, 아직!이라는 것이다.

이씨는 인터뷰 내내 바빴다. 한 시간이 채 못 되는 만남이었지만, 그의 핸드폰이 자주 울렸다. 그리고 일을 처리하곤 했다.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그는 이메일을 확인했고, 성애병원으로 향했다. “제가 뭐 취재할 게 있냐.”며. 그리고 그는 말했다.
인터뷰 서두에서. “보건의료 노조 분야에서만 10년. 굳어있는 것은 아닌가. 후배들을 배려하지 않는 것은 아닌가?” 그렇게 인터뷰를 시작하고, 끝 마쳤다. 시간은 흐르고, 경험은 쌓이고, 후배와 선배라는 위치는 동시에 가지는 것인 만큼, 스스로 처해진 상황을 인식하고 있다면, 그는 늘 초심(初審)으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닐지?

 

 

  

<2003. 10. 2 강찬호기자tellmec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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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2003-10-02 21:02:08
기사 잘 읽었습니다. 기사의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민주노동당은 다른 약칭이 없습니다. 당대회에서 약칭을 민노당으로 노동당으로 한 바가 없는 줄 알고 있습니다. 기존 주류 언론이 민노당 민노당 할때 당원으로서 아쉬운 점이 있었는데요, 대안 매체에서도 민노당 하니까 조금은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물론 기사화 한것에는 고마워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광명성애조합원 2003-10-02 21:02:08
이병렬 국장님을 이런 기사로 만나니 또한 새롭습니다. 늘 광명성애에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하구요. 앞으로도 열심히 저희는 투쟁하겠습니다. 새해를 맞아 좋은일들로 가득하시고 건강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