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회담 결산과 향후 과제(1)] 왜 돌파구 마련에 실패했나
[2차 회담 결산과 향후 과제(1)] 왜 돌파구 마련에 실패했나
  • 정욱식대표
  • 승인 2004.03.05 14:2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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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회담 결산과 향후 과제(1)] 왜 돌파구 마련에 실패했나


남북한과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이 참여하고 있는 6자회담 2차 회의가 의장성명 채택과 막을 내렸다. 당초 3일간으로 예상됐던 이번 회담은 막판 공동언론발표문 문안에 대한 이견으로 하루를 넘긴 28일에 끝났다.

중국측 대표가 발표한 의장성명에서는 6자회담의 유용성 확인, 한반도 비핵화와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의지 표명, 평화공존 의지 표명과 핵문제 및 관련된 관심사를 다루는 데 있어서 상호조율된 조치로의 접근, 6월 이내에 3차 회담 개최 및 워킹그룹 구성 등이 담겨 있다.

이번 2차 회담의 성패를 가늠하는 ‘최소한의 기준’은 공동언론발표문 합의 여부, 워킹그룹 구성, 3차 6자회담 일정 합의 등이었다는 점에서 이번 회담을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은 핵심 쟁점들에 대한 합의에 실패함으로써 ‘대화의 모멘텀’을 살려나간다는 이상의 의미를 갖기 힘들고, 그나마 공동언론발표문보다 한 단계 위상이 낮은 의장성명을 채택하는데 머물러 ‘절반의 실패’를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우선 성과의 배경에는 6자회담이 좌초될 경우 적지 않은 부담을 떠 안을 수밖에 없는 북한과 미국이 신중한 태도를 보였고, 한국이 구체적인 대안을 준비해 북미 양측의 입장 조율에 적극적으로 나섰다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주최측인 중국과 러시아의 거시적인 중재 노력도 한몫 했다고 할 수 있다.


왜 ‘돌파구’는 열리지 않았는가?

그러나, 이번 2차 회담은 ‘돌파구’ 마련에는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핵심 쟁점들과 관련해 ‘원칙적인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에도 실패함으로써, 북미간 대결의 조기 해결이 어렵게 된 것이다.

핵심 쟁점들로는 △북한의 핵 포기와 미국의 대북한 다자간 안전보장 표현 방식 △‘동결 대 보상’ △고농축 우라늄(HEU) 문제 등이 있었다. 그러나 북한과 미국은 이러한 쟁점들에 대해 이견을 좁히지 못함으로써, 의장성명에는 본질적인 내용들이 빠지게 된 것이다.

우선 북한의 핵 포기 표현과 관련해 북한은 기조연설에서 “평화적 핵활동을 제외한 핵무기계획 폐기”를, 미국은 이른바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되돌이킬 수 없는 핵폐기)'를 고수함으로써 합의의 난항을 예고했다.

미국은 북한이 말한 “평화적 핵활동을 제외한”을, 핵 폐기 과정을 군사적 목적과 비(非) 군사적 목적으로 세분화해 더 많은 보상을 따내려는 협상전략으로 받아들여 이를 거부했다. 반면에 북한은 CVID를 수용할 경우 자신의 핵주권까지 완전 제거될 수 있다는 판단으로 거부했다.

이에 대해 한국, 중국, 러시아 등은 CVID 가운데, ‘완전한(complete)'이라는 용어대신 '모든(all)', 혹은 포괄적인(comprehensive)'이라는 포괄적인 표현으로 우회할 것을 권유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북미 양측이 이처럼 “평화적 핵활동”을 놓고 충돌한 것은 경수로 사업에 대한 동상이몽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제네바 합의에 따라 건설 중이던 경수로는 작년 12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집행이사회의 합의를 거쳐 1년간 일시 중단하기로 된 상태이다.

클린턴 행정부 때 체결된 ‘제네바 합의’를 미국 외교의 치욕으로 여겨온 부시 행정부는 출범직후부터 경수로 사업 중단을 원했었고, 2002년 10월 ‘북핵 파문’ 이후 이를 근거로 경수로 사업을 완전히 중단시키려고 해오고 있다. 반면, 극심한 에너지난에 시달리고 있는 북한은 핵폐기의 전제조건으로 김일성 주석의 유훈 사업이기도 한 경수로의 완공을 고수해왔다.

이러한 북미 양측의 경수로에 대한 상반된 생각은 북한의 핵 포기 ‘표현’에도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은 “평화적 핵활동”은 보장받음으로써 경수로 사업을 지속시킬 근거를 확보하려고 했던 것이고, 반면에 미국은 CVID를 관철시켜 경수로를 포함한 북한의 핵 잠재력을 완전히 제거시키려고 했던 것이 근본적인 충돌 지점이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북한이 제안한 ‘동결 대 보상’ 역시 합의에 도달하는데 실패했다. 대원칙, 즉 북한의 핵폐기와 미국의 대북한 안전보장에 대한 ‘용의 표명’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동결 대 보상’ 문제에 대한 합의에 도달하기란 애초부터 무리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이 중국, 러시아의 협조를 바탕으로 대북 에너지 지원 카드로 북미 양측을 설득함으로써 상황 악화 방지를 위한 초석은 놓여졌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의 핵 동결에 대한 보상은 없다”는 미국과 에너지 지원뿐만 아니라 테러지원국 해제 및 정치•경제•군사적 제재와 봉쇄 철회를 핵동결에 대한 보상으로 요구한 북한 사이에서 접점을 만들어내려고 했던 것이다.

이러한 전략을 바탕으로 북한이 핵 폐기의 과정으로서의 ‘핵동결'을 수용하고 동결 기간은 최소한의 기간이 되어야 하며 검증가능한 방식을 수용할 경우 한국과 중국, 러시아는 에너지 지원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을, 미국과 일본은 다른 나라의 지원에 반대하는 않는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2차 회담 전부터 관심의 초점이었던 HEU 문제 역시 합의에 도달하는데에는 실패했다. 미국은 북한이 HEU 존재를 시인하고 폐기할 것을 약속할 것을 요구했고, 북한은 HEU의 존재 자체를 부인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HEU의 논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미국은 북한이 HEU를 시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워킹그룹 구성 및 3차 회담에 합의함으로써, 우려했던 파국은 피하게 됐다. 이는 한국, 중국, 러시아가 워킹그룹에서 이 문제를 논의하자고 설득했던 것이 주요했다고 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 주도적 역할 강화해야

이번 회담에서 높이 평가할 만한 대목은 그 동안 이렇다 할 역할을 하지 못했던 한국이 구체적인 대안을 만들어 이번 2차 회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특히 북미 양측의 입장 차이를 면밀히 분석해 접점을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사전에 미국/일본을 설득하고 북한과 접촉해 설명하는 등 전방위 외교를 펼친 것은 대화 분위기 조성에 큰 기여를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아쉬운 대목들도 많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핵심 쟁점들과 관련해 원칙적인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함으로써, 위기의 불씨를 제거하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물론 이는 한국 외교의 실패라기보다는 사안의 복잡성과 북미 양측의 이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회담에서 위기의 불씨를 제거하는데 실패한 반면에 대화의 모멘텀은 살렸다면, 중요한 것은 앞으로 있을 워킹그룹 회의와 3차회담이라고 할 수 있다. 상반기에 있을 이들 회담에서도 핵심 쟁점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하면, 북미간의 대결과 핵문제는 장기화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한국이 이번 회담에서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초석을 놓았다면, 이제부터는 핵심 쟁점들에 대한 주도 면밀한 대응책을 마련함으로써 주도적 역할을 공고화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는 구체적인 현안들이 논의될 워킹그룹 회의를 잘 준비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3, 4월 경에 열릴 것으로 보이는 워킹그룹 회의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2차 회담에서 합의하지 못한 쟁점들을 면밀히 분석해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2차 회담 초기부터 쟁점으로 부상한 북한의 “평화적 핵활동”과 관련해, 경수로 사업으로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즉, 올해 11월까지 잠정 중단된 경수로 사업과 관련해, 북한 핵문제가 해결 국면에 접어들면 공사를 재개하는 것을 한-미-일이 북한에 약속하고, 북한은 경수로 사업을 제외한 모든 핵 프로그램을 폐기하는데 동의하는 것을 이끌어내는데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국내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국이 이번에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미국이 중단한 에너지 제공을 한국이 중국, 러시아와 함께 미국 대신에 해줄 수 있다는 방안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안은 94년 제네바 합의 때처럼, 협상은 미국이 하고 비용은 한국이 부담한 것과 비슷한 전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10년전과는 달리, 한국도 협상의 당사자로 참여하고 있고, 30억달러가 넘는 경수로 비용과 비교할 때 에너지 지원 비용이 크지 않으며, 미국의 요구가 아닌 한국의 중재 방안으로 나온 것이라는 차이점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 주도의 에너지 지원 방안이 제2의 경수로 논란으로 비화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이미 10억 달러가 넘는 엄청난 비용이 투입되었고 남북 화해협력에 크게 기여한 경수로 사업을 미국으로부터 확약 받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중요한 것이 또 있다. 정부는 향후 회담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과 동시에, 6자회담의 ‘틀 밖’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즉, 시야를 넓게 가지고 한미합동군사훈련, 미국 주도의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 구상(PSI) 등 6자회담 프로세스를 위협할 수 있는 요소들을 평화적으로 관리하면서 남북관계의 발전 등을 통해 평화적 해결의 여건 조성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6자회담에서 동북아 중심국가 비전을 실현하는데 도움이 되는 계기들을 찾아내 이를 극대화하려는 전략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정욱식/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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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촌에서 2004-03-05 14:22:14
선생님 늘, 반갑게 읽고 있습니다. 한번 만났으면..., 절대 굽히지 않을 분을 내가 본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