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다가온 진검승부, 한반도와 MD
또 다시 다가온 진검승부, 한반도와 MD
  • 정욱식대표
  • 승인 2004.03.19 17: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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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다가온 진검승부, 한반도와 MD
펜타곤, MD 언론플레이 펼쳐


장면 1 : 미 상원 MD 청문회

"현재의 미사일방어체제로 북한의 미사일을 제대로 요격할 수 있다고 우리는 확인할 수 없지 않은가?"(잭 리드,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

"당신 말이 사실이라고 말할 수 있다."(토마스 크리스티, 국방부 실험평가국 국장)

회계연도 2005년도 국방예산 심의가 미 의회에서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연례 행사처럼 반복되어온 미사일방어체제(MD)와 북한위협론의 적실성에 대한 논란이 올해에는 더욱 가열되고 있다. 위에서 소개한 내용은 지난주 목요일(미국 시간) 미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의 한 장면으로써, 국방부 관계자조차 MD의 효율성을 장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시 행정부는 "없는 것보다 낫다"며 MD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상원 군사위원회 민주당 간사를 맡고 있는 칼 레빈 의원. 그는 대표적인 미국 내의 'MD 신중론자'이었으나, 9.11 테러 이후 국가안보를 절대시하는 분위기에 눌려 MD에 대한 비판을 자제해왔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식의 국가안보전략에 대한 미국인들의 지지가 떨어지고, 대선을 앞둔 부시 행정부가 MD를 대선용으로 활용할 조짐을 보이자, 레빈은 MD에 대한 비판의 포문을 다시 열었다.

"MD는 가능성이 없는 장거리 미사일 공격을 막겠다는 불확실한 방어체제이다. 더구나 펜타곤이 지상요격체제와 인공위성, 그리고 레이더 기지 건설을 강행하는 것은 무기를 배치하기에 앞서 현실적이고 작전 가능한 실험을 거치도록 한 법을 위반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청문회에 참석한 국방부 관계자들은 지금까지의 실험을 만족할 만한 것이었다며, 100% 성능을 확인할 수 없지만 조속히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요격용 MD를 배치해야 한다고 맞섰다.

특히 이 청문회에 참석한 조지 테닛 CIA 국장은 북한이 핵탄두를 탑재해 미국 본토까지 공격할 수 있는 대포동 2호 미사일을 시험 발사할 수 있다며, '북한위협론'을 통해 민주당의 공세를 무마시키고자 했다. 테닛 국장이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 가능성을 들고 나온 것은 MD관련 법안이나 예산 심의가 있을 때마다 반복된 것이다. 그러나 6년전부터 경고해온 북한의 대포동 2호 시험 발사는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장면 2 : 미국 전략사령부의 북한 핵미사일 요격 시뮬레이션

"동아시아에 있는 한 나라로부터 6기의 핵미사일이 미국 도시를 향해 날라오는 장면이 컴퓨터 스크린에 떴다. 그러나 이들 미사일을 떨어뜨릴 요격 미사일이 고갈되고 있다. 나는 보이즈(미국의 북서부에 있는 도시)를 구해야 하는가, 앵커리지를 구해야 하는가?"

미 의회에서 MD 문제로 민주당과 부시 행정부가 격돌하던 3월 중순, 콜로라도 스프링스 소재 전략사령부에서는 북한의 핵미사일 발사를 가정한 요격 시뮬레이션이 펼쳐졌다. 이 자리에는 뉴욕타임즈의 제임스 글렌즈 기자도 초청되었다. 그것도 미국 대통령으로….

뉴욕타임즈 17일자 신문을 통해 참관기를 쓴 글렌즈 기자는 MD 시뮬레이션이 언론에 공개되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MD를 놓고 부시 행정부와 민주당이 격론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펜타곤이 적극적인 언론플레이에 나선 것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미사일방어 전쟁게임"으로 명명된 이 시뮬레이션에서 가상 적국으로 등장한 나라는 "일본해(동해)에 있는 "미드랜드"이다. 시뮬레이션인 만큼, 적국도 가상으로 설정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북한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글렌즈가 윙크를 하면서 "북한은 아니다"라고 기사를 쓴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글렌즈 기자의 기사는 계속된다. 6기의 핵미사일 가운데 2기는 "미드랜드" 상공에 배치된 '항공기탑재레이저(ABL)로 요격되고, 1기는 지상 MD로 요격되었다. 나머지는 핵미사일은 3기…. 그러나 요격미사일은 4기밖에 남지 않았다.

확률상 4기의 요격미사일로 3기 모두를 요격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에, 가상으로 대통령이 된 글렌즈는 어느 도시를 구해야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두고 클렌즈는 "가능한 많이 요격 미사일을 빨리 사라는 뜻 같았다"고 비꼬았다.

"앵커리를 구해야 하는가, 보이즈를 구해야 하는가? 알파벳 순서로 할까, 아니 인구가 많은 도시를 살릴까, 국민총생산(CDP)의 기여도로?"

가상의 미국 대통령이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을 때, 헐리우드 영화처럼 3기의 요격미사일이 3기의 핵미사일을 모두 요격했다는 소식이 날라왔다. 미국이 구원된 것이다. 그것도 1기의 요격미사일을 남겨놓고….

글렌즈는 이렇게 기사를 끝냈다. "이제 나에게는 한 가지 확실한 것이 남아 있다. 미드랜드에는 있는 미국의 적에게 나쁜 날을 선사해주는 것이다."


북핵의 상대는 'MD'

정확히 4년전에도 미국 내에서는 오늘날과 비슷한 논란이 있었다. 죽어가던 '스타워즈'의 꿈을 '북한위협론'을 극대화하면서 되살리는데 성공한 공화당은 김대중-클린턴의 대북포용정책에 큰 불만을 품고 있었다. 북한과의 관계가 좋아지면 MD의 가장 큰 명분을 잃을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공화당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클린턴 행정부는 NMD(클린턴 행정부 때의 명칭. 현재는 MD로 통합됨)를 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는 처지에 몰렸다.

클린턴 행정부가 이 문제에 골몰하고 있을 때, 한반도에서 충격적인 소식이 날라왔다. 바로 남북정상회담이다. 정상회담 성사 소식이 전해지면서, 미국 내에서는 북한위협론의 타당성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공화당은 당황하기 시작했고, 클린턴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본격 가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0년 9월, 클린턴 대통령은 NMD 배치 여부를 차기 정권으로 넘기겠다고 발표하고는, 북한의 2인자인 조명록 차수를 만나 북미 관계 정상화 방안을 논의했고, 매들린 올브라이트를 평양에 보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게 했다. 그리고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에 합의하게 된다.

그러나 공화당을 비롯한 미국 내 강경파들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스타워즈'의 꿈을 클린턴의 평양행 비행기와 함께 날려보낼 수 없었던 것이다. 강경파들은 부시의 당선을 계기로 다시 힘을 얻기 시작했고, 클린턴의 방북을 가로막았다.

"의회와 전문가 그룹의 많은 사람들이 북한과 하는 거래가 국가미사일방어체제(NMD) 구축의 명분을 약화시킬 것을 우려했기 때문에 북미 정상회담에 반대했다."

올브라이트가 2003년 9월에 발간한 자서전에서 시인한 내용이다.

2004년 한반도와 미국. 또 다시 4년전의 진검승부가 재연되고 있다. 4년전에는 북한 미사일이었다면, 오늘날에는 '북핵'이다. 미국의 대선이 있는 것도 비슷하고, MD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도 비슷하다.

그렇다면 4년전의 일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그것은 미국의 입장에서 북한과의 평화와 MD는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4년전에는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이 딜레마를 풀었다. 그리고 MD에 사활을 걸어온 부시 행정부 출범이후 3년동안 미국으로부터 반격을 받기도 했다. 4년전과 마찬가지로 한반도의 평화를 MD의 희생양으로 삼지 않을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발휘할 수 있을지 자못 주목되는 2004년이 아닐 수 없다.

정욱식/ 2004년 3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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