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소송과 바둑
민사소송과 바둑
  • 김준기
  • 승인 2012.05.17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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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기 변호사의 법률칼럼

필자는 바둑을 좋아하지만 즐겨 두지는 않는다. 한 때 바둑에 빠져서 살았지만 고시공부와 병행하느라 마음 놓고 빠져 보지도 못하였다. 그래서 바둑 실력도 그저 그런 정도이다. 나름대로 수 계산을 하여 보지만 잘 계산을 하지 못한다.

그러다가 요즈음 다시 프로들의 바둑 명국을 복기해 보면서 역시 재미있는 게임이란 생각을 한다. 그리고 바둑은 변호사들이 수행하는 민사소송과 매우 닮았다는 생각도 해본다. 사건 수가 많다면 아마 다면기를 두고 있는 것과 같지 않나 생각해 본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에서다.

포석은 바둑을 전개하기 위한 기초를 놓는 것과 같다. 흑과 백이 엇갈리면서 나름대로 중요한 위치를 선점해 간다. 이것은 원고가 소를 제기하면서 내는 소장과 피고의 답변서와 닮아 있다.

원고는 피고에 대해 소장의 청구취지에서 소송에서 자기가 얻고자 하는 결론부분을 제시한다. 그리고 청구원인 부분에서는 청구취지를 뒷받침하는 공격방법을 서술하고 가능한 증거방법을 서면으로 정리하여 첨부한다.

피고는 답변서의 답변취지에서 소송의 결론으로 얻고자 하는 바를 제시하고 답변이유에서 답변취지를 뒷받침하는 방어방법을 서술하고 역시 가능한 증거방법을 서면으로 정리하여 첨부한다. 피고는 반드시 방어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소장을 제출하여 원고를 공격함으로써 방어하기도 한다. 공격이 최상의 방어인 까닭이다.

바둑은 흑과 백 모두 한 번에 한 수씩만 두어야 하고 여러 수를 한꺼번에 둘 수는 없다. 이것은 바둑의 철칙이다 소송에서는 이것이 반드시 지켜지지는 않으나 유사한 면이 있다.

원고가 소장을 법원에 제출하면 피고는 답변서를, 이에 대해 원고는 다시 준비서면으로 반박하면 피고도 역시 준비서면으로 반박해 간다. 그러면서 자기가 주장하고 싶은 바를 진술하여 차례대로 공방이 오가면서 쟁점이 정리되어 간다.

이것이 어느 정도 익으면 법원은 변론준비기일을 지정하고 원피고 쌍방을 불러 쟁점을 정리하고 필요한 증거신청을 하게 한다. 변론준비기일은 1회가 될 수도 있고 4~5회 까지 갈 수도 있다. 그러고 나면 바둑은 최종적으로 중앙에서 대접전이 이루어지는데 소송에서는 감정이나 증인신문으로 재판을 정리하는 것과 유사하다.

바둑에는 불계패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이미 승부가 났다고 보기 때문에 돌을 던지고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다. 소송에서 이와 유사한 것으로 소 취하 또는 청구의 포기와 청구의 인락이라는 것이 있다.

‘소 취하’는 원고가 소를 제기하지 않은 것과 같은 상태로 돌리려는 것으로 쉽게 말하면 소송 제기한 것을 취소한다는 의미이다. 그 소송에서는 이기기 어려워 소를 취하하거나 후일을 기약하기 위해 하게 된다.

‘청구의 포기’라는 것은 말 그대로 원고가 더 이상은 같은 사건에 대해 피고에게 청구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명시적으로 졌다는 의미이고, ‘청구의 인락’은 피고가 원고의 청구를 인정한다는 것으로 피고가 명시적으로 졌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민사소송은 바둑과 닮아 있다. 일본 프로들 사이에서 본인방을 여러번 했던 조치훈은 바둑을 둘 때 목숨을 걸고 둔다고 했다고 한다. 바둑을 두면서 죽음을 떠 올리기는 쉽지 않고 바둑 두다가 죽었다는 얘기는 못 들어봤지만 그 만큼 사력을 다해 둔다는 의미일 것이다.

변호사들이 수행하는 소송도 이처럼 피가 마르는 게임이다. 변호사들의 소송 수임료가 요즈음은 많이 내렸지만 비싸다고 너무 불평하지 말았으면 한다.

김준기 변호사. 법무법인광명 소속변호사.본지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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