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포럼> 도박이라는 함정
다산 포럼> 도박이라는 함정
  • 허 욱
  • 승인 2006.09.06 17: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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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이야기’ 파문이 계속 확산되고 있다. 바다의 성난 파도에 여러 명이 다쳐야만 이야기가 끝을 맺을 모양이다. 그런데 사행성 게임업체들에 대한 검찰과 경찰의 대규모 단속이 강화되자 가정집으로 잠적하거나 음식점, 인테리어 업체 등에서 위장 영업을 하는 곳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한 성인게임업소는 문을 닫으면서 ‘더 높은 배당률로 곧 다시 찾아 뵙겠다’는 안내문을 붙였다고 하니 사람들의 도박욕구를 잡는 데 경찰의 단속으로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온라인게임은 문제없나

사행성 게임을 즐기는 국내 인구는 과연 얼마나 될까? 웹사이트 분석기관인 랭키닷컴에 의하면 온라인 고스톱과 포커게임의 경우 넷마블, 피망, 한게임 외에 60여개에 이르는 유사 사이트를 모두 합하면 하루 약 150만명 이상이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발간한 ‘카지노 자본주의의 폐해’란 보고서에서 1995년 2~3조원 수준이던 한국의 도박 관련 산업(경마, 경륜, 경정, 카지노, 복권, 사행성 게임) 규모가 2005년에 35조원으로 급증했으며, 비밀카지노바 등 약 16조에 이르는 음성도박산업까지 감안하면 한국의 도박산업 규모는 약 50조원 수준이라고 추정하였다. 또한 도박산업의 연간 이용객은 7,775만명으로 추정하였다.

게임 몰입에 대해서는 사실 청소년들이 더 문제다. 국가청소년위원회가 발표한 ‘청소년 컴퓨터사용 실태’에 의하면 한국 청소년의 하루 평균 게임 시간은 386분(6.43시간)이다. 그리고 청소년들의 약 90%가 게임중독에 빠져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청소년들의 게임은 사행성과 무관할까? 유감스럽지만, 그렇지 못하다. 이번에 경품용 상품권이 문제가 되었듯이 온라인게임에는 ‘아이템’이라는 ‘유사 디지털 유가증권’이 있다. 한국 온라인게임산업의 폭발적 증가 이면에는 ‘아이템 거래’라는 그림자가 일정한, 비판적 시각에서는 상당한 정도의, 역할을 담당했다. 국내 아이템거래 시장 규모는 연간 총 8천~9천억원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그래서 게임에 중독된 일부에 해당하지만 “못하는 공부 대신에 게임을 해서 번 아이템을 팔아서 먹고 살겠다”고 말하는 청소년들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어른이건 청소년이건 게임에 계속 빠지도록 유혹하는 ‘꿀단지’가 있는 셈이다.

사람의 일상생활은 크게 일과 공부 등의 생산활동과 식사, 수면과 같은 유지활동, 그리고 여가활동으로 삼등분할 수 있다. 사람들이 오락 또는 게임을 하는 이유는 대부분 심심풀이 또는 쉬는 시간에 기분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이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사람의 마음은 평상시에는 정보의 무질서 상태에 있게 된다. 무엇인가에 집중하지 못하면 의식은 혼돈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권태와 무력감을 느끼게 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하여 게임과 같은 자극으로 정신을 채우거나 마약이나 술 같은 인위적인 이완제가 가져다 주는 몽롱한 상태로 가라 앉게 된다는 것이다.

여가활용에도 자기통제력 있어야

문제는 게임에서 도박으로 나아가는 경계가 종이 한 장 차이에 있다는 점이다. 국어사전을 보면 게임은 기술과 능력을 겨루는 시합을 의미하고, 도박은 금품을 걸고 승부를 다투는 일로 정의한다. 도박은 쉽게 말해 내기를 걸고 게임을 한다는 뜻이다.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내기화투뿐 아니라 내기장기나 바둑, 내기축구, 내기당구, 내기골프 한 번 안 한 사람이 있을까? ‘내기’는 게임의 긴장감을 높이고, 이겼을 때는 승리의 기쁨을 더하기 때문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다산의 글 중에도 ‘술내기 활 쏘기’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느낀 감흥을 노래한 시가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내기게임이 재미와 즐거움의 수준을 넘어 도박과 중독의 수준에 이르게 되면 그것은 자기통제력을 상실했음을 의미한다. 그 수준과 경계를 지킬 자신이 없으면 아예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생산성의 발달로 여가시간이 점차 늘어나고 있지만 남는 시간을 현명하게 쓰는 방법을 익히지 못할 경우 여가는 자기성장과 행복의 기회가 아닌 장애가 될 수도 있다. 도박에 빠진 사회가 되느냐, 아니면 성숙한 문화사회가 되느냐의 차이는 시민들이 여가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있다. 삶의 지배권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은 일의 즐거움을 배우고, 여가시간에 우리 자신의 의지가 원하는 방향으로 마음을 기울이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다.


· 글쓴이 / 허 욱

· LIBRA컨설팅(주) 대표
· 前 CBS 보도국 기자
· 前 CBSi(주) 대표이사
· 前 인터넷신문 업코리아 편집국장
· 현재 공공정책과 경영전략, SystemEngineering 부문 컨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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