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 회담 앞두고 미 강온파 서로 딴소리
6자 회담 앞두고 미 강온파 서로 딴소리
  • 정욱식대표
  • 승인 2005.07.12 16: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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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마지막 주에 4차 6자회담이 예정된 가운데, 부시 행정부 내에서 이견이 나오고 있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의 아시아 순방을 수행하고 있는 고위 관리들은 '유연성'을 보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반면에, 워싱턴의 초강경파들은 "추가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할 의사가 없다"며 경직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미국 정부의 고위 관리들을 두루 취재한 뉴욕타임즈의 10일자 보도에 따르면, 부시 행정부는 "북한이 핵 폐기의 길로 가지 않으면 미국은 Plan-B를 본격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가지고 4차 회담에 임할 예정이라고 한다. Plan-B란, 딕 체니 부통령과 도날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중심이 되어 작성한 방안으로, 북한의 외화수입원을 차단하고 군사적·경제적 봉쇄를 강화해 북한의 굴복 내지 붕괴를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4차 회담에서 부시 행정부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경우, 국무부가 주도하고 있는 협상론은 뒤로 밀리고 네오콘 주도의 초강경론이 전면에 부각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문제는 부시 행정부가 기존에 밝힌 것처럼 "창의적이고 유연한 자세"로 협상에 나서려는 움직임보다는 대북 제안을 둘러싼 강온파의 분열상이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모습은 주요 외신 보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뉴욕타임즈, 강경론에 무게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부시 행정부는 핵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크게 세가지가 필요하다고 보고 4차 회담 때 이 문제들을 집중적으로 제기할 방침이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이 존재하는 모든 핵무기를 포기하고, 플루토늄 제조와 관련된 시설을 폐기하며,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에 대한 사찰을 수용할 것을 요구할 예정이다.

특히 북한이 보유 자체를 부인하고 있는 우라늄 농축 문제에 대해 한 전직 정보기관 관리는 "부시 대통령은 우라늄 농축 문제 해결이 포함되지 않은 어떠한 합의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리의 말처럼 부시 행정부가 또다시 실체가 불분명한 우라늄 농축 문제에 집착할 경우, 4차 회담도 이 문제를 둘러싼 북미간의 말싸움으로 끝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반해 라이스의 아시아 순방단을 취재한 AP 통신은 "미국은 더이상 북한에 고농축 우라늄(HEU) 프로그램을 다시 인정하라고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10일 보도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난제 중에 난제로 일컬어지는 HEU 문제가 이번 회담에서는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을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그러나 이것이 곧 부시 '행정부' 차원의 입장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부시 행정부 내의 초강경파들은 HEU를 우회하는 해법에 결코 동의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4차 회담에서 HEU 문제가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더라도 추후 네오콘들에게 반격의 빌미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단 플루토늄 프로그램을 동결·억제해 북한의 핵무장 능력을 크게 악화시킨 이후 'HEU 카드'를 다시 꺼내들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3차 6자회담 때의 제안, 바꿀 수 있나

작년 6월 3차회담에서 미국이 제안한 방안을 변경할 것인가의 여부를 놓고 강온파 사이에 이견이 나오고 있는 것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실상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방식으로의 핵 폐기)를 구체화한 3차 회담 때 미국의 제안에 대해, 북한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일축한 바 있다. 이는 미국이 기존의 제안에서 얼마만큼 양보안을 내놓느냐가 4차 회담의 성패를 좌우할 핵심 변수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해 뉴욕타임즈의 인터뷰에 응한 워싱턴의 한 고위 관리는 "미국은 2004년 6월 3차 회담 때의 제안 이외의 추가적인 인센티브에는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3차 회담 때의 제안을 고수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이다.

그러나 워싱턴 포스트는 다른 맥락으로 이 문제를 보도했다. 라이스의 아시아 순방을 동행 취재하고 있는 이 신문은 "북한이 건설적으로 나온다면, 미국은 기존 제안의 조건과 내용을 변경할 의사가 있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즈 보도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참고로 3차 회담 이후 미국은 올 초까지 이 회담에서의 제안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경직된 태도가 6자회담 재개 및 북핵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하자, 올 봄부터 "회담이 재개되면 창의적이고 유연한 자세로 협상에 임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6자회담 수석 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는 5월 초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기존의 제안을 수정할 의사가 있다"며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 차원에서 문제를 풀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작 6자회담 재개가 조심스럽게 타진되었던 6월부터 이러한 입장은 다시 후퇴하기 시작했다. 6월 11일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부시 대통령이 직접 3차 회담 제안을 고수할 방침을 시사했고, 국무부와 백악관도 거듭 이를 확인하고 나선 것이다.

이는 부시 행정부가 6자회담 재개를 위해서는 유연성을 보이다가, 회담 재개 국면으로 넘어가자 본질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는 '이중 플레이'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낳고 있다. 특히 여기에는 체니와 럼스펠드 등 초강경파들의 입김이 강하게 반영되었을 공산이 크다. 즉, 협상파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폭군", "폭정의 전초기지" 등 북한을 자극하는 발언은 자제하되, 대북 제안은 '변경 불가'라는 조건을 붙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네오콘은 북한과의 협상에서 북한이 수용할 수 없는 제안을 내놓고 북한이 이를 거부하면 강경정책의 구실로 삼고자 해왔다. 이들에게 외교는 단지 'Plan-B'를 가동하기 위한 명분쌓기에 불과한 것이다.


6자 회담에 임하는 미국의 태도

여러 가지 정황과 보도를 종합해볼 때, 부시 행정부가 이번 6자회담에 임하는 태도는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면서, '부차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약간의 유연성을 보여주는 수준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본질적인 문제란, 북한이 핵 동결 및 폐기의 상응조치로 요구하고 있는 법적 구속력이 있는 안전보장 제공, 테러지원국 및 경제제재 해제, 북·미 관계 정상화 등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 부시 행정부는 이들 문제를 북한의 핵 폐기 이후로 상정해왔고, 특히 관계정상화는 핵문제가 해결된 이후에도 미사일, 생화학무기, 인권 등 다른 문제에서도 진전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초강경 입장을 고수해왔다.

이에 반해 북한은 테러지원국과 경제제재 해제는 핵 동결 단계에서 이뤄져야 하고, 평화협정 체결 등 법적 구속력이 있는 안전보장과 관계정상화는 최소한 핵 폐기 이전에 마무리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와 같은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접점을 만들지 못하면 합의 도출은 난망한 상황이다.

이처럼 부시 행정부는 핵심적이고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면서 핵 폐기 준비기간, HEU, 대북 에너지 지원 등에 있어서는 약간의 변화된 입장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그 방향으로는 핵 폐기 준비기간을 3개월에서 몇개월을 더 늘리고, HEU 문제를 일단 뒤로 미루며, 대북 중유 제공에 상징적으로 참여하는 방향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러한 수준으로 북한의 전략적 결단을 유도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부시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하다

이처럼 4차 6자회담을 앞두고 또다시 나타나고 있는 부시 행정부 내 초강경파와 협상파의 이견은 부시 대통령의 결단을 통해 해소되어야 한다. 미국 내 정치적 역학관계의 변화에 따라 대북정책이 왔다갔다하는 상황이 극복되지 않으면, 합의 도출도, 합의의 원활한 이행도 어려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번 6자회담은 김정일 위원장이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고 말했던 "조선반도의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의지와 함께, 부시 행정부가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진정성을 갖고 있는지를 시험하는 무대가 될 것이다. 그리고 부시 행정부가 기존의 제안에 집착하면서 창의성과 유연성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파국의 책임으로부터 미국은 결코 자유로워질 수 없을 것이다. 북한 못지 않게 미국도 전략적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인 것이다.   

정욱식/ 2005년 7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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