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차출, 우려할 일 아니다.
주한미군 차출, 우려할 일 아니다.
  • 정욱식대표
  • 승인 2004.05.19 13: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한미군 차출, 우려할 일 아니다.


미국이 주한미군 병력의 일부를 수주내에 이라크로 빼내겠다는 방침을 최근 우리 정부에 통보한 것으로 알려져, 그 배경과 의도에 초미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주한미군 병력의 이라크 차출은 한국의 이라크 파병 문제와도 어떤 형태로든 연관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파병 문제가 새로운 국면을 맞을 가능성도 있다.

미국이 통보한 차출 대상과 규모는 공식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중앙일보는 17일자 기사에서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미 2사단 가운데 1개여단 4000명을 이라크에 파견한다는 방침을 통보해왔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3만 7천명의 주한미군 가운데 현실적으로 차출가능한 대상은 2사단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보도는 상당히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관심의 초점은 미국의 주한미군 차출의 배경과 의도이다. 이와 관련해 스페인 등 연합군 일부의 이라크 철수와 이라크 상황의 악화에 따른 추가적인 미군 투입의 필요성 증대, 추가파병을 지연하고 있는 한국에 대한 압박책, 주한미군 재배치 계획에 따른 감축과의 연계 등 다양한 차원에서 검토해볼 수 있다.

일단 여러 가지 정황을 종합해볼 때, 주한미군 차출 추진의 가장 큰 요인은 이라크 주둔 미군의 전력증강 필요성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라크 저항세력의 총반격, 침공의 명분 상실과 이라크 포로 학대 파문으로 인한 연합군 전선의 와해 조짐과 이에 따른 미국의 고립 가속화, 6월 30일 정권이양을 앞둔 민감한 정치적 시점 등을 고려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도 높아

이와 같은 현실적인 필요성에 더해, 이번 주한미군 차출 계획은 병력의 감축과 재배치, 그리고 군사력의 증강을 핵심적인 골자로 하는 주한미군 재배치 계획의 일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은 21세기 군사력의 변형(transformation)의 방향으로 "중요한 것은 병력 수가 아니라 전투력"이라며 경량화, 신속화, 유연화를 목표로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를 추진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은 이와 같은 군사력 변형의 최우선적인 대상으로 주한미군을 삼고, 1만명 안팎의 병력을 감축하면서 한반도 이외 지역에서의 작전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공항과 항구가 인접한 지역으로의 주한미군 재배치를 고려해왔다. 2사단과 용산기지를 항구와 공군기지가 있는 평택·오산기지로 이전시키려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이와 같은 주한미군의 재배치를 당초 계획보다 앞당김으로써 이라크의 군사적 필요를 충당시키려는 목적 하에 주한미군 일부 병력의 이라크 차출을 추진하고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이라크에 파견된 주한미군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미국 본토나 다른 지역에 배치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 내의 '자가발동'의 가장 큰 문제

이러한 점들을 종합해볼 때, 주한미군의 이라크 차출과 한국의 추가파병 지연은 직접적으로 연계된 사안이라고 보기 어렵다. 한국의 추가파병은 '이라크 전후 복구와 평화재건'에 한정되어 있는 반면에, 차출된 주한미군의 임무는 저항세력 척결과 치안유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즉, 한국군의 추가파병과 주한미군의 차출은 군사적인 성격 자체가 다르다는 것이다.

물론 미국이 추가파병을 늦추고 있는 한국에 대한 압박 카드로 주한미군 차출을 들고 나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례로 2002년 말-2003년 초 한국의 촛불시위가 확산되고 노무현 당선자가 "대등한 한미관계"를 들고 나왔을 때, 부시 행정부는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을 흘리면서 한국을 간접적으로 압박한 바 있다.

특히 그동안 '한미동맹의 불안'을 앞세워 국민들의 안보 불안 의식을 자극해왔던 극우·보수진영이 이번 사안을 정치적 공세의 빌미로 삼을 경우, 문제는 예상외로 커질 수도 있다. 따라서 정부와 국회는 물론이고 언론과 전문가 등 이른바 '여론주도층'이 냉정함을 유지하면서 차분한 대안을 모색하는 지혜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경계해야 할 일은 정부가 주한미군 일부 병력의 차출을 막기 위해 이라크 추가파병을 서두를 가능성이다. 특히 미국이 한국에 요청한 최초의 임무가 이라크 저항세력 척결과 치안유지였다는 점에서, 한국 정부가 섣불리 주한미군의 일부 병력을 막기 위해 파병을 서두를 경우 파병 부대의 성격과 임무 자체도 바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오히려 정부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주한미군 일부 병력의 차출 수용'과 '한국의 추가파병 입장 철회'를 주고받는 협상을 해야 할 것이다. 주한미군 차출이라는 변수를 파병 딜레마에서 벗어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주한미군 병력 줄어도 문제없어

주한미군의 이라크 차출과 관련해 가장 우려되는 것은 이를 미국의 대한반도 안보공약의 후퇴로 해석하면서, 이를 정치 쟁점화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17대 국회와 노무현 대통령의 가장 큰 과제라고 일컬어지는 '민생과 경제 회복'도 큰 차질을 빚을 수 있다.

그러나 변화된 안보환경과 한국의 국력 신장, 그리고 주한미군 재배치의 성격을 볼 때, 일부 병력이 이라크로 가더라도 한국의 안보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군사·안보 문제가 더디게 진전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남북관계를 과거의 잣대로 바라보는 것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더구나 북한은 극심한 경제난과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전행수행능력이 크게 떨어진 반면에, 남한은 꾸준한 전력증강을 바탕으로 이미 독자적인 대북방어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 국내외 안보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주한미군의 병력이 일부 감축되더라도 군사력은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는 '명확한 사실'이다. 부시 행정부의 '군사력 변형' 지침에 따라 조정되고 있는 주한미군은 병력의 후방 배치와 일부의 철수를 포함하고 있지만, 공격력과 방어력, 그리고 지휘통제통신컴퓨터정보(C4I)의 강화를 골자로 하고 있다. 미국이 110억달러를 투입해 주한미군의 전력을 강화시키고 있다는 것은 이러한 계획이 이미 실행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내용을 종합해보면, 주한미군 병력 수천명이 일시 차출되거나 감축된다고 해서 한국의 안보에 큰 구멍이 생길 것이라고 보는 것은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문제는 군사적 공백이 아니라 지나친 심리적 불안에 따른 부작용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닌데도 이를 주한미군 철수의 신호탄이나 미국의 안보공약 약화로 받아들이면서 안보와 경제를 걱정하다보면, 국내외의 불안 심리가 확산될 수 있고, 이는 실제로 안보와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근거없는 불안감'에 기초한 '자기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를 경계해야 할 것이다. 오히려 주한미군의 이라크 차출을 파병 문제 해결과 용산기지 등 기지이전 재협상, 그리고 지연되고 있는 과제인 한반도 군축을 본격 추진할 수 있는 계기로 삼을 수 있는 창조적 지혜가 절실히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정욱식/ 2004년 5월 17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