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대통령, 과연 언론개혁의지 있나?
노무현대통령이 집권한 후 수구언론 특히 족벌신문(조선,동아,중앙)에 대한 비판은 지나간 정권과 비교하면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의 집권기간내에 확실한 언론개혁이 이뤄질 것이라고 큰 기대를 걸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언론개혁 운운하며 제기한 노대통령의 수구언론을 향한 쓴소리와 비교해서 최근에 보여주는 청와대의 ‘언론플레이’ 또한 예사롭지 않다.
노대통령이 측근의 비리를 심판받겠다며 재신임을 선언한 날이 지난 10일 금요일이었다. 그리고 지난 17일 시민사회단체 인사들과 만남에서 '파병과 관련해서 아무 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던 노대통령이 전격적으로 '파병 선언'을 한 날이 바로 그 다음날인 18일 토요일이었다.
먼저, 재신임을 선언한 10일 금요일의 의미를 살펴보자. 신문은 토요일 오전에 발행되는데 구체적인 여론조사 결과나 입장을 정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아니었다. 하지만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계속되는 방송은 상황이 달랐다. 신문이 없는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저녁까지 방송사는 재신임이냐 불신임이냐는 여론조사 결과를 줄을 이어 발표했다.
토요일까지 야당과 수구언론들이 ‘국민투표’로 가자며 반기던 논조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 당황하기 시작했고, 아예 월요일부터는 기존의 주장을 거둬들이기 급급했다.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대통령은 여론조사 우위라는 여세를 몰아 재신임 방식은 ‘국민투표’ 시기는 ‘12월15일 전후’라고 못 박아버린다. 대통령의 정치적 승리였고, 기막힌 언론플레이였다.
둘째, 파병선언은 아예 토요일에 발표했다. 개혁적인 신문들이 ‘악’소리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주말을 견뎌야 했다. 이 순간에도 방송은 뛰어난 역량을 과시한다. KBS의 경우 일요일 저녁 파병찬반 여론조사를 신속히 발표하며 파병을 기정사실화한다. 결국 파병이냐 아니냐는 2개 쟁점을 ‘파병반대’ ‘비전투병 파병찬성’ ‘전투병파병찬성’이라는 3개 쟁점을 형성시킴으로써, 비전투병 파병찬성이라는 중간지대로 여론을 모아낸다. 그러나 파병반대론자들이 적극적으로 대응해 오자, 파병규모가 2-3천명이냐 아니면 그 많아야 하는가 등 파병을 전제로 한 ‘규모논쟁’으로 몰아간다. 이 또한 대통령의 정치적 승리이고, 언론플레이의 높은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언론개혁을 말하면서 수구언론에 대해서 분명한 전선을 형성하고 있는 노대통령이 사안에 따라 절묘한 ‘시기선택’과 방송의 집중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연이어 현재의 난국을 요리하고 있는 것이다. 재신임은 스스로 만든 문제라치고, 파병문제는 한반도 평화, 한미관계, 국군의 생명 등 다양하면서도 결정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사안이다.
한데 이런 문제를 언론플레이를 통해서 해결해 간다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을 정도로 ‘정상적인 정치’로부터 일탈해 있는 대통령을 보면서 과연 ‘언론개혁’을 주장할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의심이 든다. 정상적인 정치행위를 통해서 국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고 국민들이 반대하는 사안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설득을 하든지 아니면 국민들의 뜻을 따르면 된다. 하지만 특정정치세력과 연계되어 있는 수구언론의 문제점을 비판하면서, 그 수구언론을 이용해서 자신의 정책을 관철시키는 노대통령의 정치행위를 보면서 ‘언론개혁’이 과연 무엇인가를 생각할 볼 필요가 있다.
사실 노대통령의 언론개혁과 관련된 그 동안의 주장은 대부분 청와대 및 정부여당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을 때만 나왔다는 공통점 때문이다. 냉정히 보면 정치를 제외한 다른 거의 모든 영역에서 수구언론의 대표선수들인 조중동과 노대통령의 코드간에 차이를 발견하기 어렵다. 특히 노동 농업 환경 경제 통일 외교 등을 살펴보면 노대통령이 보수언론 특히 조중동에 대해서 그렇게 강도 높은 비판을 가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이들 영역에서 청와대와 조중동은 거의 일치하는 ‘코드’를 과시해왔기 때문이다.
철도 노동자 파업에 대한 경찰투입 및 약100억에 달하는 손해배상청구, 농민들의 한-칠레자유무역협정 비준반대투쟁 탄압, 새만금사업 강행 기조유지 및 핵 폐기장 설립 부안 군민 반대시위 폭력진압, 법인세 인하,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 지지 및 파병 그리고 추가파병 선언 등 노대통령의 입장과 이를 적극 지지해 온 조중동의 보도태도를 보면, 도대체 어떤 점에서 노대통령과 조중동의 코드가 다른지 찾아낼 길이 없다. 특히 최근 파병선언과 조중동의 친노논조를 보면 ‘찰떡궁합’이 따로 없다.
이제 준엄하게 대통령에게 경고할 시점이 되었다. 언론개혁 운운하며 수구언론과 내용상의 연대를 하지 말든지, 아니면 정녕 언론개혁에 대한 굳은 의지가 있다면, 언론을 두고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기 위해서 수구언론을 이용하는 행태를 포기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 문제로 수구언론을 공격하는 ‘스트레스 해소용’ 발언을 자제하고, 편집권 독립 및 소유구조 개선 등을 위한 ‘신문관련법’ 개정과 현재 한나라당이 기도하고 있는 공영방송 죽이기 등에 대한 대통령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개진함으로써 실질적인 변화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2003. 10. 30민주노동당 광명지구당(준) 수석부위원장 전영일(전 KBS노조 위원장)
저작권자 © 광명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