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사퇴 결의안 3
총장사퇴 결의안 3
  • 김경일신부
  • 승인 2004.04.07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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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장사퇴결의안 3


신문학과 대학원입학생들이 한자리에 처음 모여 상견례를 하였다. 면면을 살펴보면 현재 경제신문사 간부로 계신 분을 비롯해 동아일보 현직기자 '새마을'이라는 잘 나가는 잡지편집책임자 등 평범하게 대학졸업하고 들어온 학생은 반도 안 되었다. 교수진도 정년은퇴 하신 원로교수, 독일에서 학위 받고 막 돌아오신 분, 교육방송국 간부 등 다양하였다.

안국동 뒷골목의 어느 고급 요리 집에서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인들이 불필요한 시중을 불편하게 들어주는 묵직한 점심 식사를 반주와 함께 곁들여 하며 걸판지게 개강파티를 하였다. 나는 하나마나한 체면치레용 시간 때우기 식 대화가 인내심 경진대회 형식으로 진행되는 한증탕 분위기에 먹은 게 체했는지 두통이 심하게 오고 하품이 계속 되더니 사래가 들려 기침을 요란하게 하고 급기야 딸꾹질까지 함으로써 동석한 분들께 강한 인상을 남겼는지 자리에서 일어날 때쯤에는 교수들이 내 이름은 모두 다 외우고 있었다.

파티가 끝나고 학생신분의 아랫것들은 따로 모여 뒷풀이를 하였다. 나는 여전히 속이 불편해 찻집 여주인을 불러 빌린 바늘로 손가락 끝을 찔러 시커먼 피를 뽑았다. 새마을운동을 주도하는 관변잡지를 내던 분은 갑자기 양지에서 음지로 바뀐 시국의 급변에 극도의 공포를 느끼고 있었고 다시는 정치색을 띤 직업을 갖지 않겠다고 얼이 빠진 사람처럼 혼잣말로 되뇌곤 했다.

동아일보 기자는 아예 사표를 품에 넣고 다닌다며 기사를 만들어 올려도 편집에서 다 잘려 버린다고 했다. 기자생활을 계속 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사연을 들으니 무언가 위험한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었다. 냄새 맡는 데는 귀신인 사냥개의 후각을 가진 기자들이 무얼 보았는지 지레 겁을 먹고 있는 데다 누군가 기자들이 혓바닥을 함부로 놀리지 못하도록 철사 줄로 재갈을 물려 놓은 게 분명했다.

학교로 돌아오니 긴급조치 복학생들이 종전으로 귀환한 병사들처럼 환영을 받으며 교내를 활보하고 있었다. 문득 법대 과대표였던 최경상이 생각났다. 유신 시절에 데모를 주동하다 군에 강제입대를 당했고 제대 직전에 군대에서 석연치 않은 교통사고로 숨진 같은 과 친구였다. 그저 순진한데다 술 먹으면 불행한 조국의 현실에 비분강개해 울기 잘하는 평범한 친구였는데 과 친구들은 군바리들이 죽였을 거라고 했다. 살아있었다면 지금쯤 우리 앞에서 춤추며 돌아다닐텐데.

저녁나절 학교교정에서 누가 내 손을 꼭 잡고는 "자네가 몇 년째 감옥산다는 백남기 아닌가?"라고 반색을 했다. 법대 선배 중에 나와 똑 닮은 빵잡이 민주투사가 있다더니 착각을 일으킨 모양이다.

며칠 뒤 대학원 첫 수업을 들어가니 은퇴교수님이 사회정의에 대한 신문기자의 사명과 역할에 대해 가슴이 뛸 정도로 열정적인 강의를 해 주셨다. 그는 일제시절 아사히신문사 기자를 지낸 동아일보 원로 중의 한 사람이었다. 교수님은 신간으로 나온 책 한 권을 소개했다. 이화여대 출신 소장학자의 저술인데 일제식민통치시대 동아조선일보의 반민족적 친일기사만 뽑아서 본격적으로 비판한 최초의 역작이었다.

책의 서문에는 저자의 서너살 된 어린 딸이 엄마가 저술에 몰두하느라 함께 놀아주기 어려운 탓에 혼자 베란다 난간에 매달려 놀다 떨어져 죽은 가슴 찢어지는 사연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표현되고 있었다. 저자로서는 어린 딸의 생명과 맞바꾼 저작이었던 것이다.

운동권 학생 식으로 표현하면 금수강산을 지옥의 아비규환으로 이끄는데 지대한 공을 세우고 아세곡필 차원을 넘어 일제의 침략전쟁에 이 땅의 젊은이들을 총알받이로 내 몰은 당시의 언론이 초래한 조국인민의 억울한 죽음 또한 이루 셀 수 없는 것일 터인즉 진정한 민족해방과 친일청산의 민족적 과업은 여전히 기득권세력인 친일잔재들과의 목숨을 건 투쟁을 요구하는 일이라는 저자의 뜻이 노골적이고 폭로적인 서술과 함께 아픔으로 전해져 왔다.

저자는 딸아이의 이름을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담아 민주로 지었다는데. 자식의 이름으로 짓기에는 피 냄새가 너무 짙게 배어있는 부담스럽고 어두운 이름이다. 교수님은 논조가 너무 감정적이고 편향적이라고 불만을 표시하였다.

동아일보 입장에서는 날벼락을 맞은 것이라고 하겠지만 발행된 신문의 기사라는 것은 시퍼렇게 살아있는 지울 수 없는 역사이니 부정할 수도 없는 일. 노교수님은 신문학이 얼마나 치열하고 준엄한 학문인지 게다가 위험하기까지 한 학문인가를 책 한 권을 소개하는 것으로 드러내 보여준 셈이었다.

강의가 끝나고 노교수는 대학원 강의를 위해 연구실 한 구석을 특별히 허락해 준 현직 교수에게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깍듯하게 예의를 표했다. 각박한 교수세계에서 쉽지 않은 배려였기 때문이다. 은퇴한 교수는 어디에 앉아 있어도 불편하고 앉을 자리를 찾는 일도 쉽지 않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공부 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는 사람들의 치열한 자리다툼은 살 떨리게 처절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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