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한국의 PSI 참여, 그 의미와 파장
[긴급진단] 한국의 PSI 참여, 그 의미와 파장
  • 정욱식대표
  • 승인 2006.01.26 10: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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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가 미국 주도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참여하기로 결정해, 파장이 일고 있다. PSI의 핵심적인 대상이 북한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PSI 참여는 미국 주도의 대북 봉쇄정책에 한국도 발을 걸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전면적 참여가 아니라 부분적 참여라고 강조하고 있다. 즉, 미국이 요청한 8개의 협렵 방안 가운데, ▲한미 군사훈련에 PSI 포함 ▲PSI 활동전반에 대한 브리핑 청취 ▲PSI 차단훈련에 관한 브리핑 청취 ▲역내 차단훈련 참관 ▲역외 차단훈련 참관 등 5개는 수용하고, PSI 정식참여와 역내 차단훈련시 물적지원, 그리고 역외 차단훈련시 물적지원 등 3개는 제외했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미국 주도의 PSI의 최우선적인 대상인 북한이 이 구상에 대해 군사적 봉쇄 조치라고 강력히 반발해온 것을 고려할 때, 한국의 PSI 참여는 6자회담은 물론 남북관계에도 상당한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북한이 민감하게 반응해온 한미 합동군사 훈련에 PSI를 추가하기로 함으로써, 한미 군사훈련에 대한 북한의 반발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궁색한' 설명

노무현 정부가 PSI 참여를 결정한 것도 큰 문제이지만, 이러한 중대한 사안을 국민들에게 알리지 않은 것 역시 문제로 지적된다. 정부는 이미 지난 12월 29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에서 PSI 참여를 결정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결정을 미국에는 통보한 반면에 국민들에게는 '쉬쉬' 하다가, 열린우리당의 최재천 의원이 폭로하자 이를 뒤늦게 시인한 것이다.  

정부가 기존의 입장을 번복해 PSI 참여로 선회하면서 내놓은 설명 역시 궁색하기 짝이 없다. 정부는 "유엔 안보리 결의와 해상운송불법행위 억제협약 개정을 통해 PSI가 국제규범으로 정착해 가고 있고 세계 70여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 PSI에 참가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정부가 말한 유엔 안보리 결의안은 2004년 4월 28일 채택된 1540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결의안 자체가 미국의 압력으로 채택되었을 뿐만 아니라, PSI를 승인한다는 구절도 없다.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PSI의 근거로 삼고 있는 것은 부시 행정부의 일방적인 해석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구나 미국 주도의 PSI는 영해상의 무해 통항권과 공해상의 자유 통항권을 보장하고 있는 국제해양법과도 저촉된다. 심지어 해양법 23조는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의 무해 통항권까지도 인정하고 있다. PSI의 국제법적 근거는 여전히 논란거리로 남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부는 또한 세계 70여개국이 참여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대다수 국가들은 PSI의 목적에 동감한다는 것이지, 합동 훈련을 실시하는 등 실질적인 참여를 하는 나라는 20여개국에 불과하다.

더구나 이들 국가는 PSI에 참여하더라도 크게 손해 볼 것이 없다. 이에 반해 북한이 PSI의 최우선적인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PSI 참여는 6자회담과 남북관계를 총체적인 위기로 빠뜨릴 수 있다. 다른 나라의 참여와 한국의 참여에는 중대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한미 군사훈련에 PSI 포함

정부는 PSI에 전면적인 참여가 아니라 부분적인 참여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PSI 참여 자체가 미국 주도의 대북 봉쇄에 동참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고, 특히 한미 합동군사 훈련에 PSI를 포함시키기로 함으로써, 남북관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북한은 한미 합동군사훈련과 남북대화를 연계시키는 태도를 보여왔다. 특히 지난 12월 남북 장관급 회담에서 한미 군사 훈련 중단을 요구했고, 이에 통일부는 국방부에 매년 3월 열리는 한미 연합 독수리훈련 및 전시증원훈련 연기 검토를 요청한 바 있다. 이에 국방부는 당초 계획대로 훈련을 실시하기로 했다.

이렇듯 한미 군사 훈련이 남북대화의 변수로 등장한 상황에서 PSI를 포함시키기로 한 것은, 남북대화 분위기 조성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북한에게 회담 거부라는 강력한 구실을 주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우려되는 것은 남북대화, 특히 군사 회담을 둘러싸고 남북한의 상호 비방전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남북 양측은 지난 12월 장관급 회담에서 군사 회담을 "새해 들어 조속히 개최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북한은 남한이 계속해서 미국과 군사 훈련을 하기로 한 것에 불만을 표하고 있고, 남한은 군사 회담에 응하지 않고 있는 북한에 불만을 나타내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군사회담을 둘러싼 남북 양측의 시각 차이가 좁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한미 군사훈련에 PSI도 포함키로 함으로써, 군사회담 개최 가능성은 더욱 줄어들게 될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예정대로 3월에 연합전시증원훈련과 독수리 훈련이 실시되면, 장관급 회담마저 위태롭게 될 공산도 있다.

전략적 유연성과 PSI

또 한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PSI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국방부는 지난 2003년 12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비롯해 해외 주둔 미군 재배치(GPR)를 설명하면서, 그 주된 목적 가운데 하나가 PSI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한국이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하고 PSI에 참여하기로 한 것은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예를 들어 주한미군이 북한의 의심 선박이나 비행기를 정지·나포하기 위해 출동할 경우 이를 반대할 명분과 근거가 사실상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만약 한반도 인근에서 이러한 일이 발생하면, 한반도의 군사 위기는 급격히 고조될 수밖에 없다.

물론 이는 가정적 상황이다. 그러나 북미간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시점에, 노무현 정부가 또 다시 미국의 요구에 굴복하면서 대북 봉쇄에 동참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게 되면, 불확실한 미래를 통제할 수 있는 한국의 역량과 여건은 더욱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실패한 2년, 또 다시 반복되나?

출범 직후부터 노무현 정부는 김대중 정부 때의 균형외교에서 이탈해 한미동맹에 '올인'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국이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면 미국도 한국의 입장을 잘 이해하고 대북정책을 완화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2년이 지나도록 부시 행정부의 대북강경책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자 노무현 대통령은 2004년 11월 'LA 발언'을 통해 균형적이고 주도적인 외교 노선을 천명하면서 남북관계와 한미관계를 균형적으로 접근하려는 노력을 보였다. 그 결과 주춤했던 남북관계는 정상화되었고, 이는 6자회담 재개와 9.19 공동성명 채택의 밑거름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균형 외교로의 복귀가 결실도 맺기 전에, 정부는 또 다시 한미동맹에 경도되고 있다. 집권 초기 2년간의 실패를 또 다시 반복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다. 

정욱식/ 2006년 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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