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이루는 세월(2)
잠 못 이루는 세월(2)
  • 이원영 수원대 교수
  • 승인 2011.09.07 09: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원영 수원대 교수(운하반대 전국교수모임 정책위원장)

통영 박경리 선생 묘소 앞 바위 글과 원경

새 학기가 시작된지 열흘이 지났는데도 아직 일이 손에 잡히질 않습니다.
며칠전 후쿠시마 핵재앙 사망자 100만명 운운하는 보도때문일까요?

다시 곰곰 생각해봅니다.

독일은 어떻게 해서 이 문제를 성공적으로 다룰 수 있었는가?
독일과 일본과 우리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리고 독일과 프랑스와 영국과 일본과 다른 나라들 그리고 우리의 차이는 무엇인가? 어떤 나라는 탈핵에 성공하고 어떤 나라들은 실패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살펴보니 처음부터 핵발전을 하지 않은 현명한 나라들이 많습니다.
유럽에는 덴마크, 그리스,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룩셈부르크, 포르투칼, 터키, 폴란드 8개국이 있고,
핵발전을 해오다가 탈핵을 선언한 나라는 오스트리아, 스웨덴, 벨기에, 네덜란드, 스페인, 그리고 최근의 이탈리아, 스위스, 독일 8개국입니다.
유럽 지도를 놓고보면 핵발전을 고수하는 나라는 이미 소수입니다.

핵발전 없는 나라로 꼽을 만한 선진국은 남반구의 호주와 뉴질랜드 두 나라가 있지요.
요즘 멀리 떨어진 이 두 나라로 이민들을 가는 이유가 있군요.

그러고 보면 정신이 제대로 박힌 나라에서는 벌써 탈핵으로 들어섰습니다.
프랑스와 영국만이 예외적인 나라가 아닌가요?
그리고 프랑스 영국 미국이나 중국 인도 이란 같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거나
일본처럼 핵무기를 보유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국가만이 핵발전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독일도 늦은 의미가 있지요.

우리는 이게 뭡니까?
핵무기랑 관련도 없는 나라가 부화뇌동하듯 핵발전소를 경쟁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들이 속으로 얼마나 비웃고 있을까요?
'혹시 무뇌아?'

경제성장한답시고 서두르다가
마치 사춘기 성장통이 왔을때 아무 생각없이 진통제를 맞고 크다가
어른이 되어서도 중단하지 못하고 습관성 마약처럼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대안이 없다'고요?
아니, 그게 말이 되는 얘깁니까?

독일과 일본을 다시 생각해봅니다.

독일은 영웅들도 많지만 백성들의 힘도 강한 나라라는 생각이 듭니다.
중세 교황의 절대권력에 반기드는 종교개혁은 아무 나라나 하는 게 아닙니다.
또, 그 이전에 초강대국 로마와 오랜 세월동안 싸워서
끝까지 굴복하지 않은 역사 등은 백성의 힘이 약하다면 어림없는 일입니다.
아마도 오랜 옛적부터 강인한 백성을 길러내는 그 동네의 토양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독일이 자랑하는 도시계획제도 가운데 지구상세계획(소위 B-Plan)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독일 도시가 아름다운 질서를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평가받는 이 제도의 특징은 마을의 모든 건축물의 외형적 경관은 주민들의 합의된 원칙을 따라야한다는 것인데 그 합의과정이 볼만합니다.
가령 건물외벽의 창문하나 개설하는 것과 같은 사소한 변화에 있어서도 그것이 사적인 영역을 벗어날 경우에는 마을사람들 전체가 동의될 때까지 몇년이고 교섭이 진행됩니다. 합의가 안되고 마냥 평행선을 달릴 때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합의가 되면 그것은 법과 같은 효력을 가집니다.
균등한 권리에 대한 긴장감이 걸려있고 백성들이 그걸 주체적으로 감내하는 힘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프로세스겠죠.
이 제도는 아무 사회나 운영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에 히틀러같은 자가 나오기도 했지만
전후에 백성들이 철저한 반성을 보이는 것도
스스로 주도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번 독일 탈핵의 과정도 70년대와 80년대의 반핵운동가 출신의 인문학도나 사회학도가 공과대학에 재입학하여 공학을 익힌 후, 재생가능에너지 기업을 창업하여 대안에너지 세력으로서 성장하게 됩니다.
2010년애 전체전력의 17%에 이르도록 성장한 비결입니다.
특히 10년전의 5%수준에서 이토록 급성장했지요.
(2010년 현재 핵발전은 전체전력의 22%. 한국은 35%)
그 과정의 결기는 귀감이 될만 합니다.

일본은 어떤가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 이해할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자국민이 100만이나 죽을 위기에 있고 국토의 1/4쯤은 포기해야할 상황인데다 연근해 해양이 영구적인 죽음의 바다로 바뀌고 있는데도 태연자약합니다.
최근에는 수상을 갈아치우면서 솔솔 원전회귀정책으로 가고 있는 게 보입니다.
어쩌면 구제불능의 나라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웃에 있는 우리로서는 당혹스럽습니다.
그런 정도의 재앙을 당했다면 시민들의 반발이 당연하고 상식입니다.
그런일을 당하고도 시위다운 반핵시위가 있는지조차 의심스럽습니다.
후지TV에 대한 '반한류'시위는 눈에 띄는데..
지금 세계도처에서 벌어지는 평균적인 주권재민의 상식적 운동조차 이 나라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한술 더떠서 핵발전에 대해 양심발언한 연예인들이 수난을 당한다는 기사가 보도되고 있습니다..
다수 백성들이 '쪽'을 못펴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일본이 원래 그런 건가요?
이거 정말 심각한 겁니다. 불똥이 우리한테 튀니까요.

십여년전에 일본에 1년가까이 머물면서 도시와 사회를 관찰한 적이 있습니다.
여행도 많이 다녔는데 가만히 보니까
백성이 뭔가를 주도해본 적이 없는 역사입니다.

원래 우리보다 비가 많은 편인데 화산지대의 3천미터급 산들로 대개 지형이 급경사여서 강들이 급류인데다 길이도 짧지요. 그러다보니 웬만한 동네는 옛날부터 큰 홍수피해가 많았습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먹고 살기 위한 농업토목이 발달할 수밖에 없는데
집단적인 공사는 수직적 조직과 분업이 체질화되어야 합니다.
마을 촌장의 권위가 대단했지요. 가령 촌장이 죽으라면 죽어야 하는 게 백성들의 팔자. 그게 봉건영주부터 현대까지 연속되고 있지요.

메이지유신도 엘리트들의 혁명이죠. 분업이 체질화된 백성덕분에 공업화는 대성공. 체질화된 분업은 '축소지향의 일본인'의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2차대전후 민주주의의 옷은 입고 있지만 제대로 된 시민데모가 없는 나라입니다. 엘리트계층이 제대로 작동했던 개화기, 그리고 미국이 최상층에서 군림해주었던 20세기 후반에는 나라꼴이 괜찮았지만 지금은 아닌것 같습니다.

이런 나라가 지금 전대미문의 대재앙을 맞아 어쩔줄 모르고 허둥거리고 있는 겁니다.

지금 일본의 문제가 무겁게 남아 있습니다.

다시 눈을 돌려 독일과 우리의 차이는 무엇인가?

독일은 우리보다 운도 좋은 것 같습니다.
동서독 통일과 EU출범후에는 이렇다할 긴장이 없는 세월이 지속되었는데
그 백성들이 이번에 시기적으로 탈핵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같습니다.
유럽여행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사회자체가 변화가 별로 없어서 '축구'라는 스포츠가 종교화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그런 사회는 탈핵정도의 이슈라면 상당한 긴장감과 집중력이 유발되었으리라 짐작이 됩니다.
그리하여 여하튼 문제를 잘 끌러내었네요..

우리는 좋게 말하면 다이내믹하고 나쁘게 말하면 롤러코스트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새 이슈가 폭탄터지듯 합니다.
남북대치에다가 4강에 둘러싸여 열강들 대리전 하느라 바쁘기도 하고
급성장의 후유증으로 내부문제가 여간 어려운게 아닙니다.
게다가 괴상망측한 4대강 같은 것들이 설치고 있고
모리배인지 사기꾼인지 알 수 없는 인물들이 정치인이랍시고 군림을 하지 않나..

엄청난 스트레스가 개개인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독일과 같은 집중력이 나오기 힘든 환경입니다.

어찌보면 우리도 일본 못지 않은 무기력증에 빠져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대재앙을 언론에서도 제대로 다루지 않고
어쩌다 외신에서 인터넷으로 흘러들어오는 소식만 표면화될 뿐.

이거 정말
도매금으로 넘어가는게 아닌가 하는..

그런데 말입니다.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커다란 에너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도 합니다.
백년동안에 백성들이 벌인
동학혁명 3.1운동 4.19의거 5월혁명 6월혁명 등은
인류사에서도 보기 드문 사건입니다..

그 원동력은 무얼까?
풀뿌리 민중이 뭘 믿고 그렇게 큰 소리 쳤을까?
바로 여기에 해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침 지난주 통영에 출장갔다가 박경리기념관에서 좋은 글귀를 봤습니다.
사진으로 첨부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