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포럼>애처로운 다산의 시
다산포럼>애처로운 다산의 시
  • 박석무소장
  • 승인 2006.04.12 1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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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름 높은 사상가이자 실학자로 역사에 큰 이름을 전하는 인물이 다산이지만, 그가 당한 유배살이 18년의 고초를 생각하면 어떤 때는 가슴이 막히는 때가 많습니다. 그가 전해 준 글이나 시를 읽다보면 사람이 살다가 그런 아픔이나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우리의 마음까지 아파질 때가 있습니다.

어떤 편지에 보면 82일 만에 답장을 받고 기뻐했지만, 세 달이 다되도록 집안의 소식을 몰라 가슴 졸이던 유배인의 설움에 접하다보면 우리 가슴도 저려옵니다. 갈아입을 옷이 없어 몇 달 동안 옷을 갈아입지 못하는 불편함을 이야기했을 때에는 우리의 몸이 군적거리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산은 그런 고통과 불편을 모두 견디고 이겨내는 탁월한 인내력을 발휘했습니다.

얼굴 모습이야 내 아들 같건만
수염이 자라선지 딴 사람 같네.
비록 아내 편지까지 가져 왔지만
정말로 진짜인지 판별 못하네.
眉目如吾子 鬚髥似別人
家書雖帶至 猶未十分眞
 
이 시를 읽어보면 인간이 이런 고통을 당할 수 있을까 다시 생각하게 해줍니다. 1808년, 다산이 귀양살이 8년째인데, 강진읍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3월 하순에 오늘의 다산초당이 있는 귤동의 윤씨네 정자로 삶의 터를 옮겼습니다. 한 달 쯤 지나서 고향에서 둘째 아들 학유(學游)가 아버지를 뵈러 왔습니다. 그 때 「4월 24일 학포(학유의 아명)가 왔다. 서로 헤어진 지 이미 8년째이다(四月二十日學圃至 相別已八周矣)」라는 제목으로 지었던 시입니다.

1801년 신유교옥(辛酉敎獄)으로 유배살이를 떠날 때, 학유의 나이 16세, 8년째인 1808년이면 23세의 장년이 된 때였습니다. 아내의 편지를 가져왔고, 얼굴도 분명히 학유임에 틀림없으나 수염이 길어 불분명하다는 표현에는 애간장 녹이는 아버지의 아픔이 서려 있지 않은가요.

부자간의 정을 8년이나 끊어놓았던 당사자는 누구인가요. 권력에 눈이 멀었던 부패 관료들, 그러나 다산은 그들을 탓하지 않고 학문에 매진하여 대성하고 말았으니 멋지지 않은가요.


*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300회 기념 행사

박석무 이사장의 <풀어쓰는 다산이야기>가 4월 17일로 300회를 맞이하였습니다.
여러분의 성원에 감사드리며, 300회를 기념하는 작은 행사를 마련했습니다.
‘다산’ 또는 ‘풀어쓰는 다산이야기’에 관해 여러분의 글을 5월 16일까지 보내주십시오.
어떠한 종류의 글이라도 좋습니다.

참여하신 분 가운데 약 30분을 추첨해 『풀어쓰는 다산이야기』(문학수첩, 2005)를 드립니다. 또한 앞으로『풀어쓰는 다산이야기』2권이 출간되면 보내드리겠습니다.

보내주신 글은 귀중하게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보내주실 곳
staff@edasan.org
팩스 02) 545-1694 (팩스로 보내실 경우, 성함과 이메일을 명기하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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