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명사람들>자원봉사로 바쁜 나날을 보내는 ‘할머니 선생님’ 정기숙씨
광명사람들>자원봉사로 바쁜 나날을 보내는 ‘할머니 선생님’ 정기숙씨
  • 강찬호객원기자
  • 승인 2004.03.19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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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사람들> 정기숙씨

월.화.수.목.금, 자원봉사로 바쁜 나날을 보내는 ‘할머니 선생님’

 

 

 

▲ 어렵고 힘들게 가르치는 현장으로 끊임없이 발길이 옮겨져왔다는 정기숙씨.

 

바쁜 것은 한 가지. 그러나

 

지역에서 활동을 하면서 보람 중 하나는 자원봉사를 통해 지역사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원봉사 가치에 대해서야 말하면 사족이다. 그럼에도 한 마디 덧붙이고 싶다. 가장 아름다운 삶의 모습 중에 하나가 자원봉사다. 기꺼이 남을 위해 자신의 한 부분을 나누어 주는 행동이다. 혼자보다는 더불어 사는 삶의 가치를 쫒는다. 자원봉사를 통해 나누고자 하는 소망을 바삐 사는 우리는 특별한 행위라고 규정을 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 참여하지 못하는 이들의 작위적인 변명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바쁜 삶은 각박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현대인의 삶은 각박한 모습을 특징으로 하기도 한다. 광명사람 정기숙(67세)님은 다르다. 자원봉사로 바쁘다. 바쁜 것은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인데 내용이 다르다. 광명사람 정기숙님의 생활을 보자.

 

월요일은 한글교실

 

월요일. 아침은 바쁘다. 9시30분부터 하안동에 있는 지역복지봉사회에서 운영하는 한글교실에 가야하기 때문이다. 한글교실 강사로 자원봉사를 하기 때문이다. 시작 시간이 9시 30분이다. 뿌리반, 줄기반, 열매반으로 이루어진 한글교실에서 정기숙님은 열매반을 담당하고 있다. 20여명이 넘는 수강생들이 참여한다. 2시간 정도 지나면 수업이 끝나지만, 엄밀히 말하면 끝나는 시간은 대중이 없다. 한글을 배우는 것이 목적이지만, 이에 국한되는 것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가로 소일삼아 참여하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강생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내면 낼수록 참여하는 이들은 좋아한다. 오후는 친구도 만나고 개인적인 시간을 갖는다.

 

화요일은 치매노인 돌보기

 

화요일. 이날은 하안동 치매노인요양센타로 향한다. 정기숙님이 자원봉사 활동을 하는 곳은 노인요양센타내 주간보호센타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 3시까지 이곳에서 활동을 한다. 이곳에서 거동이 불편하고 치매 증상이 있는 이들을 돌본다. 화장실 가기, 부축하기, 산책 거들기, 말벗하기, 간식 제공하기, 식사 돕기 등 무수한 활동을 한다.
두개 반으로 이루어져있고, 각각 2명의 여사님들이 노인들을 돌보지만 자원봉사자들이 해야 할 활동도 이처럼 많다.

정기숙님은 “본인 외에도 자원봉사자들이 활동을 하긴 하지만 조금 하다가 그만 두는 이들을 볼 때면 안타깝기도 하다”고 말한다.
이곳에서 정기숙님은 전담교육을 맡고 있다. 오전에 한 시간 정도 매주 고정시간을 진행한다. 이야기 시간을 갖기도 하고, 노래나 게임을 함께 하기도 한다. 치매 증상이 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무언가를 진행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님에도 시간이 되면 모여 앉는 이들을 보면 힘들지만 지속하게 된다. “내 보따리가 다 떨어져...힘들다. 내 시간 맡아 하는 것 쉽지 않다. 그래도 노인들뿐만 아니라 여사님들, 기사님들이 함께 이야기를 들으려고 모인다.” 주간보호센터에서 치매 노인들을 만나면서 드는 생각의 변화는 또 있다. “처음에는 황당하다. 그러나 점차 익숙해진다. 각 자 익숙해지는 것이다. 무조건 사랑해주어야...”
앞으로 정기숙님의 화요일은 더욱 바빠질 예정이다. 오후 시간을 이용해 새로운 일을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광명시평생학습원에서 운영하는 한글교실 기초반 강사가 그것이다.

 

수요일은 한글교실과 방과후 학습지도에 바쁜 ‘할머니 선생님’

 

수요일. 정기숙님은 다시 지역복지봉사회 한글교실로 향한다. 문예반 지도활동이 오전에 이루어진다. 오후에는 이 기관에서 운영하는 초등학생 대상 청소년공부방 활동을 돕는다. 방과후 아이들의 학습 활동을 돕는 것이다. 저소득층 자녀들이나 맞벌이 부부들의 자녀들이다. 이곳에서 “할머니 선생님”으로 통한다.

 

목, 평생학습원 한글교시...금, 성애병원

 

목요일. 광명시평생학습원 한글교실로 향한다. 오후에 진행된다. 금요일. 이 날은 성애병원으로 간다. 오전 10시에 시작해서 오후 2시까지가 활동시간이다. 전화로 병실을 안내한다. 기타 안내 할 수 있는 것들을 상담해준다. 병원에서의 자원봉사 활동은 99년부터 시작했다. 올해 6년째다.

이렇게 정기숙님의 한주 생활은 자원봉사 그 자체의 연속이다. 주말을 개인적인 생활로 보낸다. 이외에도 정기숙님은 적십자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경기도금빛평생학습자원봉사단에 소속되어 활동을 한다. 직책을 맡아야 하면 그 일을 맡아 한다. 필요하면 본인이 회비 등 자부담을 내고서 참여하기도 한다.

 

대학시절의 경험이 이유라면 이유...농촌계몽활동에 적극 참여

 

어디서 이런 힘이 나오는 걸까? 자식을 키우고 이제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 삶을 잘 살아 보려는 내적동기에서 오는 것일까? 그렇지만 그런 사람들은 이 땅에 얼마든지 많지 않은가? 그렇다고 그들이 자원봉사 활동에 이처럼 참여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정기숙님의 자원봉사 활동은 남다르다. 이에 대해 정기숙님은 ‘대학시절의 경험’을 든다. 60년대에 대학시절을 보냈다. 현재 세종대의 전신인 ‘수도여자사범대’에 다녔다. 국어국문학과. 국어교사가 꿈이었다. 당시 문맹퇴치운동으로 진행된 농촌계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전국을 순회했다. 방학 때 농촌에서 마을 이장 집 방을 빌려 농촌 아이들을 가르쳤다. 건국대에서 교실을 마련해서 가르치는 활동을 하기도 했다. 당시 이런 활동은 라디오 다큐멘터리 ‘절망은 없다’에 방영이 되기도 했다. 인천에 있는 나환자촌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기도 했다. 부모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런 활동을 몰래 하기도 했다. 그저 해야 할 것 같아 참여한 일이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졸업을 하고서 바로 중등학교 교사로 가지 않았다. 당시 초등학교 교사가 모자라, 자격시험을 거쳐 자격을 획득하기도 했다. 그러나 학교로 가지 않았다. 포천으로 갔다. 당시 약방인 청산중앙원 원장이 아이들을 모아 교실을 열었고, 이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국어와 역사를 가르쳤다. 3년 정도의 시간을 그렇게 보냈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으면서 활동을 접었다. 가족에게 몰두해야만 할 상황이 닥친 것이다. 그리고 이제 다시 자원봉사의 현장으로 돌아 온 것이다.

이런 정기숙님이지만 “젊은 엄마들이 자원봉사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보면 우러러 보게 된다.”고 한다. 자신은 젊어서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을 믿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정기숙님은 취미 삼아 그리고 본인의 재능을 통해 시를 즐겨 쓴다. 지역문인협회에서 활동을 하기도 한다. 한국문학예술에 신인상으로 ’97년에 등단한 바 있지만 아직 시집은 내지 못했다. 써 놓은 시가 거의 1백편은 된다. 시집을 한번 내보고 싶은 것은 작은 소망이다.

국어교사로서 마음껏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었지만 정기숙님의 인생은 조금은 다르게 흘러갔다. 가르치는 현장에 있었지만 안정적으로 아이들을 만나는 곳이 아니었다. 조금은 어렵고 힘들게 가르치는 현장으로 발길이 옮겨졌다. 그리고 그것도 어느 시점에서는 접어야 했다. 그것이 인생이다. 지금 본인이 자원봉사에 몰두하고 가르치는 일에 신나는 것은 그 동안 살아 온 업(!)에서 연유하는 것은 아닌지 자문하며 답을 찾아보기도 한다. 가르치고 싶었으나 마음껏 가르치지 못한.

“젊은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해도 이야기가 통하고 잘 들어 준다. 반응도 좋다. 보람을 느낀다.” 자원봉사로 가르치는 일에서 보람을 찾는다. 자원봉사가 삶, 그 자체인 정기숙님의 삶이 아름다운 것은 이 때문이다.

 

 

  

<2004. 3. 19  강찬호객원기자tellmec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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