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지는 싸움(4)
어차피 지는 싸움(4)
  • 김경일신부
  • 승인 2006.03.11 1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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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에서 후배가 찾아왔다. 대학생회와 청년연합회를 지도하는 역할을 해온 한신대 학보사출신의 후배 상현이었다. 그는 내년에 성공회 신학대학원에 들어오려고 계획하고 있었다.  그런데 신학원에서 성명서가 뜨고 전국의회가 유산되고 하는 등의 일련의 사태가 전개되자 정확한 상황을 알려고 찾아온 것이었다. 
“형. 도대체 어쩌려고 그러는 거야? 어디까지 가려고 그러는 거지? 후배들은 혼돈스러워 해.” 
“그래. 왜 그렇지 않겠냐? 학교에 들어와 보니까 너무 보이는 게 많아. 답답하다고. 결국 터트리게 된 거지. 아마 이 싸움은 끝까지 가는 싸움이 될 거야.” 
“교회갱신운동과 반독재투쟁은 병행하기 어려운 일이 아닐까?” 
“어차피 내부모순을 안고 외부와 싸우는 거지만 교회가 혼란스럽고 어지러운데 내부정리도 안된 상황에서 대정부투쟁만을 고집한다는 것도 좀 그렇잖아?” 
“형이 교회정치에 대해 잘 알지 못해 그러는 모양인데 지금 형들이 벌리는 일들을 교회 내부에서는 순수하게만 보지는 않고 있다구요. 이 싸움의 결과 그 열매가 누구에게 가는가에 관심이 쏠려 있을 겁니다. 그래서 교회갱신운동이 어려워요.” 
“그래? 글쎄 그런 관점에서는 생각 못해 봤는데... 어떤 결과를 미리 예측할 상황도 아니고. 대체적으로 교회에서 이런 내부정화운동이 일어나면 어떤 식으로 전개되니?” 
“교회라는 게 그렇잖아요? 교회에는 온갖 계층의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뒤섞여 있잖아요? 교회에 다니면서 이권이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순수하게 신앙 때문에 다니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복잡하기 마련인데 교회정의를 외치며 구악일소 대청소를 하려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겠어요? 처음에는 불타는 정의감과 이상을 가지고 참여했던 양심적인 사람도 시간이 지나서 싸움에 지치고 인간에게 실망을 하게 되면 내가 이 꼴을  왜 보고 있냐면서 교회를 떠나게 되고 반대로 이권이 걸려있는 사람은 끝까지 남아서 자기 몫을 챙길 거란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수치심이 없어요.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다구요. 그러니 판단 잘 해야 해요.” 
“글쎄 결과를 미리 생각하면 이런 일 못하는 거 아니냐? 그냥 내 양심에 비추어서 계란으로 바위 치는 심정으로 하는 거다. 성직을 포기하자며 시작한 일이야. 뒤로 물러 설 수는 없다. 닥친 상황 앞에서 정직하게 대응하는 수밖에. 그리고 학생들이 이렇게 나서면 교회 안에서 뜻이 있고 공감하는 사람들은 분명 호응이 있을 거고 깨닫는 바가 있을 거다.” 
“아무 것도 모르는 순진한 교인들이 받을 충격은 생각해 보았어요?” 
“어차피 교회의 존재라는 게 역사의 파도를 타고 역동성을 획득하는 거 아니냐?” 
“어차피 이길 수 없는 싸움인데다 싸움이 끝나면 형들은 교회에서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지는 싸움인 줄 알면서도 계속 갈 수 밖에 없는 것은 교회가 분명히 잘못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입 꼭 다물고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야.” 
“누가 형보고 뭐라 그럽디까?” 
“누가 그래서가 아니라 사람은 자기가 맡은 역할이 있고 갈 길이 따로 있는 거야. 신학교라는 데가 뜻으로 살겠다는 사람이 모이는 곳 아니냐? 남도 남이지만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 나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나에게 맡겨진 일을 어떻게 피하겠니? 정면돌파 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어. 문제는 내가 교회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게 없다는 거야.” 
“교회갱신운동을 한다고 해서 교회가 바로잡아질까요?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다시 원상복귀 될 가능성이 커요. 오히려 교회가 더 경직될 수도 있어.” 
“우리 사회에서 자정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집단이 교회 말고 또 어디가 있겠냐? 예수정신으로 자기 몸을 채찍질하며 가야하는 거지.” 
“어떤 방법으로 운동을 전개할 건데요?” 
“교회의 문제점을 우선 드러내야겠지.” 
“교회비리를 찾는데 너무 집착하면 교회에 상처만 남는다구요. 폭로할 거 다 하고나면 그 다음에는 무얼 어떻게 할 작정이죠?” 
“당연히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야겠지.” 
“현 교회의 상황이 잘못되었다는 지적만으로 과연 교회가 바뀔까요? 폭로할 거리가 다 떨어져 공격이 끝나면 이제 공격을 받을 차례가 되는 겁니다. ‘그러는 너희들은 교회를 위해 무얼 그리 잘 했냐? 잘 한 거 있으면 내놔 봐라.’ 그러면 아직 학생인 우리는 대답이 궁색해요.” 

논쟁은 끝이 없고 후배는 이런 저런 문제를 짚으며 걱정만 하다 돌아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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