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도시농업 운동을 하는가? (3)
나는 왜 도시농업 운동을 하는가? (3)
  • 이승봉
  • 승인 2011.06.01 00:0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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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봉(광명텃밭보급소 상임대표, 피스빌리지 아시아순환농업연구원장)

내가 광명과 인연을 맺은 것은 25년 전이다. 구로동에서 살았던 나는 86년 가을 광명시로 이사 왔다. 하지만 여전히 활동 범위는 구로공단을 중심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87년 초, 구로역 근처에 작은 공간을 얻어 한울림교회를 열었다. 그 때만 하더라도 나는 산업선교, 노동운동과 관련되어 있었고, 그 때문에 당국의 감시를 받고 있었다. 당시 안기부와 구로경찰서에 담당이 있었다. 교회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건물 임대인이 교회를 빼달라고 요구하였다. 아직 계약기간이 많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안 된다고 하니, 애걸복걸 사정이다. 아마도 당국의 압력이 있었지 않나 싶다. 어렵사리 얻은 공간이지만 그분의 사정이 딱하기도 해서 돌아 돌아 찾은 자리가 광명시 철산4동 달동네였다. 그곳에서 노동자, 빈민들을 위한 탁아소를 시작 했다. 얼마 후에는 낡은 아파트 한 채를 얻어 공부방도 시작하였다. 지금의 도덕파크 자리이다.

87년 대통령선거 때는 구로지역 공정감시단을 만들어 지금의 구로, 금천, 광명지역에서 대선 감시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운동에는 700여명의 서울대 학생들이 참여하였다. 선거당일구로구청에서 정부·여당 측이 부정투표함을 반출하려다가 당시 평민당원들에 의해 적발되었다. 신고를 받은 우리 감시단은 즉각 출동하여 투표함을 실은 트럭을 에워쌌다. 마침 내가 탄 차량에 방송시설이 되어있어 곧 바로 시민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인근 공정감시단에도 지원을 요청했다. 2-3시간 후 5,000여명의 분노한 시민들이 모여들었고 이로써 3일간에 걸친 구로항쟁이 시작되었다. 무자비한 진압으로 3일 만에 항쟁은 막을 내렸고, 많은 부상자와 3명 정도의 실종자가 발생했다.

처음 광명시에 들어 왔을 당시만 하더라도 광명시는 도시의 모습보다는 농촌의 모습이 더 많았다. 구로공단의 배후 도시로서의 기능을 위해 저층 아파트들이 철산동 지역에 들어섰다. 하안동 아파트는 이제 막 짓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소하동, 일직동은 대부분이 농지였다. 광명의 서쪽은 구시가지와 논밭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당시 광명의 녹지율은 82%가량이었으니 서울권에서는 꽤 쾌적한 환경을 갖춘 셈이었다.

현재의 철산4동 도덕파크 자리는 당시 소방도로조차 갖추지 못한 달동네였다. 그곳은 구로공단으로 출퇴근하는 노동자들의 보금자리였다. 당시의 노동자, 빈민들의 생활은 참으로 열악하였다. 아이들을 돌봐줄 시설들이 턱없이 부족하여 아이들은 그대로 방치되기 일쑤였다. 그래서 한울림교회의 첫 할 일은 탁아소 운영으로 자연스럽게 결정되었다. 대지 22평, 15평 남짓한 달동네 중턱의 남루한 건물에 탁아소를 열었다. 탁아소 교사들은 빈민운동 활동가들이 맡았다. 열악한 근무조건과 임금 속에서도 선생님들은 혼신의 힘을 다하였다. 한울림 탁아소 출신들이 줄잡아 500여명이 되니 어딘가에서 이글을 읽는다면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당시 그곳 달동네에는 자투리 땅 마다 잎채소와 열매채소들이 심겨져 있었다. 가난한 생활 속에서 이 채소들은 가계의 부담을 덜어주는 훌륭한 식재료가 되었다. 깨진 화분, 마대자루, 빈 상자들도 훌륭한 상자텃밭의 재료가 되었다. 서쪽 구시가지도 이런 풍경들이 흔했던 시절이었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 탁아소 아이들이 학교에 진학하자 또 갈 곳이 없어졌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돌볼 방과후 공부방을 열었다. 철산아파트 한 채를 얻어 시작하였다. 지역에서의 호응은 폭발적이었다. 근처 만남의 집에서도 방과후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어 원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수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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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기 2011-06-01 08:58:34
오래전부터 지켜오신 광명을 위하여 또다른 일을 하시는군요. 목사님은 맑고 투명한 광명을 위하여 끊임없이 활동하시는 것을 보고 시민들과 저는 광명의 빛과 소금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집안에 피어난 채소와 곡식이 그려집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