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핵사찰 수용, 리비아 WMD 포기, 북한은?
이란 핵사찰 수용, 리비아 WMD 포기, 북한은?
  • 정욱식
  • 승인 2003.12.22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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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핵사찰 수용, 리비아 WMD 포기, 북한은?


2003년 12월 넷째주는 부시 행정부에게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지난주 월요일 후세인 체포로 시작돼, 화요일에는 부시의 이라크 정책에 반대해왔던 독일과 프랑스가 이라크의 부채 탕감을 약속했다.

뒤이어 목요일에는 북한, 이라크와 함께 부시 행정부에 의해 '악의 축'을 규정된 이란이 전격적으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부속의정서에 서명해 핵사찰을 수용하기로 했고, 금요일에는 알-케에다의 자금으로 보이는 2억3천5백만 달러를 몰수했다고 시리아 정부가 부시 행정부에게 알려왔다.

그리고 금요일 오후, 리비아의 통치자인 모아마르 가다피가 핵무기, 생화학무기, 탄도미사일등 이른바 '대량살상무기(WMD)'를 포기하고 국제기구의 사찰을 받겠다고 전격 발표해, 부시 행정부에게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안겨주었다.

이러한 외교적 호재에 고무된 부시 행정부는 깡패국가와 테러집단에게 선제공격도 불사하겠다는 이른바 '부시 독트린'이 "본격적으로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했다"며, 부시의 외교정책에 비판해온 국내외 세력에 대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외교적 호재는 곧바로 부시 대통령의 지지율 반등으로 이어져, 2004년 재선 가도에 청신호가 켜지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국제사회의 이목은 부시 행정부와 맞서고 있는 유일한 나라가 되고 있는 북한에게 더욱 쏠리고 있다. 북한도 이란과 리비아와 흡사하게 미국 주도의 '힘의 외교'에 굴복할 것인지, 아니면 미국과의 정면대결도 불사하면서 핵카드를 고수할 것인지, 아니면 "깡패국가와는 협상하지 않겠다"는 부시 행정부의 강경기조를 뚫고 '대타협'을 이끌어낼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것이다.


'샴페인 터트리는' 부시 행정부

후세인 체포, 독일·프랑스의 이라크 부채 탕감, 이란의 핵사찰 수용, 리비아의 WMD 포기 등으로 '행복한 한 주'를 보낸 부시 행정부 안팎의 강경파들은 한층 고무된 표정이다. 이들은 이와 같은 '상이한' 외교적 성공들이 모두 "미국 힘의 과시"라는 하나의 원인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부시 독트린'이 본격적으로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강경파들은 안팎의 비난의 초점이 되어왔던 '이라크 침공 및 점령'을 정당화하는데 위와 같은 외교적 호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워싱턴포스트는 21일자 신문에서 "이라크에서의 인상적인 승리가 동맹국과 적대국 모두에게 위협이 되었고, 이들로 하여금 다른 지역에서도 미국의 이익에 복종하게 만들었다"며 들떠 있는 미국 강경파들의 인식을 소개하기도 했다.

부시 행정부의 외교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리처드 펄 국방정책 자문위원은 "이것이 바로 부시 독트린의 핵심"이라며, "더 강력한 정책은 유화정책보다 적대국들에게 더 많은 협력을 이끌어내게 한다"고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특히 이라크 침공이 "다음은 너의 차례"라는 인식을 적대국에게 심어줌으로써, 이란, 리비아, 시리아 등의 양보를 가져왔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강경파들은 부시 행정부에게 반기를 들어왔던 프랑스, 독일 등이 최근 대미 유화 제스쳐를 취하는 것 역시 '이라크 효과'라고 보고 있다. 즉,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독일, 프랑스에게도 "또 다른 이라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우려를 갖게 해, 이들 국가들이 이란의 핵사찰 수용 발표에 적극적인 역할을 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외교적 호재가 잇따르고 부시 행정부 안팎에 포진하고 있는 강경파들의 '부시 독트린' 숭배 의식이 한층 강해짐으로써, 부시 독트린은 더욱 맹위를 떨칠 것으로 보인다. 내년 대선 전략으로 민주당 후보에 대한 '안보 공세'를 핵심전략으로 짜고 있는 부시 행정부는, 이러한 외교적 호재를 기회로 삼아 재선 전략 차원에서도 부시 독트린을 한층 강화시키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에는 어떤 영향줄까?

이제 관심의 초점은 북한으로 모아지고 있다. 표면적으로 볼 때, 유일하게 '부시 독트린'에 굴복하지 않은 나라가 북한이기 때문이다.

일단 '힘의 외교'에 한층 고무된 부시 행정부는 북한에 대해 압박을 높여나갈 것이다. 부시 대통령이 지난주 "김정일 위원장도 리비아를 본받아야 한다"거나, 후세인의 운명을 가리키면서 "미국과 동맹국들의 이러한 행동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거나 추구하고 있는 정권들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언급한 것은 이를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동시행동'과 '일괄타결' 원칙을 접고, 부시 행정부의 '선(先) 핵폐기' 요구에 굴복할 가능성은 극히 낮아 보인다. 미국에게 강력한 항전 의지를 보여야 안전을 도모할 수 있다는 지난 반세기간의 대미 전략은 쉽게 흔들릴 수 없는 속성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생존의 기회가 될 것으로 믿었던 제네바 합의가 '배신의 늪'이 되고 말았다는 '학습 효과' 역시 북한의 지도부는 강하게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부시 행정부의 의도에 대한 '북한의 경계심'이다. 즉, 북한 나름대로 타협안을 내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시 행정부가 계속 비타협주의를 고수하고 있는 이유는 결국 '핵문제'를 핑계로 삼아 자신을 제거하려한다는 불신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이라크 효과'에 대한 북한 지도부의 해석과 대응으로도 바로 연결된다. 미국의 강경파들은 지난 4월 북한이 3자회담을 수용한 이유를, "후세인 동상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김정일은 자신의 아버지 동상이 흔들리는 것을 봤기 때문"이라며 북한이 미국의 힘의 외교에 굴복한 것으로 해석했었다.

그러나 북한은 3자회담에서 대담한 제안을 내놓는 한편, 핵무기 보유 시사와 핵억제력 확보 발언 등을 통해 오히려 '핵시위'를 강화했다. '힘의 외교'를 숭배하는 미국 강경파들의 허를 찌른 것이다.

북한을 이란, 리비아와 단순비교하는 것 역시 무리가 따른다. 이란, 리비아는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의 포기에도 불구하고 안전을 도모할 수 있다는 판단이 이러한 양보조치를 취하는데 중요한 배경이 된 반면에, 미국, 남한, 일본과 맞서 있는 북한으로서는 일방적인 대량살상무기 포기를 곧 '무장해제'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란과 리비아가 파격적인 양보를 취한 과정 역시 북한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우라늄 농축 시설 보유와 핵재처리 시설 등을 통해 핵무기 개발 의혹을 받아온 이란이 선택한 협상 대상은 미국이 아니라, 독일·프랑스 등 유럽연합이었다.

즉, 이란은 자신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미국을 우회해 상대적으로 협상이 용이한 유럽연합을 통해 IAEA의 부속의정서에 서명함으로써 평화적인 핵이용의 권리를 확보하고 유럽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안전 및 발전을 모색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이는 북한과는 상이한 지정학적 위치와 경제구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리비아 역시 공식적으로는 일방적인 WMD 포기로 나타났지만, 지난 9개월 동안 미국, 영국과의 비밀 협상을 통해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와의 관계 개선 및 경제제재 해제를 약속받고 WMD 포기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즉, WMD 포기 이후에 미국의 경제제재 해제와 관계 정상화가 가능하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 리비아의 WMD 포기의 가장 결정적인 배경이라는 것이다. 동시에 외부의 위협보다는 경제불안 및 군부의 불만으로 인한 내부의 위협이 더 크다고 느껴온 가다피 정권의 판단 역시 중요하게 작용했다.

이는 북한과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영국과 함께 리비아 정권과 비밀리에 '직접 협상'을 벌였지만, 비밀이든, 공개적이든 북한과의 직접 협상은 줄곧 거부하고 다자회담을 고수해왔기 때문이다. 또한 리비아와는 달리 북한에게는 핵포기에 따른 구체적인 보상을 약속하지 않는 것 역시 커다란 차이점이다.


북핵 문제, 미 대선의 중요 이슈로 부각될 듯

또 한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북한이 '부시 독트린'에 굴복하지 않는 유일한 국가로 부각되면서, 2004년 11월 미국 대선에서 이라크 문제와 함께 최대 외교적 이슈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북한의 선택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다.

부시 행정부의 재선 여부는 북한의 생존전략과 직결된 문제이다. 이에 따라 북한이 부시 행정부의 요구를 수용해 선(先) 핵폐기를 약속할 경우, 부시의 외교적 승리에 마침표를 찍어주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부시에게 굴복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반면에 부시 행정부는 북한의 항복을 받아내면 재선 가도가 더욱 탄탄해질 것으로 볼 것이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외교적, 군사적 압박을 높여나갈 가능성이 높다. 동시에 동맹·우방국들의 외교적인 압박이 이란, 리비아의 양보를 가져왔다며 남한, 일본, 중국, 러시아 등에게 대북한 압박에 동참해줄 것을 요구하는 것 역시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노무현 정부는 중국과 함께, 6자회담의 안정적인 관리와 북-미간의 이견 해소를 위해 한층 강화된 외교전에 나서야 할 것이다. 특히, 재선을 앞둔 부시 행정부에게 6자회담을 통해 북한과 타협하는 것이 대선전략 차원에서도 유리하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설득하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부시 행정부가 주장한 것처럼 '다자회담'이 구성되었고, 6자회담을 통해 제네바 합의를 대체할 새로운 포괄 합의문을 도출하는 것이 북한의 굴복을 추구하는 것보다 현실적이라는 점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미국 주도의 대북한 경제적, 외교적, 군사적 압박 노선에 반대하는 점 역시 확고히 주지시켜야 할 것이다.

정욱식/2003년 12월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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