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회> 제3장 청색사랑(4)
23회> 제3장 청색사랑(4)
  • 정호영
  • 승인 2004.12.30 1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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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동안 열심히 강사생활하며 모은 돈으로 올 초 학원 문을 열었다. 학원 강사에서 경영자인 원장이 된 것이다. 물론 강사로도 활동을 겸하고 있다.
내가 가진 전 재산을 투자한 모험이었지만 다행히도 10년간의 학원생활을 통해 터득한 노하우와 경험 덕택으로 짧은 시간 내에 자리를 잡았다. 처음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소득도 크게 늘었다. 몇몇 친구들은 이런 날 보고 억세게 재수가 좋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하루하루 피 말리는 말 못할 스트레스와 숨은 노력은 알지 못한다.
학원 강사 10년을 통해 난 얻은 것이 많다. 재산도 모았지만 나도 몰랐던 잠재된 능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잠재된 능력이란 단적으로 표현하면 사람을 끄는 재주를 말한다. 학원 강사에게 있어 그것은 가르치는 실력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계발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난 그렇게 지난 10년간 내 자신을 계발하며 살아왔다.
사람을 끄는 재주란 사실 별 것 아니다. 노력하는 것이다. 즉 상대에게 믿음과 신뢰를 줄 수 있도록 말과 행동이 일치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단순한 말재주와는 차원이 다르다. 바람둥이의 대명사인 카사노바가 여자를 침대로 끌어들일 때까지 기울이는 노력과 열정은 상상 이상으로 엄청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람들 대부분은 그것을 잘 모른다. 카사노바의 여인들은 그의 노력과 열정에 마음을 빼앗겼다는 중요한 사실은 간과한 채 결과만 이야기될 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학원 수강생들을 위해 계발해 몸에 밴 나의 능력은 학원 밖에서 만나는 이성의 여성들에게도 인기를 모으게 하는 원천이 되고 있다.
내가 본의 아니게 ‘바람둥이’로 불릴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비록 처음 대하는 여성이지만 사귀고 싶을 때 그녀에게 접근해 마음을 사로잡는 법을 난 안다. 그렇게 무수히 많은 여자를 만났다. 그러나 대부분 오래 사귀는 법은 거의 없었다.
내 첫 사랑이자 마음속의 연인인 그녀 때문이다. 이미영이라는 여자를 가슴 속에서 지우지 않는 한 또 다른 누군가와 사랑을 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러나 최근 내 마음에도 큰 변화가 일고 있다.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영원히 마음속으로만 간직하고 싶었던 그녀에 대해 질투심이 생겨났다는 점이다.
나로 하여금 질투심을 유발시킨 대상은 그녀의 남편이 아니라 또 다른 남자이다. 난 그 남자의 이름도, 그가 어디서 사는지, 또 어떤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토록 오랫동안 내 가슴을 흔들어놨던 이미영이 사귀고 있는 남자라는 점이다. 
처음 그 이야기를 김미정 선생에게 들었을 때 난 설마하며 무시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이미영이 그러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김 선생에게 몇 차례 이야기를 듣고 상담선생인 이미영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한 결과 점차 의심이 갔다. 확실히 그녀는 그 전과 달랐다. 가끔 누군가로부터 전화가 오면 다정스런 말투가 남편과는 또 다른 느낌을 줬다.
하루는 그녀가 있는 창구로 슬그머니 다가갔는데 그때까지 그녀는 뭔가에 몰두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컴퓨터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무슨 내용인가 싶어 바짝 다가서자 그녀는 뒤늦게 화들짝 놀라며 얼굴을 붉혔다. 얼른 모니터상의 대화내용을 감추며 일어서는 그녀의 얼굴엔 나에 대한 불쾌함이 역력했다.
“무슨 일 있나요?”
“아뇨, 그냥 와봤어요. 제가 실례를 했나요?”
“그건 아니지만 갑작스러워서요.”
“네. 죄송해요. 지금 바쁘지 않으면 저랑 대화 좀 할 수 있나요?”
“그럼 먼저 원장님 실에 가 계세요. 제가 곧 갈게요.”
그녀는 끝내 내게 시치미를 땠다.
나중에 김미정 선생에게 들으니 그녀는 그 남자와 거의 매일 채팅을 한다고 했다. 더욱이 그녀가 사귀고 있는 남자는 유부남이고 벌써 몇 차례 직접 만나기도 했다는 것이었다.
난 기가 막혔다. 알 수 없는 배신감과 분노도 느꼈다. 아직 깊은 관계까지는 가지 않은 것 같다고 김 선생이 사족처럼 귀띔을 하기도 했지만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에 가슴을 부들부들 떨어야 했다.
그녀에 대해 질투심이 생긴 것은 그때부터였다.
반면 이미영에 대한 질투심이 깊어갈 무렵 또 다른 여자에 대한 감정도 내겐 큰 변화이다. 공교롭게도 또 다른 여자는 두 명이다. 한 사람은 매일 학원에서 얼굴을 대하는 유부녀인 김미정 선생이고, 또 한 사람은 약 한달 전 우연히 만나 하루 밤을 같이 보낸 미혼의 여성이다.
김미정 선생이 내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은 그전부터 대충 눈치를 챘지만 그녀로부터 “사랑한다.”는 고백까지 듣게 될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녀가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은 것은 어제 일이다. 퇴근 무렵 꼭 할 말이 있다며 같이 술집에 간 그녀는 내가 궁금해 하던 이미영에 대한 이야기 대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리고 술이 몇 잔 들어가자 대끔 날 사랑한다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난 당황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비록 불륜일지라도 아무 대가 없이 그저 사랑하고 싶다.”며 내 감정을 묻기에 끝내 대답을 유보한 채 헤어졌다.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딱 부러지게 거절하자니 그녀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것 같고, 또 유부녀인 그녀와 사귀다 소문이 나는 것도 싫었다.
여러모로 부담스러우면서도 그녀에 대해 묘한 호감도 있는 것이 솔직한 내 감정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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