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의 북한 설득,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한·중의 북한 설득,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 정욱식대표
  • 승인 2006.07.14 11: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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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을까? 부산과 평양에서 동시에 이뤄진 남한과 중국의 북한 설득 외교가 사실상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북중간의 협의 결과를 지켜보기 위해 베이징에 갔던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차관보는 "중국이 북한을 설득하는데 실패했다"며, 이제 공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로 넘어갔다고 밝혔다.

이와 거의 동시에 남북장관급 회담도 결렬돼, 북측 대표단은 당초 일정보다 하루 앞선 13일 오후 평양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장관급 회담이 일정도 채우지 못하고 결렬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써, 향후 남북관계가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이처럼 남북, 북중 회담이 이렇다할 성과 없이 끝남에 따라 한반도 정세는 가파른 비탈길을 탈 것으로 보인다. 여러 가지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안정화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보였던 남북관계는 미사일 유탄을 맞아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김대중 정부 출범이후 지속되었던 대북 인도적 지원마저 끊길 위기에 처하고 있고, 금강산 관광, 개성 공단, 철도·도로 연결 등 이른바 3대 경협도 중대한 분수령을 맞이하고 있다. 정부간 관계의 악화로 민간 교류까지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이러다가 남북관계가 대결 시대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나라 밖 사정도 안 좋다. 줄곧 '북미 직접 대화 불가' 및 '대북 금융제제 해제 불가' 방침을 밝혔던 부시 행정부는 남한과 중국의 북한 설득 실패를 계기로 '5 대 1 구도 만들기'를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2002-2003년 초까지 북미관계 중재자 역할을 했던 일본의 고이즈미 정부는 미국보다 더 강경한 입장이다. 일본은 독자적인 제재에 돌입하는 한편, 대북 제재에 초점을 맞춘 유엔 안보리 결의안 채택을 강력히 추진해왔다. 이러한 일본의 발걸음은 한중 양국의 북한 설득 실패로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예방외교'에 나선 후진타오 정부

주목할 점은 중국의 후진타오 정부이다. 중국은 북한을 설득하는 것과 동시에 두 가지 주목할 만한 조치를 취했다. 하나는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위해 미국이 대북 경제제재와 관련해 양보를 해야 한다고 발표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러시아와 함께 새로운 안보리 결의안 초안을 작성해 이를 회람시킨 것이다. 중러 양국의 안보리 결의안은 북한에 대한 비판과 권고를 남고 있지만, 일본측 안에 명시된 제재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중국이 이러한 두 가지 조치를 취한 것은 북한을 설득하기가 여유치 않자, 압박의 화살이 자신을 겨냥하고 한반도 위기가 고조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도 골칫거리이지만, 이들 문제를 이유로 북한의 안정이 근본적으로 흔들리는 것이 더 큰 걱정거리이다. 중국이 미국의 강력한 불만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대한 버팀목 역할을 계속 해온 것도 이러한 지정학적 요인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중국의 공개적인 요구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대북 금융제재에 대해 비타협주의를 고수함에 따라 6자회담이 열리지 않는 데에 미국도 책임이 있다는 점을 부각시킬 수 있다. 또한 북중간의 협의가 나오기도 전에 새로운 안보리 결의안을 회람시킴으로써, 미일 주도의 제재 결의안을 희석·차단시키는 효과도 기대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지는 불확실하다. 미국 정부는 작년부터 중국이 "책임있는 이익상관자"가 되기 위해서는 핵, 미사일 등 비확산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압박해왔고, 미국 의회 역시 "미중 관계의 시금석은 북한에 대한 중국의 태도에 있다"며 북한에 대한 지원 축소와 압박 증대를 요구해왔다.

특히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 직후, 존 메케인 공화당 상원 의원은 중국이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무역 보복을 추진할 수 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처럼 미국의 압박은 점증해온 반면에, 북한의 6자회담 복귀 설득에는 실패함으로써 향후 중국의 입장은 더욱 난처해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어떻게 될 것인가?

미국이 계속 비타협주의를 고수하고 북한 역시 한중 양국의 설득에 귀를 막음으로써 한반도 상공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게 되었다. 미국이 금융제재를 해제할 가능성도, 북한이 미국의 양보 조치 없이 6자회담에 복귀할 가능성도 희박하다는 점에서 당분간 먹구름의 농도는 더욱 짙어질 것으로 보인다.

관심의 초점은 유엔 안보리 결의안으로 모아진다. 경우의 수는 크게 네 가지이다. 첫째는 일본안의 채택이고, 둘째는 중국안의 채택이며, 셋째는 양측의 절충안이며, 넷째는 결의안 채택 실패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일본안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고, 반대로 미국과 일본이 중국안은 함량 미달이라고 판단하고 있어, 절충안이 채택되거나 아예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

결의안 논의 과정에서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와 장외에 있지만 상징적인 의미가 큰 한국의 입장이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가 중국과 공동보조를 취한다면 중국으로서도 부담은 덜해질 수 있다. 한국이 대북 제재에 초점을 맞춘 결의안에 반대하면, 중국은 이를 명분으로 활용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러시아와 한국을 둘러싼 미중 양국의 외교전도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어떤 결의안이 채택되든 문제 해결에는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대북 제재가 포함된 결의안이 채택되면, 북한은 이에 굴복하기보다는 "제재를 선전포고로 간주한다"는 입장에 따라 추가적인 미사일 시험 발사와 같은 초강경수를 두고 나올 가능성이 높다. 제재가 포함되지 않을 결의안이 채택되면, 6자회담의 재개는 모색되겠지만 지금까지의 경우에 비춰볼 때, 교착상태는 더욱 장기화될 것이다.

안보리 결의안의 향방은 한국의 대북정책에도 중대한 함의를 갖는다. 제재가 포함된 안이 채택되면, 미국과 국내의 보수파는 이를 근거로 북한에 현금이 들어가는 금강산 관광과 개성 공단 사업의 중단 내지 축소를 강하게 요구하고 나올 것이다. 결의안에 제재가 명시적으로 포함되지 않더라도, 남북경협의 입지는 위축될 공산이 크다. 결의안에 어떠한 형태로든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전용될 수 있는 무역 거래에 대한 우려가 포함될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질 나쁜 위기, 그러나….

지난 10년간 지속되어온 한반도 위기는 이제 출구 없는 터널로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갔던 1994년 6월 위기는 지미 카터의 중재에 힘입어 그 해 10월 제네바 합의로 반전되었다. 1998년 8월 금창리 핵의혹 시설과 북한의 광명성1호(대포동1호) 발사로 촉발된 위기는 김대중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에 의해 페리 프로세스로 귀결되었다.

2002년 1월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으로 촉발된 위기는 DJ가 부시를 설득해 도라산역에서 "우리는 북한을 침공할 의사가 없다"는 발언을 이끌어내고, 그 해 4월 임동원 특사가 평양을 방문해 남북관계를 정상화시키기로 함으로써 수습되었다.

2005년 1-2월 부시 행정부의 "폭정의 전초기지" 발언과 이에 대해 북한의 핵보유 선언으로 조성된 위기는 한국과 중국의 중재에 힘입어 '대화 국면'으로 전환되었고 9월에는 9.19 공동성명을 낳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9.19 공동성명이 채택된 이후 문제 해결의 희망은 위축되고 갈수록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어쩌면 가장 질 나쁜 위기 국면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난 10여년간의 순환 구조를 형성해온 한반도 위기가 보여준 교훈은 있다. 자력에 의해서든, 타력에 의해서든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켜온 것이 바로 그것이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오늘날의 위기 상황에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바로 이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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