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회> 제3장 청색사랑(8)
27회> 제3장 청색사랑(8)
  • 정호영
  • 승인 2005.01.10 14: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녀에 대한 내 감정은 분명 사랑이었다. 그녀와 잊지 못할 하루 밤을 보낸 뒤 내린 결론이었다. 그녀도 내게 좋아한다는 감정을 고백했고, 그것은 “사랑 한다”는 말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왠지 불안했다. 35년을 살면서 비로소 얻은 행복이 어느 순간 훌쩍 떠날 것만 같은 조바심이 생겼다.
왜 그럴까? 한달이 넘어서야 어렵게 그녀의 몸과 마음을 얻었지만 어딘지 부족했다. 그것이 무엇일까? 그녀를 보고 헤어지자마자 또 보고 싶고, 1시간이 넘도록 전화 통화를 한 뒤에도  그리워지는 갈증 같은 것이 반복됐다.
학원은 사회 전체가 극도로 불황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수는 꾸준히 늘어났다. 다른 학원 대부분은 침체를 거듭하면서 하나 둘 문을 닫기도 해 상대적으로 지역 내 최고 학원의 반열에 올라설 정도가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전처럼 신이 나지 않았다. 외형상 내가 바라던 두 마리 토끼를 다 움켜쥐었지만 마음은 상대적으로 빈곤했다. 내 자신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나의 이런 미묘하고 복잡한 속사정은 누구도 눈치 채지 못했다.
새해 들어 첫 교사회의가 점심시간 이후 열렸다. 10여 명의 교사 모두가 참석했다. 안건은 학원을 보다 발전시키기 위해 새해 방향을 수립하는 것이었다.
김미정 선생이 첫 번째로 말문을 열었다.
“학원을 보다 넓혀야 합니다. 학생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어 이 상태로는 강의실이 부족해 무리입니다. 좀 더 큰 곳으로 옮겨야 합니다. 마침 비어있는 건물과 사무실들도 많아 헐값에 들어갈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김 선생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이 일대에선 우리 학원이 최고입니다. 이번 기회에 확실히 자리를 굳히기 위해선 좀 더 확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상담을 맡은 이미영 선생도 가세했다. 대부분의 선생들도 같은 생각인 것처럼 보였다. 난 한참 골몰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이번 기회에 결혼을 해버릴까요? 그럼 확실해 지나요?”
“넷?”
나의 말에 일부는 의아해 하면서 일부 선생은 킥킥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모르게 아차 싶었다. 말이 잘못 나온 것이었다. 난 얼른 둘러댔다.
“쓸만한 건물 하나 인수하는데 얼마나 드나요?”
“넷?”
이번에도 선생들은 의아함과 놀라움을 동시에 나타냈다.
“전세로 넓혀가는 것이 아니라 아예 건물을 사시게요?”
김미정 선생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는 것이 확실한 거 아닌가요?”
“그거야 그렇지만 최소 몇 십억 이상은 줘야 할 텐데요.”
“몇 십억이 아니라 확실할 수만 있다면 100억원이 들더라도 사야지요.”
“…”
나의 말에 선생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들 놀라면서도 과연 그 정도로 능력이 있었나 하는 부러움이 담긴 표정이었다. 나도 말을 내뱉으면서도 너무 과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내 마음은 진심이었다.
“문제는 100% 확실하다면 사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 일이 100%란 것은 없습니다. 앞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현재가 잘되고 있다고 해서 미래까지 잘 되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것이 고민입니다. 확실만 하다면 모든 것을 걸고 승부하겠지만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좀 더 생각해 보기로 하죠.”
나의 말을 끝으로 회의는 끝이 났다. 난 원장실에서 내가 내뱉은 말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했다. 그것은 학원문제와 내가 사랑스런 여자에 대한 감정을 동시에 빗대 한 말이었다. 나도 모르게 그렇게 말이 나왔다.
그녀와 앞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면 난 뭐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결혼을 해 그녀와 사는 것이 확실한 행복의 길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어떠한 것이 진정 행복인지, 지금의 내 감정이 맞는 것인지 좀체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것이 알 수 없는 요즘의 내 마음속 불안의 실체였는지도 몰랐다.
그렇게 그녀와 사랑을 하면서 내 마음은 ‘행복’과 ‘불안’이라는 어울리지 않은 동거가 계속됐다.  
사실 나의 불확실한 감정은 그녀가 일부 원인을 제공한 탓도 있었다. 그녀는 나와 잠자리도 같이 하고 또 서로의 감정을 숨김없이 공유하면서도 결혼에 대한 말은 단 한마디로 꺼내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녀의 독특한 성격 탓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소설책을 낸 작가라는 것을 안 뒤 그런 생각을 해 본적이 있다. 그것도 아니면 혹시라도 그녀가 자존심 때문에 내가 먼저 말하기를 기다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봤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니라면 나만 우습게 될 것 같아 겁이 났다. 또는 내가 결혼하자고 말을 꺼내자마자 그녀가 훌쩍 내 곁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다소 비약적인 생각도 했다.
무엇보다 나를 가장 불안하게 하는 것은 35년을 혼자 살다가 또 다른 사람과 같이 살았을 때 과연 평생 함께 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내 스스로 확신을 갖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나도 모르게 그렇게 살아왔고, 또 결혼을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것은 그녀가 내 곁에 있는 순간만큼은 행복하다는 점이었다. 난 그 행복의 실체가 궁금했다.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보랏빛 향기가 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녀가 담고 있는 사랑의 참모습은 어떠한 것인지 너무도 궁금했다.           
               
<계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