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명사람들> 노동운동가 이병렬씨 | |
골수 노동운동권(!) 광명사람을 만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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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건의료노조 연대사업국장으로 일하고 있는 광명사람 이병렬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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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운동권(?)을 만났다. 광명에도 70,80년대 민주화 운동을 한 많은 이들이 있다. ‘386세대’로 칭해지는 이들은 사회에서 민주화 운동 세대의 ‘상징적 코드’로 읽혀지기도 한다. 학생운동 시절, 적극적인 학생 운동권으로 살기도 하고, 그 주변에서 지원을 하기도 한 경험들이, 당시 학생들이라면 한번씩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각 자의 현장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 때의 경험들은 저마다의 삶에서 나름대로 의미를 가질 것이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 그때의 경험들에 대해 달리 ‘해석’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누구나 자기 삶을 살아간다. 자신의 인생관과 세계관에 따라. 그럼에도 변함없이 한 길을 가는 이들에게 보내는 평가는 있다. 이번에 만난 광명사람 이병렬(40)씨가 그런 경우 중에 하나다. 이씨는 하안1단지에 살고 있다. 일터와 공식적인 직함은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노동조합(이하 보건의료노조) 연대사업 국장이다. 그는 노동운동 활동가다. 현재 보건의료에는 200여개 사업장, 4만2천여명의 조합원들이 가입해서 활동을 하고 있다. 병원 종사 노동자들의 권익향상, 환자와 보호자들의 권리 개선을 위한 의료개혁 활동을 주로 하고 있다고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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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노조에서 산별노조인 보건의료 노조 전환이 가장 큰 보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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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이씨의 삶을 더듬어 보자. 과거로. 이씨가 보건의료 분야에서 종사한 기간만도 올해 8월 1일자로 10년이다. 이쯤되면 이 분야의 전문가, 이른 바배테랑(!)일 것이다. 보건의료 노조가 생기기 전 ‘93년부터 병원노동조합연맹(이하 병원노련)에서 활동을 했다. 기업별 노조가 해산이 되고, 산별노조가 만들어져 현재의 보건의료 노조로 전환이 된 것이 ‘98년 2월이다. 민주노총에서 가장 먼저 산별노조로 전환이 된 것이 보건의료 노조다. 이씨는 이일을 지금까지 활동 중에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일로 꼽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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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에는 3년 정도 구로지역에서 ‘노동야학’을 했다. 노동자들과 노조 간부들을 대상으로 노동자 교육을 진행한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에서 진보적인 흐름을 타는 구로민중교회연합 소속 한 교회에서 활동을 하기도 했다. 공장에 취업을 하기도 했다. 노동운동을 하고자 현장(!)을 찾은 것이다. 그리고 수배가 되기도 했다. 소위 ‘조직사건’에 연루가 된 것이다. 이쯤이면 운동판(!)에서 잔뼈가 굵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 같다. | |
▲ 10년째 의료노조일을 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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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광명에 얼굴 자주, 성애병원 파업 문제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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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조운동이 성장해 가고, 보건의료 노조 운동이 성장해가는 그 한복판에 이씨는 서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그런 활동에는 변동이 없다. 광명시에 살고 있지만, 지역보다는 바깥일이 많다. 그런데 그가 최근에 자주 광명에 얼굴을 비친다. 성애병원 노조가 얼마 전에 파업을 하였기 때문이다. 성애병원은 작년에 노조가 결성이 되었다. 그리고 작년에 파업 직전 단체교섭이 성사가 되었다. 그러나 올해 사정은 다르다. 파업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병원 조합으로서는 처음 겪는 일이다. 당연히 이씨는 바빠진다. “성애병원 파업, 노조를 지키기 위한 파업이다. 그 동안 병원 노동자들이 억눌려 있었다. 이제 ‘정상’으로 가기 위한 투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환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다. 환자들의 권익을 위해 싸워온 그동안의 과정이 있다. 지역병원으로서 시민건강권을 지켜가기 위해서는 현재의 투쟁이 잘되어야 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파업에 대한 그의 생각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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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고서 광명에 거주, 약수터 모임 통해 사람들 만나기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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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89년도부터 광명에 거주하고 있다. 그때가 결혼을 막 하고서다. 신혼을 이곳에서 시작하고, 자리를 잡은 것도 광명에서다. 그전에는 구로에서 활동을 했다. 집이 건국대 인근이었는데, 구로동 교회에서 잠을 많이 자곤 했다. 그리고 결혼을 한 상대도 구로에서 노동야학을 할 당시, 수강생으로 온 한 여성 노동자였다고 한다. 10살과 13살 자녀가 있다. 그리고 돌이 막 지난 늦둥이가 생겼다. 계획(!)의 실패였다고 한다. 늘어난 가족 살림이 부담이지만, 잘 키우겠다는 것이 이 부부의 계획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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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사람들의 민노당에 희망 건다. “...나중엔 성대하리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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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반해 지금은 보다 적극적인 형태로 지역과 관계를 맺고 있다. 광명지역에서 지난 지방선거이후 민주노동당 준비모임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씨는 현재 광명민주노동당 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민주노동당(이하 민노당)은 이씨에게는 각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민노당이 내세우고 있는 ’일하는 사람들의 정당, 노동자, 농민, 도시서민들의 정당’이라는 추구가 그동안 이씨가 해온 일들의 연장이기 때문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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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은 교육문제로 끙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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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이씨는 광명지역에 대해 이렇게 평을 한다. “서민들이 살기는 아직은 나쁘지 않다. 그러나 교통문제나 여가시간에 갈 곳이 없는 것은 문제다. 늘 음식점이나 가야한다. 소비문화를 조장하는 것이다. 교육은 심각하다. 중학교 들어가는 아이가 학원을 보내 달라고 한다. 그 전에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이제 중학교 가는 아이가 진성고나 광명북고에 들어가지 못하면 챙피하다는 것이다.” 광명에서 교육문제는 이씨에게도 마찬가지로 다가오는 듯 하다. 고교평준화도 되어야 하는데, 아직!이라는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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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10. 2 강찬호기자tellmech@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