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 한미정상회담: 평가와 분석
6.10 한미정상회담: 평가와 분석
  • 정욱식대표
  • 승인 2005.06.13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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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미의 관심을 모았던 한미정상회담이 끝났다. 양국 정부는 북핵 문제와 한미동맹 등 첨예한 문제들에 대한 이견을 해소함으로써 양국 관계가 굳건해졌다고 평가하고 있다.

기실 애초부터 이번 정상회담은 양측의 각기 다른 목적에 따라 '한미관계의 굳건함'을 과시하려는 성격이 강했다. 북핵 문제와 관련해 '5 대 1' 대북 압박구조를 만드는데 주력해왔던 부시 행정부로서는 노무현 정부가 대북 압박 노선 동참을 꺼려해 온 것에 늘 불만이었고, 또 부담이었다. 여기에는 한국을 대북 압박 노선에 포섭할 경우 중국을 다루기가 훨씬 용이해질 수 있다는 판단도 깔려 있다.

반면에 노무현 정부 입장에서는 북핵 문제에 대한 한미공조,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작전계획 5029, 동북아 균형자론 등으로 인해 균열이 발생한 한미동맹을 부담스러워했다. 이에 따라 노 정부는 한미정상회담 이전에 수 차례의 실무접촉을 통해 동맹 문제 해소에 주력하는 한편, 정상회담을 통해 이를 과시함으로써 '동맹 균열론'을 무마하고자 했다.

이와 같은 양측의 입장은 정상회담 결과 발표에서도 드러났다. 예전과 비교해 볼 때, 부시 대통령은 북한을 자극하는 발언을 자제했다.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지칭해 '미스터'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북한의 인권 상황이나 정치 체제 문제를 직접 거론하지 않았다.

반면 노무현 대통령은 '동맹 균열론'을 불식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노 대통령은 "한두가지 작은 문제들이 남아있지만"이라고 말해 '짙은 여운'을 남겼지만, "중요한 문제는 이미 해결됐고 한미동맹은 돈독하고 또 앞으로도 돈독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6자회담 재개, 일보 전진과 일보 후퇴

이처럼 양국 정상이 서로의 입장을 고려해 상대방을 곤란스럽게 하는 발언을 자제했지만, 이를 두고 북핵 문제와 한미동맹을 둘러싼 양국 사이의 갈등이 해소된 것이라고 평가하는 것에는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6자회담의 재개 여부와 관계없이 부시 행정부는 북핵 문제와 관련해 '5 대 1' 구조를 원하고 있고, 이를 위해서는 한국을 대북 압박 구조에 동참시키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판단해왔다. 이를 위해 부시 대통령은 북한을 자극하는 표현을 자제하면서 '미스터 김정일'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는 6자회담 재개 분위기 조성을 위한 '일보 전진'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동시에 '북핵 불용'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여러 차례 강조하면서 한국을 포함한 5자가 '공동 전선'을 구축해야 한다는 점도 빼놓지 않았다. 이는 회담이 재개될 경우에는 북한의 선(先) 핵 폐기를 위한 공동 압박 노선을, 회담이 좌초될 경우에는 유엔 안보리 회부 등 대북 제재에 한국도 동의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작년 3차 6자회담 때의 미국의 제안에 한국을 묶어두려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백악관과 국무부 대변인은 물론 부시 대통령까지 나서 3차 회담 때의 미국 제안의 유용성을 강조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는 회담이 재개될 경우 한국이 중국과 함께 미국에게 창의성과 유연성을 요구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하듯 반기문 외교부 장관은 "양 정상은 작년 3차 6자회담시 제의한 방안에 기초해 북한이 핵무기 계획을 포기할 경우 북한에 대한 다자안전보장과 에너지를 포함한 실질적 지원이 가능함은 물론 궁극적으로 미북간 보다 정상적인 관계(more normal relations)가 가능할 것임을 재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여전히 혼란스러운 대북 메시지

북핵 문제와 관련해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일보 전진과 일보 후퇴가 동시에 나타남에 따라 북한의 의구심을 해소하는 데에는 전반적으로 부족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자극하는 표현을 자제한 것은 '일보 전진'으로 평가할 수 있으나, 3차 회담 때의 제안에 집착하면서 한국을 여기에 묶어두려고 한 것은 '일보 후퇴'로 볼 수 있다.

참고로 3차 회담 때 미국 제안의 요지는 북한이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비롯한 모든 핵 프로그램의 폐기를 공약하고 이를 위한 준비단계에 돌입하면, 미국은 한국 등 다른 국가들의 중유 제공 지원을 용인하고, 다자간 안전보장을 제공하며, 테러지원국 및 경제제재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을 1단계로 한다. 그리고 북한이 완전히 핵 프로그램을 폐기하면 관계 정상화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북한의 요구 사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북한은 불가침조약이나 평화협정과 같은 '법적 구속력이 있는 안전보장'을 핵 동결 단계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요구하는 반면에, 미국은 이를 핵 폐기 이후로 상정하고 있다. 또한 북한의 경제회생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경제제재 및 테러지원국 해제를 '언제, 어느 단계'에서 할 것인지도 불확실하다.

한마디로 미국이 3차 회담에서 내놓은 제안은 '그림의 떡'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고, 이에 따라 북한은 작년 9월에 '일고의 가치도 없는 제안'이라고 거부한 바 있다. 따라서 미국이 또 다시 3차 회담 때의 제안을 고수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할 동기는 그만큼 약해진다고 할 수 있다.


기회를 못 살린 노무현 정부

대단히 아쉬운 것은 노무현 정부가 기회를 놓쳤다는 점이다. 부시 행정부는 최근 중국과 러시아 등 국제사회의 압력에 직면해, "4차 회담이 열리면 미국은 창의적이고 유연한 자세로 협상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특히 6자회담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는 필자와의 5월 6일 인터뷰에서 미국은 기존의 제안을 수정할 의사가 있고, 법적 구속력이 있는 대북 안전보장 방안을 논의할 수 있으며, 북한이 줄곧 요구해온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 차원에서 문제가 풀 의사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노무현 정부는 바로 이러한 기류들을 제대로 활용했어야 했다. 예를 들어 부시 대통령의 입을 통해 이와 같은 유연한 입장이 거듭 천명되었다면, 북한의 6자회담 동기는 그 만큼 강해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울러 노무현 정부가 말한 "중대한 제안" 역시 미국의 태도 변화가 있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점도 중요하다. 노 정부는 북한이 핵 포기 단계에 진입하면 포괄적이고 구체적인 대북 지원 및 경제협력이 가능하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 및 테러지원국은 해제되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개성공단 시범단지 사업은 중요한 '학습 효과'를 주고 있다. 소량의 설비를 개성에 반입하는 데에도 미국의 전략물자 수출입통제체제라는 높은 벽을 넘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의 동의 없이는 한국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라는 인식을 북한에게 강하게 심어주고 있다.

시범단지 수준에서도 미국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북한이 노무현 정부가 말하는 '포괄적이고 구체적인 대북 지원'이나 '북한판 마샬 플랜'을 믿고 '전략적 결단'을 내리기란 불가능하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와 테러지원국이 해제되지 않으면 노 정부의 "중대한 제안"을 공약(空約)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관심의 초점은 이번 한미정상회담을 유심히 지켜봤을 북한의 반응이다. 여전히 대미 메시지가 혼란스럽다는 점에서 6자회담 복귀를 미룰 수도 있고, 회담 재개 분위기와 조건이 예전보다 좋아졌다는 판단 하에 회담 복귀를 선택할 수도 있다. 전반적인 분위기로는 후자의 가능성이 높지만, 아직 단정하기에는 이른 것 또한 사실이다.

노무현 정부가 유념해야 할 것이 있다. '이제 공은 북한으로 넘어갔다'는 식의 판단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북한의 의구심을 해소하는데 크게 부족했다. 6자회담 재개를 위한 분위기와 조건 조성이 여전히 미흡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앞으로 진력해야 할 점은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요구하는 것 못지 않게, 미국에게 유연성과 창의성을 주문하고 한국의 "중대한 제안"이 가능해지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아울러 어렵게 정상화의 발판을 마련한 남북관계도 꾸준히 발전시켜 무너진 신뢰를 회복해야 할 것이다.  


한미동맹 균열, 해소되었나?

한미동맹에 심상치 않은 기류가 감지되던 시점에 열린 한미정상회담은 표면적으로는 '굳건한 한미동맹'을 과시하는 자리가 되었다.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이 짧은 시간동안 '동맹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점을 애써 강조한 것 자체가 그 만큼 동맹관계가 순탄하지 않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한미 두 나라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동맹의 굳건함을 과시하기 위해 사전 정지작업에 들어갔다. 노무현 정부는 정상회담을 앞두고 "동북아 균형자론이 탈미·친중 노선이 아니냐"는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미국이 가장 중요한 균형자라고 강조했다.

또한 작전계획 5029를 둘러싼 갈등을 서둘러 봉합하기 위해 한미 국방장관 회담을 통해 5029을 개념계획 수준으로 보완·발전시키기로 합의했다. 아울러 펜타곤도 "한국이 전략적 유연성을 수용하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 있다"는 리처드 롤리스의 발언을 서둘러 진화하기 위해 이례적으로 성명을 발표해 '미국의 대(對) 한국 안보공약'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사전준비를 바탕으로 "두 정상은 한미간 중요한 현안 문제들은 이미 모두 해결되었으며, 일부 남아 있는 현안들도 이미 합의한 대로 양국 실무자간 긴밀한 협의를 통해 한미동맹 정신과 양국민의 의사를 상호 존중하는 바탕 하에 원만히 협력해 나가자"고 합의한 것이다.


동맹의 근본적인 문제는 해소될 수 없어

그렇다면 두 정상이 강조한 것처럼 동맹 문제를 둘러싼 한미간의 갈등은 해소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남아 있다는 문제들을 원만히 해결해 보다 대등하고 균형적인 동맹관계로 발전할 수 있을까?

기실 한미동맹의 갈등은 동맹을 바라보는 한미 양측의 근본적인 시각 차이에서 비롯되고 있다. 이는 한미동맹을 둘러싼 노무현 정부와 부시 행정부 사이의 갈등이 쉽게 해소될 수 없는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잘 알려진 것처럼 "21세기도 미국의 세기"로 만들겠다는 부시 행정부는 이를 위해 군사 수위(military supremacy) 전략을 추구하면서 한미동맹도 이에 충실해야 한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노무현 정부는 미국의 세계 전략을 일정 부분 이해할 수는 있어도 그것이 한반도의 안전과 평화, 그리고 주권을 침해하는 방향으로 가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이와 같은 양측의 시각 차이는 해소되기 어렵다는 점에 있다. 우선 미국은 동북아에서 패권자로서의 지위를 추구하는 반면, 한국은 균형자 내지 안정자가 되어주기를 원하고 있다. 냉전 시대에는 세계적 수준의 라이벌인 소련에 대해 한국과 일본은 물론, 중국 역시 견제 심리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동북아 차원에서의 미국의 '패권 안정론'은 부분적으로 성립할 수 있었다.

그러나 냉전이 해체되고 21세기 들어 미국이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하면서 중국이 미국과 대등해지는 것을 사전에 좌절시키겠다는 전략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패권주의는 균형자론과 양립할 수 없는 조건에 있다. 미국의 패권주의가 중국을 겨냥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이 이를 인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이 중국을 가상의 적으로 삼고 있는 미국과 전략 목표를 공유하지 않는 한 한미동맹의 근본적인 갈등은 해소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적어도 미국에서 중국을 경쟁자가 아닌 동반자로 보는 정권이 들어서기 전까지는 말이다.

북한에 대한 관점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미국은 근본적으로 북핵 저지를 한반도 전쟁 방지보다 상위의 목표로 설정하고 있어, "어떠한 일이 있어도 한반도에서 전쟁은 안 된다"는 한국과는 근본적인 입장 차이를 갖고 있다.

아울러 부시 행정부는 군사 패권주의를 추구하고 위해 북한과의 긴장을 선호하고 있는 반면에, 한국은 50년을 넘긴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대체해야 할 양보할 수 없는 과제를 지니고 있다.

동맹이 '공동의 적'을 기반으로 성립하는 것이라면, 이미 한미간에는 그 적을 바라보는 관점과 그 적을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 근본적인 균열 상태에 있는 것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군사 패권주의를 추구하고 위해 북한을 계속 적으로 남겨두거나 강압적으로 붕괴시키고자 하고, 부상하는 중국을 적으로 삼고자 하는 부시 행정부의 전략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어설픈 봉합이 더 큰 화를 부른다

이와 같은 한미동맹의 총론상의 균열은 각론 하나 하나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문제가 되고 있는 5029와 관련해 한국은 개념계획을 작전계획의 하위 단계로 바라보면서 이를 '구상 단계'로 묶어두기를 원한다.

반면에 부시 행정부는 개념계획과 작전계획 사이의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며, 둘 모두 '실행 계획'으로 보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어떤 이름을 달던 북한에 불안정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자신이 군사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계획을 갖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5029를 둘러싼 한미간의 이와 같은 시각 차이가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5029를 개념계획으로 묶어두면서 이를 보완·발전하기로 합의했다는 점에 있다. 평시의 핵심적인 권한과 전시작전권을 보유하고 있고 북한에 불안정한 상태가 발생했을 때 태평양 사령부의 개입까지 추진하고 있는 미국의 존재를 고려할 때, 한국이 5029를 인정하는 것 자체가 마지노선이 뚫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도 마찬가지이다. 노무현 정부는 동북아 밖에서의 전략적 유연성은 양해할 수 있지만, 한국이 불필요하고도 감당할 수 없는 분쟁에 휘말릴 수 있는 동북아에서의 전략적 유연성은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반면에 부시 행정부는 동북아에서 전략적 유연성을 추구하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개편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미국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추진하는 이유는 공격성과 치명성, 그리고 생존율을 높이는 형태로 군사력 구조와 임무를 재편해, "필요할 경우" 북한에 대해 선제적인 군사적 개입을 하고 대중국 군사 작전을 원활하게 하고 싶어하는데 있다.

이는 전략적 유연성을 둘러싼 한미간의 입장 차이가 해결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려되는 것은 한국의 협상팀이 모호하고 추상적으로 합의해줌으로써 미국에게 사실상 무제한의 권한을 주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전략적 유연성 논의를 철저하게 비공개 회의에서 논의하고 있다는 것은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한다.

한미정상회담을 마치고 노무현 대통령은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부담”을 국민들과 미래의 세대에 넘겨서는 안 된다. 

정욱식/ 2005년 6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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