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이 똥오줌과 콧물로 뒤범벅
온몸이 똥오줌과 콧물로 뒤범벅
  • 박석무소장
  • 승인 2005.08.22 10: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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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古經)에서 시(詩)란 ‘뜻을 말함(言志)’이라고 했습니다. 2500수가 넘는 그 많은 다산의 시에서 우리는 다산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다산은 아름다운 경치나 강산(江山)을 읊을 때는 생생한 묘사를 통해 자연의 신비스러움과 조물주의 조화를 멋지게 표현했지만, 민중의 고단한 삶과 비참함을 읊을 때에는 사회와 역사의 깊은 통찰을 통해 진솔하고 핍진한 표현으로 세상의 모순과 갈등을 폭로하기도 했습니다.

산골 늙은이 오늘 아침에 산마을에 내려가
일부러 괴로운 사정 묻고자 처마 끝에 앉았다오.
남촌의 가난한 아낙 사납고 독한 목소리로
시어머니와 싸우며 떠들다가 울어댄다.
큰 아이 절름거리며 바가지 하나 손에 들고
작은 아이 얼굴이 시들고 누렇게 떴네.
우물가 애 하나 유독 여위고 파리한데
배는 성난 두꺼비요 볼기짝은 쭈그러졌네.
어미 나가자 아이란 놈 땅에 앉아 울어대는데
온몸이 똥오줌과 콧물로 뒤범벅이네.
어미 돌아와 아이 후려치니 울음소리 더욱 세차
하늘과 땅 찢어지고 구름도 놀라 피해가네.
동쪽 마을엔 실 뽑은 물레 소리 덜덜거리고
서쪽 마을엔 보리방아 소리 쿵덕쿵덕.
집 뒤에선 소를 모느라 이랴낄낄
소란 놈도 말 안 듣고 힘만 빼고 있다네.
산골 늙은이 마음 작정 못하고 마음만 뒤숭숭
오래 머물러도 이런 재앙 처리할 수 없어서
소매 떨치고 사뿐히 산으로 올라오니
푸른 나무에선 늦매미 울고 연꽃만 피어나네.


 山翁(산골 늙은이)

山翁今朝下山村 直爲問疾坐簷端 (산옹금조하산촌 직위문질좌첨단)
南村貧婦聲悍毒 與姑勃谿喧復哭 (남촌빈부성한독 여고발계훤부곡)
大兒槃散手一瓢 小兒蔫黃顔色焦 (대아반산수일표 소아언황안색초)
 井上一兒特枯瘦 腹如怒蟾臀皮皺 (정상일아특고수 복여노섬둔피추)
母去兒啼盤坐地 糞溺滿身鼻涕溜 (모거아제반좌지 분익만신비체유)
母來擊兒啼益急 天地慘裂雲色逗 (모래격아제익급 천지참열운색두)
東鄰繰絲聲軋軋 西鄰舂麥聲搰搰 (동린조사성알알 서린용맥성골골)
 舍北叱牛聲咄咄 牛不聽戒力但竭 (사북질우성돌돌 우불청계력단갈)
山翁心煩意未裁 不可久留受此災 (산옹심번의미재 불가구유수차재)
翩然拂袖上山來 碧樹凉蟬藕花開 (편연불수상산래 벽수량선우화개) 
               

‘산골 늙은이’라는 제목의 시 한편입니다. 다산의 시다운 맛이 물씬 풍깁니다. 다산초당에서 골똘히 학문을 연구하다가도 세상의 일이 궁금해서 산 아래 마을에 내려가 민정을 살피고 가난한 백성의 삶에 엉엉 울어버린 다산. 다산의 백성 사랑이 넘쳐흐르는 시입니다.

2005. 8. 22  /  박석무(다산연구소 소장)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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