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호) 새 심청전1
49호) 새 심청전1
  • 홍순명
  • 승인 2004.04.0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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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壇法席 1]

새 심청전(1)


1.
기원 3세기 중엽 마한 때 일입니다. 마한은 원래 부여, 고구려계의 이주민 세력이 남쪽으로 내려와 나라를 세운 뒤 경기, 충청, 전라지역의 넓은 영토에 퍼져 54개국의 지역적 연합체를 이루어 살고 있었습니다. 흔히들 마한 하면 그저 나라 형태도 갖추지 못한 지명으로만 생각하지만, 성읍(城邑)과 마을들로 이루어진 나라로 기원 400년에 백제에 흡수되기까지 600년이라는 긴 역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 자기 나름의 종교와 문화를 가지고 동북아 일대에 활발한 바다 무역을 했습니다.
이 지역에 백제의 근초고왕이 진출했습니다. 당시 백제는 나라의 힘이넘쳐 나서 밖으로 눈을 돌려 일본, 가야와 장사 길을 트려고 했는데, 그러려면 배가 오르내릴 수 있는 마한 땅의 섬진강을 확보하여야 했습니다. 그 결과 백제의 힘이 마한에 뻗치기는 했지만, 마한은 쉽게 백제에 동화되지 않고, 150년 이상 마한적인 생활과 문화를 간직하였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백제도 힘으로 내리누르지 않고 마한도 여전히 자신들의 자치권을 갖고 백제에 공납을 바치는 데 그쳤습니다. 이런 시대에 심청은 마한에 태어났습니다.

2.
심청이 태어난 곳은 마한 남대성주(南大城州) 곡나(谷那) 송정 마을입니다. 심청은 아버지 학규(學圭)와 어머니 곽씨 사이에 외동딸로 태어났습니다.
남대성주는 지금의 전남 곡성입니다. 송정 마을 이름은 마을에 소나무가 많아서 그렇게 불렸는데 산에는 소나무뿐 아니라 참나무도 즐비했고, 인가 근처에는 대나무와 감나무가 우거져 있었습니다. 송정 마을 앞에는 섬진강이 흐르고 뒤로 공방산이 병풍처럼 둘러 있습니다. 섬진강에는 강가를 따라 왕버들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고기 반, 물 반이라고 할만큼 고기가 많아 해질녘이면 놀이 비치는 물위로 물고기가 뛰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멀리 깊은 산골짝 옹달샘에서 흐르기 시작한 섬진강은 곡나를 감싸고 지리산 자락을 흐르고 돌아 남해로 들어가는데, 그 강가에서 자란 사람에게는 예나 이제나 아름다움과 포근함과 깨끗함과 그리움을 주는 강입니다.
곡나의 송정 마을은 마한의 성읍 아래 크고 작은 700여개의 마을의 하나입니다. 송정 사람은 원래 북쪽에 살던 사람들로 따듯한 곳을 찾아 이리저리 사냥 생활을 하며 옮겨다니다가, 농사 짓기 좋은 이곳에 자리를 잡아 강에 보를 막아 논을 뜨고 밭을 일구어 곡식을 가꾸고 짐승을 기르며 살게 되었습니다. 이동할 때는 가족 단위로 하다가 차츰 한 가족에서 나뉜 여러 세대로 바뀌어, 생산과 저장은 두레로 같이 하고, 소비는 각 가정에서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읍마다 소도(蘇塗)라고 동네 어른이 야외에서 솟대를 꽂아놓고 하늘님께 제사 지나는 종교 의식이 있어, 마을과 마을을 정신적으로 한데 묶었습니다. 공동으로 농사를 짓는 두레와 소도 때 악기를 치는 풍물굿은 그때부터 오늘까지 내려오는 것이라고 합니다.
학규는 바로 송정 마을에 살면서 성읍에서 제사가 있을 때면 거기 마을 대표로 참가하여 하늘님께 제사를 지내는 마을의 정신적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또 학문을 좋아해서 손수 얼마간 농사를 지으면서 늘 책을 가까이 했을 뿐 아니라, 동네 아이들을 모아놓고 한자를 비롯해 중국의 초기 경전이나 의학, 농사 같은 기초도 가르쳤습니다.
공방산 아래에는 도화 계곡이란 골짜기가 있는데 복숭아꽃이 많아 그렇게 불렸습니다. 그 복숭아꽃은 도화계곡의 방장(方丈)이란 사람이 심은 것입니다. 방장은 아내와 아들 가성 이렇게 세 식구가 살고 있었습니다. 원래 요동에서 살다가 중국에 난리가 나자 도피하여 송정까지 흘러 왔습니다. 방장이 송정에 자리 잡은 것은 그가 쇠를 다루는 기술자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처음 올 때부터 학규와 마음이 통하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마한 지방에도 쇠를 만드는 기술이 있었지만, 공방은 쇳물을 빨리 녹이도록 바람을 내는 풀무질 기구를 중국에서 익혀 나무나 숯을 적게 쓰고도 효과적으로 쇠를 만들 줄 알았습니다. 송정 사람은 그 동안 돌이나 나무로 도구를 만들고 청동제품을 귀하게 구하여 썼는데, 방장이 대장간을 차리고 녹여낸 쇠를 두드려 밭을 갈 때 가랫날이나 낫 같은 농기구, 도끼. 꺽쇠 같이 나무를 베고 집짓는 기구, 작살같이 고기 잡는 연모를 만들어 내면 마을 사람이 써보고 편리하고 능률적이라 놀라고 감탄했습니다. 대장간이 생기면서 생활도 바뀌고 다른 동네보다 앞선 생활을 하였습니다.
송정서 쇠가 난다는 소문이 돌자 멀리 중국에서 소금과 해산물을 가지고 상인이 쇠와 바꾸러왔습니다. 물건을 사고 파는 데는 철정(鐵鋌)이라는 넓적한 쇠판을 돈같이 썼습니다. 예전에도 바다교통이 활발하여 상인들이 오면 공방은 중국에서 새로 나온 책을 주문하여 학규에게 전해주었습니다.
학규와 공방은 서로 형제같이 의좋게 지냈습니다. 심청이 어려서 젖이 귀할 때는 가성의 어머니가 젖을 빨렸습니다. 또 학규도 가성을 좋아하여 아들과 같이 귀여워하였습니다. 가성이 나이가 들자 학규의 서당에서 글을 배우게 했습니다.
방장이 대장간 근처에 심은 도화는 봄이면 활짝 피어 온 골짜기가 그림 같이 아름다웠습니다. 학규의 집은 골짜기 아래에 있어 이른봄에 숲에 가린 옥녀탕(玉女湯)이란 곳에 심청이 어머니와 빨래를 하거나 일하고 나서 땀을 씻다 보면 상류에서 복숭아 꽃잎이 점점이 흘러내렸습니다.

3.
그러나 맘씨 곱던 가성 어머니는 어느 늦봄에 알지 못할 병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두 달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멀리 대륙에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산 설고 물 선 객지에서 남편을 따라 남편만을 바라보고 살아오던 아내의 주검을 앞에 두고 방장은 고통을 못 이겨 구슬피 울었습니다.
학규는 친구의 도리를 다해 당시 장례법대로 옹기관에 주검을 정성껏 수습하고 고인돌을 세웠습니다. 고인돌 둘레에 꽃도 심었습니다. 불행은 잇달아 온다고 그 해 가을 방장이 쇠를 녹일 아름드리 소나무를 자르다가, 그만 우지끈 그의 위에 넘어지는 큰 나무 밑에 깔렸습니다. 사람들은 방장이 죽은 아내 생각에 나무가 넘어지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라고 수군거렸습니다. 방장은 온몸이 부서지고 피를 많이 흘려 집에 옮겨놓았을 때는 이미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었습니다. 그는 놀라서 달려온 학규의 손을 잡고 간신히 말했습니다.
“나를 아내 고인돌에 함께 묻어 주시오. 어린 내 아들을 부. . 탁. . 하 . . .오.”
그게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그런 걱정 말고 이 사람아, 정신 차리게.”
방장이 숨을 거두자 학규는 슬픔을 참으며 방장의 유언에 따라 정성껏 아내와 합장을 하였습니다.
학규는 약속한 대로 가성을 자기 집에 데리고 와서 함께 살았습니다. 대장간 일은 잠시 접어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성은 학규를 아버지처럼 따르며 심청과 같이 자랐습니다. 가성이 가끔 섬진강에 나가 통발로 고기를 잡아오면 학규의 아내 곽씨가 매운탕을 끓여 모두 훌훌 불며 땀을 흘려가면서 둘러앉아 먹었습니다. 가성과 심청은 또 학규의 마을 서당에 같이 다녔습니다.
학규의 서당은 이름이 송곡재(松谷齋)입니다. 학규는 중국에서 상인들 편에 도교와 유교, 불교 책을 수입해다가 읽었습니다. 잘 풀리지 않으면 강가에 앉아 생각을 합니다. 학생들에게 가르칠 때도 경전을 그대로 외우게 하지 않고 토론을 해가며 스스로 생각해서 받아들이게 합니다. 그러고 나서 핵심을 잘 요약해서 쉽게 가르쳤습니다.
어느 무더운 여름밤 온 식구가 저녁 서늘한 공기에 낮의 더위로 온기가 남아 있는 강 가 바위에 누워 하늘의 별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강에도 별빛이 비치고 바위 아래 강물이 유유히 흘러갑니다. 반딧불이가 날아다닙니다.
“가성아, 요즘도 부모님 생각 많이 나지? ”
학규가 말했습니다.
“예 ”
작은 소리로 대답하며 가성은 벌써 마음이 침울해집니다.
“가성은 효도란 무엇이라 생각하니?”
“..........” 가성은 갑자기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유교에서는 효가 덕의 근본이고 모든 가르침이 여기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그러나 효는 부모를 섬기는 데에서 시작하여 조상숭배, 하늘님 숭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자신의 신체는 부모에서 받았지만 부모의 부모인 먼 조상까지 올라가 마침내 모든 만물을 낳은 하늘까지 맞닿게 되기 때문이다.
효도는 가정이 중심이 되지만 많은 조상을 통하여 많은 가정이 모아져서 한 가정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니 효의 참 뜻은 내 가정에서 나아가 모든 가정을 내 가정이 펼쳐진 것으로 생각하여 아래 위, 옆으로 퍼져가는 것이다. 가성아, 부모님 생각이 날수록 이런 큰 효에 살도록 하거라.
말귀를 잘 알아듣는 가성이 질문을 했습니다.
“그럼 유교는 효만 가르치나요?”
“아니다. 유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仁)이란다. 인은 자기를 억제하며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다. 그런데 인은 정에 빠질 염려가 있다. 옳고 그름을 잘 구분해야 한다 그것이 의다. 그런데 의가 지나치면 서로의 관계를 끊어버릴 수가 있다. 일상 도덕에서 예의가 그래서 필요하다. 예의를 차리다 보면 형식에 치우칠 염려가 있다. 그렇지 않으려면 지혜가 있어야 한다. 그러니 모든 인간 관계에 믿음이 있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것을 일일이 따지고 번거롭다. 예의는 지혜가 있어야 형식이 안되고 지혜는 진심이 없는 재주가 되면 안되니까 서로 사이에 깊은 믿음이 있어야 해. 유교의 바탕은 어디까지나 인이고 인은 이 모두를 포함한다.”
“유교는 훌륭한 가르침 같아요.” 심청이 한 축 끼었습니다.
“그런데 유교는 하늘님이 어떤 분인가, 살고 죽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나오면 내가 지금 올바로 사는 것이 급하니까 그런 것은 다음에 논하라고 한다.”
“그럼 불교는 무엇을 가르치나요?” 가성은 눈을 반짝이며 물었습니다.
“유교가 ‘그 다음에 논하라’는 정신적인 것을 불교는 가르친다. 가성아. 여기 강이 소리 없이 흘러 너른 바다로 들어가지. 불교는 인생을 바다로 견주는 데 고통의 바다[苦海]라고 한다. 사람의 욕심과 분노와 어리석음이 사람과 사회를 불행하게 한다는 거야. 사람의 힘으로 그걸 뿌리 뽑을 수 없다. 그래서 고통이 생긴다고 한다. 그런 중생을 세존과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이 하나가 되어 구제해 주신다. 과거, 현재, 미래, 곧 삼계(三界)의 부처는 모두가 하나다. 부처님은 중생을 가르치고 돌보고 깨우치게 하며 같이 슬퍼하고 마침내 모든 사람을 빛과 생명으로 인도하신다.”
그렇게 이야기는 효도에서 시작하여 여러 종교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갔습니다. 학규는 말을 이었습니다.
“가성아, 청아, 저 검은 산을 보아라. 여기 흐르는 강을 보아라. 강에 비친 산을 보아라. 우리는 자연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자연은 말없는 가운데 가르치고,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알려주고, 다투지 않으면서 허물이 없고, 소박하지 않니?”라 하고
“도교는 그런 자연의 이치를 우리에게 가르치는 거야”라 말했습니다.
가성은 “유교, 불교에 도교가 서로 주장이 달라 혼란스럽지 않아요?”하고 물었습니다.
“아니지. 그건 저 강의 작은 줄기가 한데 합칠 때 소용돌이가 생기는 것과 같다. 그러나 물은 하나고 모두 바다로 가지 않니? 집으로 말하면 불교는 지붕이다. 유교는 집채고 도교는 정원 같은 거다.”
“어르신, 그리 말씀하시면 좀 이해가 되네요.” 이런 가성의 말에 학규는
“얘야, 어르신은 무슨. 나보고는 아버지라고 부르거라”하고 부드럽게 말하였습니다.
“예, 아버지.”
가성이 대답합니다.
멀리 별똥이 선을 그었습니다.
그날 밤 심청 어머니는 잠자리에서 학규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다음에 심청이 크면 아주 가성을 우리 집 데릴사위로 할까 봐요.”
“그건 장래 일이고.” 학규는 졸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 말을 심청은 이불 속에서 들었습니다. “데릴사위가 무어야” 잠결에 심청은 생각했습니다.
다음 날 심청은 가성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가성이를 데릴사위를 한다고 하더라.”
“뭐 데릴사위?”
가성의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너 데릴사위가 뭔지 아니?”
“몰라. 같이 사는 거겠지 뭐.”

4.
그런 어느 날 이 평화스러운 골짜기에 검은 구름이 가리기 시작했습니다. 뒤에 사람들은 방장 내외가 죽은 뒤부터 차츰 좋지 못한 일들이 일어났다고 회상하였습니다.
고구려와 싸워 이긴 백제의 군대가 이 마을에 몰려 온 것입니다. 백제는 나라가 커지고 이웃나라들과 싸움을 거듭하면서 더 나은 무기를 만들 필요를 느꼈습니다. 무기를 만드는 데는 쇠가 필요합니다.
백제 군인들은 곡나에 들어와 흙 빛깔을 조사하고 이 산 저 산 다니며 바위를 깨어보더니 송정에서 쇠가 나는 것과 대장간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그 대장간에서 쇠를 만들도록 주민들에게 지시를 합니다. 가성과 젊은 사람들이 대장간 일에 동원되고 동네사람도 쇠가 들어있는 광석을 나르고 쇠를 녹이는 땔감으로 나무를 베게 하였습니다. 가져온 광석은 잘게 부숴야 합니다. 나무는 여럿이 목도를 해 날라야 합니다. 송정 마을 하늘에는 밤에도 이글거리는 불길에 훤하였습니다. 불이 타는 곳에 광석을 넣어 뜨거운 쇳물을 녹여 낸 뒤 대장간 모루 위에 쇠를 치면 창, 칼, 화살촉 등 날카로운 무기가 만들어집니다. 만든 것은 곧 강에 맨 배로 실어 날랐습니다. 군인들은 주민들에게 수고 값으로 쇠 돈 얼마씩을 주었습니다.
쇠를 녹이느라 산에 나무를 베면 자연히 산이 헐벗어 비가 오면 토사가 씻겨내려가 논밭을 뒤덮어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토사가 강물에 들어가면 길바닥이 높아지고 맑던 강물도 황토 빛으로 변했습니다. 송정 사람은 농사로 그 동안 자급자족을 했으나 돈이 들어오면서 자그마한 시장이 서게 되고 돈으로 곡식도 살 수 있으니까, 농사를 안 짓는 이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들은 돈버는데 열중하여 동네 두레나 품앗이 같은 것, 심지어 농사를 우습게 여겼습니다. 이익을 남기려니 물건을 흥정하면서 속임수나 거짓도 늘어갔습니다.
한해 농사로 버는 돈을 며칠만에 버는 것을 보면 농사 짓는 사람도 마음이 상합니다. 인정도 메말라 가고 사람들도 경박해졌습니다. 시장 다음에 생기는 것은 술집입니다. 사람들이 군인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패싸움을 하고, 신성하게 여기던 짐승을 마구 잡아 동네에 냄새가 퍼지더니 사람들 눈빛도 이상해져 갔습니다.

5.
학규의 서당은 어린 학생뿐 아니라 동네 사람들도 오다가다 들러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늘 나누는 동네 사랑방이기도 하였습니다. 어떤 때는 글 가르치는 것을 접어두고 어른과 아이가 함께 토론을 벌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날 화제는 자연히 요즘 돈이 돌면서 인심이 나빠진 이야기, 쇠를 녹인다고 숲의 나무를 다 베어 숲도 논밭도 다 망가졌다는 이야기, 군인들이 제물로 바치는 마을짐승 특히 영물로 여기는 개를 마구 잡아먹는 등의 이야기가 올랐습니다.
“우리 동네 개들이 어디 사람을 두려워 하나. 사람만 보면 꼬리를 흔들고 다가가지 않아요. 그런데 어제도 병졸들이 개를 창으로 찔러 그 자리에서 황톳불에 그슬려 칼로 잘라먹는 거예요. 동네 사람들이 항의를 하면 ‘그까짓 개 가지고 뭘 그러나. 우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람인데. 그래 개가 사람보다 귀하단 말이야’하고 오히려 큰 소리를 쳐요. 정말 속이 뒤집힙니다. ”
“어떤 군인은 ‘돈주면 될 거 아냐’ 라고 폭언을 해요.” 한 마을 사람이한숨을 쉬며 말했습니다.
“그래서 동네 사람이 개를 묶어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한지가 오래지.”
다른 마을 사람이 말했습니다.
“개 뿐이야? 동네 여자들도 이제는 밤에 마음놓고 다닐 수 없게 됐구.”
“그러니 선생님, 무슨 수를 써야 할 것 아니겠어요?”
동네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당시 송정 사람은 희생 제물로 개를 이용했습니다. 개는 그들에게 으뜸 가는 집짐승이었습니다. 오랜 옛날 사냥으로 살던 때도 개는 사람과 하나가 되어 사람에게 도움을 주기 때문에 소중하고 신성한 짐승으로 여겼습니다. 그들은 하늘님께 제사를 드릴 때 가장 소중한 개를 거룩한 의식과 함께 바쳤습니다. 제사를 지나고 나서 제사 음식을 함께 나누어 결속을 다졌습니다. 그런데 군인들은 쇠 만들기에 힘이 드니 몸보신을 해야 한다면서 개를 길러 아무 때나 잡아먹고 민가의 개까지 마구 끌어갔습니다. 송정 사람하고는 이래저래 사이가 벌어졌습니다.
학규가 천천히 말했습니다.
“한문의 바칠 헌(獻)자는 개를 희생한다는 뜻을 모은 글자일세. 바다 건너 진나라에서도 복(伏)이 닥치면 더위로 사람들이 고생을 하지 않도록 개를 희생으로 바치며 기도한다네. 그런 내력을 모르고 개를 그저 고기로만 보면 안되지. 귀한 짐승의 희생을 귀히 여겨야 하지.”
“선생님, 그러니 어떻게 하면 좋아요.” 동네 사람이 말하자 “그러게나, 무슨 기회가 오겠지.” 학규가 무겁게 말했습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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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선생님. 안녕하세요? 송광사 가는 길에 기념으로 작은 풍경을 만원 주고 사서 집에 걸어놓았는데 바람맞이라 여러 종류의 바람이 하루 중 여러 시간대에 불어도 나름의 맑은 소리를 내고 있어요. <풍경소리>도 이제는 나름대로의 소리를 내어 반갑고 잘 받아보고 있습니다. <풍경소리>는 ‘잘 쓴 글로 채울 생각이 없으신’ 잡지니까 저같은 사람도 용기를 내어 옛 고전 새로 읽기 이런 것도 보냅니다. 지면이 남으면 채워주시기 바랍니다. 이 원고는 일본에서 공부하는 따님의 요구에 힘을 얻어 어떻게 마무리되었습니다. 여긴 요새 모내기 준비에 바쁩니다 다행히 학생들 선생님들 모두 하나가 되어 열심히 일을 하여 감사하고 있습니다.
(풀무 전공부 홍순명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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