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하처럼 수업하라?
장기하처럼 수업하라?
  • 양영희(구름산초 교사)
  • 승인 2011.08.24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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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다녀와서

▲ 올해 제천국제연화제에서 '시네 심포니' 장편 프로그램으로 상영된 작품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들'의 한 장면. 올해 7회째를 맞는 제천영화제는 영화와 영화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호응받는 축제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이번 여름휴가는 제7회 국제음악영화제에 참여하는 것으로 가족끼리 결정했다. 5일정도 진행되는 영화제(8.12~16)중 우린 13,14일 밤프로그램을 선택했다. 4시간동안 영화 한편과 콘서트를 이어서 보는 패키지 방식이었다. 3군데의 행사장 중 우린 청풍호반의 무대를 택했다.

높고 낮은 산이 끝없이 연결된 곳, 댐건설로 낮은 계곡은 강이 되어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 낸 곳, 가도가도 인적이 없는 곳, 이런 곳에서 국제음악영화제가 열린다니 사람이 얼마나 올지 궁금해 졌다.

4시간 정도 여유를 두고 청풍호반에 도착했다. 아직 사람이 많지 않았다. 이래서 행사가 진행될까 할 정도로 썰렁함마저 느껴졌다. 잠시 제천시와 또 다른 행사장인 의림지를 둘러보기로 했다. 시내도 축제기분은 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냥 일상을 살고 있었다. 의림지도 한적하긴 마찬가지였다. 마음속으로 걱정도 됐고 기대가 약간 사라진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 이렇게 접근성이 떨어지고 불편한 곳까지 사람들이 얼마나 오겠어?
고생하지 않고도 영화보고 공연장에 갈 기회가 곳곳에 있는데...’
우린 의림지에 앞의 식당에서 맛있는 두부전골을 먹고 여유를 갖고 청풍호반공연장으로 갔다.

그런데 이게 웬걸? 사람들이 어디서 왔는지 줄이 끝도 없었다. 와우~~드디어 축제분위기가 났다. 젊은 사람들과 가족단위 사람들이 골고루 섞여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도 즐거워 하고 있었다. 맨 앞에는 4시간 전부터 자릴 잡고 앉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 뒤를 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끝도 없이 들어오고 있었다.

▲ 시네마콘서트 부문에서 상영된 극영화 '태어나긴 했지만'. 일본에서 1932년에서 상영된 작품으로 오즈야스지로 감독 작품. 무성영화로 영화 상영 내내 연주가 병행돼 눈길을 끌었다.

13일에 일본에서 80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무성영화 <태어나긴 했지만>이란 작품을 봤다. 호주음악인이 일본악기를 상영내내 연주했다. 혼자 2시간을 쉬지 않고 연주한다는 것이 대단해 보였다. 영화의 맛과 멋을 떨어뜨리거나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연주도 돋보였다.

주인공인 꼬마 녀석들의 재치와 연기력은 보는 이를 내내 감동하게 했고 훌륭한 사람의 가지기준을 승진과 돈으로 재단하는 그리고 그 곁에 가려고 하는 소시민의 아픔이 잘 그려져 있었다.

무성영화 자체를 모르는 요즘 세대들에게 새로운 경험이 되었으리라 생각됐다. 작품의 내용도 세대 상관없이 고루 공감할 수 있는 것이어서 아이부터 노인까지 함께 웃으며 즐겁게 봤다. 우리나라의 무성영화는 거의 보존이 안 되어 있다고 말을 듣고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14일엔<뉴욕의 남쪽>이란 영화를 보았다. 긍정의 힘을 강조하는, 가난과 개인의 어려움을 가진 시골의 소녀가 자신의 꿈을 이뤄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인데 영화 상영 후 주인공역을 맡았던 뮤지컬배우 출신인 여성감독이 직접 나와 노래를 2곡이나 선물했다. 영화보다 그 장면이 더 감동적이었다.

감독이 노래하며 손짓했다, 모두 일어서서 맘껏 즐기라고.
옆에 있던 딸이 벌떡 일어나며 감독이 멋있다고 달려 나갔다. 난 책이나 TV에서가 아니라 이렇게 직접 멋지게 사는 사람을 만나게 해주는 것이 아이가 살아가는데 에너지가 될거라고 믿었다.

영화상영후 진행된 콘서트는 밤12시 넘어까지 계속됐는데 젊은이들은 모두 앞으로 뛰어나가 맘껏 열기를 발산했다.
스윗소로우, 리쌍, 조문근, 정인, 김창환, 그리고 장기하...

식지 않는 열기와 열정을 애써 숙소로 밀어 넣지 말고 원하는 사람은 밤새워 얘기하고 연주하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걱정 많은 어른들은 축제도 제한적으로 열고 놀이의 방식도 폐쇄적으로 진행한다. 우리 사회에 열린 광장은 축제에서도 한정적이란 아쉬움이 있었다.

14일 밤 마지막 순서로 나온 장기하의 무대는 정말 특별했다. 음반으로 혹은 TV로 접할 때는 전혀 알 수 없는 장기하만의 매력을 직접 느낄 수 있었다.
수줍은 모범생 같은 외모와 독특한 읖조림같은 말투, 리듬에 맞는 듯 안 맞는 듯 뒤뚱거리는 듯한 몸짓, 그런데 만명이상을 압도하는 힘이 그에게 있었다.

뻔하지 않은 그의 음악세계 만큼 독특한 그의 무대매너도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멋이 있었다. 우리 음악이 다양해지고 그걸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아주 많아졌다는 반가움 같은 확인이 좋았다.
사람들은 장기하가 뛰라면 뛰고, 소리 지르라면 소리 지르고, 손을 들라면 들었다.
모든 노랫말을 외워 따라 부르고 노래마다 하는 동작을 모두 따라 했다.

공연이 끝나고 돌아오며 무대 앞까지 뛰어나가 2시간 내내 놀다온 딸에게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장기하가 시킨대로 사람들이 다하니?”
딸의 대답.
“장기하가 하라는데 어떻게 안 해?”
난 그 힘의 원천이 궁금해졌다.

수업시간엔 절대 듣지도 보지도 않으며 외워야 할 것들도 절대 공부하지 않는 우리 아이들을 저렇게 흥분시키고 말 잘 듣게 하는 그 힘은 무엇일까?
나의 이야기를 들은 막내동생이 말해준다.
‘장기하처럼 수업하면 되잖아?“
‘오호라! 거기 답이 있었네!’
내일이 개학이다.
‘나, 장기하처럼 수업하러 가야겠다.’
무대에 서는 사람이 먼저 즐겁고 관객이 흠뻑 빠질 수 있는 그런 수업.
나, 지금 만나러 갑니다.

2011.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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