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할 수 있는 자유와 감금상태
이동할 수 있는 자유와 감금상태
  • 양영희의 길 위에 서서
  • 승인 2012.05.17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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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희(구름산초 교사, 혁신학교연구회장)

오늘 아침 갑자기 미얀마의 아웅산 수치가 생각났다. 장애인 이동권을 주장하는 장애우들이 어젯밤 광명시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불편한 몸으로 시청 현관에서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였을까?

정치적 이유로 11년의 감금생활을 한 그녀, 이제 막 의원으로 당선되어 문밖으로 나오게 된 그녀의 마른 체구와 머리에 단 꽃 장식. 내게 그 꽃 장식은 그녀가 놓지 않은 희망의 메시지로 보였다.

그래도 그녀는 감금 상태에서 지구촌 곳곳의 격려를 받고 세상의 중심에 있었기에 조금은 덜 외로웠을 것이다. 그러니 사회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감금상태와 같은 우리들’이 훨씬 더 희망이 없고 고통스러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난 여자로 살면서, 교사로 살면서 또 이 땅의 가난한 사람들과 권력의 그늘에 놓인 수많은 소수자들을 보면서 그리고 분단된 채 50여년을 발이 묶인 한반도를 보면서 이런 감금상태를 목격한다.

수치여사에게 그랬듯 감금은 형벌이다. 눈과 귀, 이동권, 발언의 자유와 관계를 막는 삶의 원천봉쇄가 감금 아닌가?

이렇듯 인간에 대한 존귀함이 사회적 상식으로 자리하지 못한 나라에서는 이동권이 보장된 일반인들도 커다란 사회적 감금상태에 있는 건 마찬가지이다.

곳곳에서 권한을 가진 자들이 권력을 사유화하고 있다. 또 그 권력을 기반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할 자들이 다른 이들의 입을 막고 생각을 막는 일을 우리는 밥 먹듯이 보아 오지 않았는가?

▲ 5월16일 경기장애인차별철폐순회 투쟁단이 광명시청을 방문해 이동권 확보를 요구하면 1박2일 집회를 진행했다.

학교 현장도 마찬가지다. 공교육의 변화를 위해 혁신학교들이 새로운 시도들을 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동력이 되어야 할 교사들이 한결같이 하는 얘기가 있다. 바로 교사들의 자율성을 인정해 달라는 것과 ‘민주적 의사결정구조’에 대한 요구이다.

어렵게 교사들이 새로운 실험들을 해내고 아이들과 꿈을 나누며 살아가려는데 긴 시간 동안 진행해 온 교사들 혹은 아이들의 논의과정과 실천을 한방에 날려버리는 관리자들이 많다. 학교 구성원 모두가 원해도 교장 개인이 동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교육적 철학도 논리적 설득력도 없이 자리로 밀어붙이는 현장은 참으로 암담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학교의 모든 결정권이 교장에게 있고 교사, 아이들, 학부모들의 이야기는 자신들이 내키거나 동의 할 때만 들어줄 사안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이런 벽을 만나면 교사들은 모든 사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안 된다’는 것에 대한 제어 장치가 없다. 시혜를 내리듯 오케이 사인을 기다려야 하는 것 밖에 없다면 그 곳도 이미 교사들의 ‘철학과 의지’는 감금상태인 것이다.

이런 일들을 관리자 개인의 문제로 만들지 않고 안정적 학교문화와 제도로 성장시키려면 교사회, 학부모회 법제화 밖에 없다고 본다.

어제 그 장애우들은 잘 돌아갔을까? 성한 몸으로도 힘든 시간을 어찌 지냈을까? 세상에 살아있는 모든 인간들은 자유롭게 이동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지, 어찌 밤샘 싸움으로 요구해야 할 항목인가?

그들이 버스도 전철도 타기 힘들고 친구만나 들어갈 음식점도 하나 없이 살며, ‘문밖을 나갈 수 없는 사람’이 되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교육을 받을 기회부터 인간관계를 맺고 사회활동을 하는 모든 것이 차단되어 있는 것은 무시무시한 폭력이다. 그 폭력이 일상화되고 자연스러운 대한민국에 나는 살고 있다. (2012.5.17)

광명혁신학교연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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