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명에서 시인 기형도를 기억한다는 것은?
광명에서 시인 기형도를 기억한다는 것은?
  • 김춘승 기자
  • 승인 2013.12.05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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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안문화의집, 기형도 시인 주제로 토론회 진행...기형도 시인 문화콘텐츠화 사업 방안 등 모색

“활달한 모습이 기억이 난다.
기타를 잘 쳤고, 노래도 잘 했던 사람이다.
짝다리 짚고 담배를 꼬나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회를 맡은 조동범 시인은 그를 이렇게 회상했다.

하안문화의집(관장 신영철)은 지난 12월3일 기형도 시인을 주제로 강연과 토론회를 개최했다. 금은돌 시인이 강사로 나서 ‘기형도 시에 대한 인식 전환을 위한 소고’라는 제목으로 주강연을 했다.

금 시인은 “기형도의 죽음에 덧씌워진 기존의 문학 논의에서 벗어나는 것이 문제제기의 시작이다. 젊은 시인의 죽음과 사망 당시(1989년)는 세기말의 분위기로 그에 관한 기존 글들 역시 죽음과 비극적 세계인식에 갇혀 있었다”고 평했다.

그런 문학적인 평가는 “<입 속의 검은 잎>의 해설을 맡은 문학평론가 김현의 글 <영원히 닫힌 빈방의 체험>의 영향이 컸기 때문이다”고 지적했다. 김현은 이 글에서 “그의 시가 그로테스크한 것은 타인과의 소통이 불가능해져, 자신 속에 암종처럼 자라나는 죽음을 바라다보는 개별자, ‘갇힌 개별자의 비극’적 모습이, 마치 무덤 속의 시체처럼 뚜렷하게 드러나 있는데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철학자이자 문학평론가 미하일 바흐찐은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의 특성은 격하시키는 것, 즉 고상하고 정신적, 이상적, 추상적인 모든 것을 물질·육체적 차원으로, 대지와 육체의 차원으로 이행시키는 것이다”고 정의했다.

젊은 생활인, 그를 만나다

금 시인은 “바흐찐의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의 관점에서 보면, 그의 시는 격하, 비하시키면서 물질화하지 않고, 웃음을 배제하고 있다”며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이라는 명명에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연극적 장치를 이용하여 시를 썼다는 것은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금 시인은 청중들과 <오후 4시의 희망> 전문을 낭송하며 그가 연극적 장치를 이용한 것을 설명했다.

“(금 시인)김은 약간 몸을 부스럭거린다, (청중)이봐, 우린 언제나 / 서류 뭉치처럼 속에 나란히 붙어 있네, (금 시인)김은 어깨를 으쓱해보인다”

“오후 4시는 석간신문의 마감시간이다. 그에게는 기자가 아니라 시인으로 탈바꿈하는 행복한 시간이다”며 말했다.

범인은 ‘휴일’이라는 노래를 틀고 큰 소리로 따라 부르며 / 자신의 목을 긴 유리조각으로 그었다 / … / 나는 안다, 가는 비……는 사람을 선택하지 않으며 / 누구도 죽음에게 쉽사리 자수하지 않는다 <가는 비 온다> 부분.

그는 ‘휴일’이라는 노래를 들으며 자신의 목을 유리조각으로 그은 지강헌에 대해 썼다. 금 시인은 “‘누구도 죽음에게 쉽사리 자수하지 않는다’에서 그는 현실적 죽음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표명한 것뿐이다”라며, “그에게 죽음은 미의식의 대상일 뿐이다”고 설명했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빈 집> 전문

금 시인은 “‘빈 집’은 그의 성장통의 흔적이 담긴 공간으로 해석 가능하다. 더불어 요나 콤플렉스로 설명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요나 콤플렉스는 어머니의 태반 속에 있을 때 무의식 속에 형성된 이미지로서 어떤 공간에 감싸듯이 들어 있을 때에 안온함과 평화로움을 느끼는 것이다.

금 시인은 하재연 시인과 심보선 시인의 좌담을 이야기하며 매조지를 했다. 하 시인은 “그는 80년대를 지나온 고백처럼, 무겁고 커다란 사회적 타자에 맞부딪히며 괴로워한 흔적들을 90년대 세대들에게 넘겨주는 역할을 했다”고 평했다. 심 시인은 “그는 한 세계를 정리하면서 또 다른 한 세계를 열어준 것 같아요”라고 평가했다. 금 시인은 “그는 진실로 ‘위대한 혼자’가 되어 당대 시인들도 실행하지 못했던 시적 성취를 선취했다”고 평가했다.

이어서 기형도 시노래 모임인 노래동아리 ‘시락’이 기형도 시에 곡을 붙인 <엄마 걱정>(최영주 곡)을 불렀다. 엄마를 기다리다 훌쩍거리는 그가 떠올랐다. 사회자 조 시인은 “음반은 팔지 않으나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고 소개했다.
(☞동영상 주소 http://www.youtube.com/watch?v=bYhfS0EyHVA)

시노래모임 '시락'의 공연.

그의 시에 담긴 소하동 여공, 안양천 뚝방의 안개, 388번 버스, 술집 작부들

토론회에서 김중현 중앙대학교 교수는 그의 시를 문화콘텐츠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공간에 시 낭송, 시를 쓰는 체험 등을 할 수 있는 창의적인 요소를 강구하고, 마니아층도 납득할 수 있을 만큼 세밀함을 보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한 “일본의 경우에는 콘텐츠 개발 위원회에 작가가 참여하고, 특정 작가의 작품과 콘텐츠 중심으로 관광지와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14년부터 ′22년까지를 사업기간으로 하고, 세 개의 단계로 나눈 사업계획까지 제의했다.

양철원 학예사는 “광명시 차원에서 그를 기억하는 사업을 추진한 것은 지난 ′06년부터다. 그해 6월 오리문화제 기간에 시민운동장에 시비를 세웠다”고 했다. 또한 “문화공원은 아직 공사 중으로 ′14년 12월 시에 인수될 예정이다”며, “생가가 소실되었지만 생가터 주변을 공원 등으로 조성하여 그의 문학을 이해하는 장소로 만드는 것을 연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기형도시인학교에서 그와 광명시가 연관된 스토리텔링을 연구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효성 광명문화원 국장은 “시민들은 그의 시들이 광명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에서 그와 관련된 사업들을 체계적으로 하지 못한 것은 고민하고 이끌어 갈 구심점인 광명문화원이 제대로 방향 설정을 하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충북 옥천에서는 ‘옥천신문’의 문제제기로 정지용 시인을 기리는 행사가 활발하게 전개됐다며, 지역언론의 역할을 강조했다.

자유토론에선 청중의 열기가 대단했다. 이미경(학원강사)씨는 “학생들이 그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시인공원에 봉사활동을 하게 해주고, 기형도 백일장을 개최했으면 한다”며 요청했다.

시비 설치나 시인공원 조성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다룬 청중도 있었다. 김세경(시인)씨는 “그의 시를 제대로 읽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 시민들이 그의 시를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금 시인은 “청중들의 열띤 분위기에 시샘이 난다. 그는 스물아홉에 죽었지만, 정말 행복할 것이다. 그를 스물아홉 청년으로 보고, 그의 시를 이야기해야 한다”며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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