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5주년, 미국, '악의 축', 그리고 한반도
9.11 5주년, 미국, '악의 축', 그리고 한반도
  • 정욱식대표
  • 승인 2006.09.13 17: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9·11 테러 5주년을 맞이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11월로 다가온 중간선거와 맞물려 안보논쟁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9·11 테러 직후 국가안보를 절대시하는 분위기를 틈타 지지율 70%를 상회하기도 했던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수렁에 빠져들면서 역대 정권 가운데 가장 인기없는 정권으로 전락하고 있다.

실제로 각종 여론조사에서 부시 행정부에 대한 지지율은 40%를 넘지 못하고 있다. 공화당 골수 지지자 비율이 40%가 넘는 미국에서는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중간선거 앞두고 '안보'에 매달리는 부시

11월 중간 선거와 2008년 대선을 앞두고 이렇다할 반전의 카드를 찾지 못한 부시 행정부는 안보 문제를 전면에 부각시키면서 미국 국민들의 안보 불안심리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연일 '테러와의 전쟁' 연설을 통해 테러와의 전쟁의 중심에는 이라크가 있고, 이라크에서의 후퇴는 테러와의 전쟁에서의 패배를 의미한다며 9·11 테러와 이라크 침공을 연계시키는 데 급급하기만 하다. 또한 부시 대통령은 테러 용의자들에 불법으로 구금한 CIA의 비밀 감옥의 존재를 시인하기도 했다.

딕 체니 부통령과 함께 이라크 침공을 주도한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이라크에서의 철수 요구는 나치 독일에 대한 유화정책과 마찬가지라며, 민주당의 이라크 정책 수정 요구를 '역사의 망각'이라고 몰아붙였다가 곤혹을 치르고 있다.

분개한 민주당은 럼스펠드에 대한 불신임 결의안을 추진하고 있고, 선거를 앞둔 일부 공화당 의원들은 럼스펠드를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써 '테러와의 전쟁' 심볼로 불려온 럼스펠드는 장관 취임 6년 반만에 최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렇듯 9·11 테러 5주년을 맞이하고 있는 미국의 분위기는 '성찰'과는 거리가 멀기만 하다.

부시 행정부와 공화당은 '이라크 수렁'이라는 악재를 선거의 호재로 만들기 위해 9·11 테러를 한껏 활용하고 있다. 1994년 중간선거 이후 12년만에 의회 권력 탈환을 노리고 있는 민주당은 부시 행정부가 미국과 세계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며, 공세의 고삐를 당기고 있다.

이라크·이란·북한의 공통점은?

사상 초유의 테러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는 9·11 테러 5년이 지난 지금, 미국은 이 테러 사건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세 나라들과 전면적인 대결 상태에 있다. 부시 행정부가 2002년 1월 연두교서에서 지목한 '악의 축' 국가들인 이라크·이란·북한이 바로 그들이다.

후세인과 알-카에다와의 연계 및 대량살상무기 개발 의혹을 들고 이라크를 침공한 부시 행정부는 침공의 명분은 모두 잃은 채, '21세기판 베트남 신드롬'에 빠져들고 있다. 이미 이라크에서의 미군 사망자 수는 9·11 테러 희생자 수에 육박하고 있고, 종족갈등으로 얼룩지고 있는 이라크의 현실은 미국의 위선을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있다.

북한은 이미 10개 안팎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확보하고 탄도미사일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무력은 사용할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이 안 되고, 제재와 봉쇄는 북한의 핵무장을 재촉하고 있을 뿐이다.

이란도 '핵 카드'를 들고 미국과의 맞짱뜨기에 나서고 있다. 개혁파인 하타미 대통령에 이어 집권한 강경 성향의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무시하면서까지 '핵 주권'을 외치고 있다.

이에 대해 네오콘을 중심으로 미국 내 일각에서는 이란 핵시설에 대한 선제공격론이 나오고 있지만, 상당수의 미국인들조차 이는 '미친 짓'이라고 보고 있다. 이란마저도 핵보유국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는 이제 더 이상 기우가 아닌 것이다.

국내 개혁과 서방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추구했던 하타미의 이란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부시 행정부의 자업자득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흔히 이들 세 나라의 공통점으로 '악의 축' 국가들이라는 점이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이라크·이란·북한 모두 9·11 테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시 행정부와 보수 언론의 '이미지 만들기'가 성공한 탓인지, 상당수의 미국인들은 이들 국가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강경책을 '테러와의 전쟁'의 일환으로 이해하고 있다.

성찰과 자기정화 능력을 상실한 미국과 이들 세 나라의 운명이 걱정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악의 축”에서 허덕이는 북한, ‘동맹의 덫’에 걸린 남한

9.11 테러 이후 한미관계와 북미관계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북한은 부시 행정부에 의해 “악의 축”으로 지목되었고, 남한은 미국 주도의 ‘테러와의 전쟁’ 및 ‘이라크 침공’, 그리고 '한미동맹 재편'에 휘말리면서, ‘동맹의 덫’에 빠지고 말았다.

물론 이러한 현상들이 발생한 이유를 9.11 테러로 환원하는 것은 단세포적 발상이다. 북한은 9.11 테러와 아무런 연관관계가 없었고, 미국이 동맹 재편의 구호로 들고 나온 “글로벌 파트너쉽”은 패권전략과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기실 9.11 테러가 부시 행정부가 그토록 강조했던 탄도미사일에 의한 공격이 아니라 칼로 무장한 테러집단에 의해 납치된 여객기의 공격으로 이뤄졌다는 것은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을 골자로 한 부시 행정부의 안보 전략의 위기를 의미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사상 최초로 미국 본토가 공격당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국가안보 절대주의’를 전면화하는 한편, 9.11 테러와 대량살상무기(WMD) 위협을 연계시킴으로써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켰다. ‘테러집단이 여객기도 공격 수단으로 이용하는데, WMD를 갖게 되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안보 선정주의에 의존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북한의 전략적 오판

이에 따라 부시 행정부는 9.11 테러와는 아무런 연관도 없던 세 나라를 WMD 개발 의혹을 근거로 “악의 축”으로 규정하면서, “필요하다면” 이들 나라의 WMD 보유를 저지하기 위해 선제공격도 가능하다는 ‘부시 독트린’을 채택했다. 그리고 2003년 3월에는 이라크 침공을 강행하기도 했다.

회생과 생존을 위해서는 대미 관계 개선이 절박했던 북한은 9.11 테러가 발생하자, 이에 대해 유감을 표하면서 반테러 입장과 함께 이와 관련된 국제조약에 가입할 의사를 피력하면서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꾀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북한의 이러한 성의를 일축하듯, 2002년 1월 연두교서를 통해 북한을 “악의 축” 국가에 포함시키고 말았다.

이에 따라 클린턴 행정부 말기 한때, 황금기를 구가했던 북미관계는 다시 전면적 대결 국면으로 회귀하고 말았다. 그리고 2002년 10월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보유 의혹을 둘러싸고 북미간에 충돌이 발생하면서, 이른바 ‘2차 북핵 위기’가 재발했다.

작년 9.19 공동성명을 통해 문제 해결의 희미한 접점이 보이는 듯 했으나,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에 이에 대한 북한의 반발이 악순환을 이루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이렇게 사태가 악화된 배경에는 부시 행정부의 대북한 비타협주의가 자리잡고 있지만, 핵 카드를 가지고 부시와 담판을 지을 수 있다고 판단한 북한의 오판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 기저에 '악의적인 무시'가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했던 것이다.

‘동맹의 덫’에 빠진 남한

9.11 테러가 발생한 직후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나온 부시 행정부는 동맹, 우방국들을 다그치기 시작했다. “우리의 편에 서든, 테러리스트의 편에 서든 양자택일하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는 미국의 동맹 전략에도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맹국이 미국의 안보에 기여할 때, 미국의 안보공약도 확고해질 것이라는 ‘엄격한 상호주의’를 적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테러와의 전쟁’ 초기에 미국에 협력했던 미국의 동맹, 우방국들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계기로 다른 선택을 했다. 독일, 프랑스, 캐나다 등은 ‘반전’ 대열을 주도했고, 영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 등은 ‘참전’을 선택했다.

2003년과 2004년 두 차례에 걸쳐 파병을 강행한 노무현 정부가 기대했던 것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었다. 미국이 어려울 때 도와주면 미국도 한국의 입장을 이해해 대북정책을 변화시키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이 이었던 것이다. 이를 두고 이종석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은 ‘기회비용’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확고한 무게중심을 잡고 미국을 견인하겠다는 판단보다는 ‘미국에게 잘 보이기’를 선택한 노무현 정부는 계속해서 ‘동맹의 덫’에서 허덕이게 된다. 미국의 필요에 따라 제기된 용산기지와 2사단 이전 비용을 대부분 떠 안았을 뿐 아니라,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마저 인정해주었다.

이렇듯 미국의 요구는 대부분 들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금이 간 한미관계의 신뢰는 회복되지 않고 있고, 막대한 기회비용을 치르면서 기대했던 미국의 대북정책의 변화는 연목구어(緣木求魚)와 같은 일이 되고 말았다.

'성찰'은 남북한에게도 필요하다

필자는 앞선 글에서 9.11 테러 5주년을 맞이한 미국의 분위기는 '성찰'과는 거리가 멀다고 진단한 바 있다. 이는 9.11 테러가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을 외면한 채, 이 불행한 사건을 자국의 패권 강화로 활용하는데 급급한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남북한은 어떤가? 북한은 대미 관계 정상화를, 남한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및 대등한 한미관계 구축을 목표로 삼았던 반면에, 오늘날의 현실은 이와 거리가 멀다면, 남북한 모두에게도 치열한 자기반성은 '다른 미래'를 설계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과제이다.

기실 부시 행정부 때의 남-북-미 삼각관계를 되돌아보면, '국가' 차원의 전략이 갖는 한계를 보여준다. "한미동맹을 강화시켜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는 남한의 국가 전략은, 그 자체로도 문제가 있을 뿐만 아니라 북한의 국가 전략과 충돌하는 것이다.

반대로 "핵과 미사일 시위를 통해 미국과 담판을 짓겠다"는 북한의 국가 전략 역시, 민족공동체의 생존권을 미국의 선택에 맡기는 극히 위험한 발상일 뿐만 아니라 남한의 국가 전략과도 충돌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충적인 남북한의 국가 전략은 미국의 패권주의 강화라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 이는 결국 남북한 모두 '국가'를 넘어선 '민족' 차원의 전략 수립이 절실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은 세계전략 차원에서 남북한을 분리해서 대응하고 있다. 오늘날 한반도의 북쪽은 '대량살상무기 및 테러와의 전쟁'의 대상이 되고, 한반도의 남쪽은 그 전쟁의 동맹국이 되고 있는 현실만큼이나 지독하고도 위험한 역설은 존재하지 않는다. 남북한이 미국만 바라보면서 서로를 배제하고 무시하는 국가 전략을 고집할 경우, 헤어나올 수 없는 늪으로 빠져들 수 있는 구조적인 요인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국가를 넘어 민족의 관점에서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어느 한쪽의 전략이 다른 쪽의 전략에 해(害)를 입혀서는 안 된다는 점이 충족되어야 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라는 민족적 관점의 전략 목표를 남북한 모두 공유해야 한다.

그러나 남북대화가 중단되고 상호간의 불신이 고조되는 상황에서의 어느 일방의 국가전략은 상대방에 대한 포용보다는 배제를 낳기 쉽다. 이는 거꾸로 국가를 뛰어넘는 민족 차원의 전략 마련을 위한 최소한의 전제조건이 꾸준한 남북관계의 발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히 "민족이 동맹보다 우선한다"는 민족주의 관점을 강조하기 위함이 아니다. 민족공조이든, 한미동맹이든 그 자체가 목적일 수는 없다. 그것은 우리가 양보할 수 없는 가치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의미를 크게 넘어서지 않는다. 즉, 미국이 말하는 한미동맹 강화 논리가 한반도의 평화를 저해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면 견제를 해야 하듯이, 북한이 강조하는 '반미' 민족공조 역시 맹목적인 선(善)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남북한 모두 '미국 중심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반미적인 국가인 북한은 그 이미지와를 달리 가장 미국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이를 두고 한 전문가는 '반미 사대주의'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북한은 이 표현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악의적인 무시'를 밑바탕에 깔고 있는 부시 행정부에 매달릴수록 자신이 원하는 것으로부터 더 멀어진다는 역설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남한 역시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야기되는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게중심'을 잡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무게중심을 잡는다는 것은 남한이 북한, 미국 어느 한쪽에 접근함으로써 다른 쪽과 멀어지는 것보다는 남한 스스로가 무게중심이 됨으로써 북한과 미국을 견인하는 구심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남북한이 미국에 대해 가져야 할 덕목은 미국에 대해 초연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대미 '인정투쟁의 카드'로 삼은 핵과 미사일도, 남한이 '북핵 해결의 기회비용'으로 삼은 한미동맹 강화도 한반도 평화를 가져다주지 못했다.

그렇다면 길은 어디에 있는가? 미국의 반응과 정책에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한반도 평화를 향해 남북한이 손을 맞잡고 뚜벅뚜벅 걸어가면, 그 길은 열릴 것이다. 북한은 '핵 억제력'이라는 망상을, 남한은 '동맹'이라는 환상에서 깨어나서 말이다.
    
정욱식(조지워싱턴대 객원연구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