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부시 행정부에게 고함
[칼럼] 부시 행정부에게 고함
  • 정욱식대표
  • 승인 2006.10.10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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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핵실험 의사를 천명한 이후, 부시 행정부 내 강경파들의 음흉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국제사회 대(對) 북한'이라는 대립구도를 만들기 위해 진력해왔던 사람들이기에, 북한의 성명이 왜 반갑지 않았겠는가?

북한의 무모함에는 가슴을 치게 되지만, 네오콘들의 음흉함에는 찬물에 머리를 담그게 된다. 정신을 똑똑히 차리고 세 치 짧은 혀로 미국 정부의 불순한 의도를 고발하고 마지막 땀 한방울까지 평화를 만드는데 쏟기 위함이다.

4년 전, 부시 행정부가 제임스 켈리의 손에 고농축 우라늄 카드를 쥐어주고 평양을 보낸 이후 부시 행정부 당신들은 많은 것을 얻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북한의 신경질적인 반응을 "북한이 비밀 핵프로그램을 시인했다"며 북핵 문제를 재점화하는데 성공했고, 이를 근거로 급물살을 타던 남북관계와 동북아의 또 하나의 냉전의 축인 북일관계 정상화에도 제동을 걸었다.

'북한위협론'을 전면에 앞세워 당신들의 '절대안보'를 향한 꿈과 군산복합체에 막대한 이윤이 숨어 있는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을 가속화해왔고, 한미동맹과 미일동맹도 당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재편하는데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리고 지금, 지난 7월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시험에 이어 핵실험 의사 천명을 보면서 '아마도 북한을 무너뜨릴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북한의 성명을 듣고 부시 행정부의 한 강경파는 말했다. "북한의 핵실험은 결국 중국과 러시아와 남한을 단결시킬 것이기 때문에 나쁜 것만은 아니다"라고.

그러나 당신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 이들 세 나라는 북한의 무모함에 실망하고 있는 것 못지 않게 당신들의 오만함에도 분노하고 있다는 것을. 결국 당신들의 칼날이 겨냥하고 있는 곳은 압록강 건너에 있는 중국이라는 것을. 그래서 중국은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쉽게 북한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미국의 엄중한 역사적 과오를 생각하라

당신들은 말한다. "한국의 전후 세대는 미국이 북한의 남침으로부터 한국을 구해준 것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그러나 자문해보기 바란다. 한반도를 분단시킨 당사자가 누구인가를. 미국이 그 역사적 과오를 무겁게 생각하고 한반도의 분단을 평화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진지하게 노력할 때, 당신들이 강조하지 않아도 한국 국민들은 당신들에게 고마움을 느낄 것이고, 진정한 친구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당신들은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한국인들이 가슴 한 곳에 품고 있는 반미감정의 '마르지 않는 샘'이라는 것을 당신들은 똑똑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외교다운 외교를 했다고 생각하는가?

북한의 핵실험 의사 표명 직후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는 말했다. "우리는 핵무기를 가진 북한과 공존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그러나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길 바란다. 당신과 당신의 정부가 이런 말을 할 정도로 외교다운 외교를 했는지를.

힐 당신은 주한 미국 대사로 재직할 때 자랑스럽게 말했다. "1995년에 산중(山中)에 있는 슬로보단 밀로세비치를 만나 보스니아 분쟁 중재협상을 성사시켰다"고. 그리고 당신은 회고했다. "밀로세비치를 만나는 것은 쉽지도 유쾌하지도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일이다."

그랬던 당신은 첩첩산중도 아닌 북한의 수도인 평양 땅도 아직 밟아보지 못했다. 북한이 여러 차례 초청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북한을 상대로 아직 외교의 맛도 느껴보지 못해놓고선, 외교의 종말을 암시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것이 쑥스럽지 않은가?

물론 당신은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이다. 필자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당신의 외교 상대는 북한에 앞서 딕 체니 부통령을 비롯한 당신 정부 내에 있는 강경파들이라는 것을. 나는 당신이 부시 행정부의 관료들도 설득하지 못하면서, 북한의 전략적 결단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믿었을 만큼 순진하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부시 행정부는 줄곧 양자대화 요구를 일축하면서 말해왔다. "6자회담 맥락에서 가능하다"고. "6자회담이 열리면 북한이 지겨워할 만큼 양자대화를 하겠다"고.

마치 녹음기를 틀어놓은 것처럼, 지겹도록 반복되어온 이 얘기를 들으면서 "부시 행정부가 외교를 할 생각이 있는가"라는 한숨은 필자만의 것은 아니다. 아마 당신들도 미국의 많은 언론과 전문가, 그리고 전직 관료와 공화당의 의원들까지 양자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당신들은 녹음기 버튼을 누르는 일을 반복했을 뿐이다.

당신들은 마치 북미 양자대화와 6자회담이 양립할 수 없는 대립물인 것처럼 말해왔다. 그러나 필자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는 것은 북미 직접대화는 6자회담의 대체재(substitutional goods)가 아니라 보완재(complementary goods)라는 것이다. 당신들이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을 때 콜라와 함께 먹어야 맛이 있듯이, 6자회담의 성공을 위해서는 북한과의 양자회담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신들은 6자회담이 열리지 않을 때에도 북한을 제외한 모든 6자회담 참가국들과 양자대화를 가져왔다. 만약 힐 차관보가 서울과 도쿄와 베이징에서 보낸 시간의 6분의 1만이라도, 아니 60분의 1만이라도 북한의 관리들과 시간을 보냈더라면, 지금과 같은 엄중한 상황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

아직 기회는 있다!

얼마전부터 부시 행정부의 고위 관리들은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핵보유국 북한을 억제할 수 있다"고. 1만개의 핵무기를 비롯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갖고 있는 미국이, 냉전 시대에 3만개의 핵무기를 갖고 있었던 소련도 억제하는데 성공했던 미국이 몇 개의 핵무기를 갖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 북한을 억제하지 못한다면 말이 안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사족을 붙이고 싶다. 부시 행정부는 출범 직후에 "북한과 같은 깡패국가들에게는 억제력이 통하지 않는다"며,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을 선언했었다. 그랬던 당신들이 MD가 본궤도에 오르고 북한의 핵무장이 가시화되자, "북한에도 억제는 통한다"고 말한다.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자 합리성과 이성을 중시한다는 미국의 자화상치고는 좀 씁쓸하지 않은가?

어쨌든 북한이 자살을 선택하지 않는 한 억제는 통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들이 1만개의 핵무기로도, 그렇게 자랑하는 MD로도 억제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한국의 반미, 아니 정확하게는 반부시 감정이다. 오늘날의 위기를 초래한 데에 당신들에게 엄중한 책임이 있다는 것을 모를 정도로 한국 국민들은 순진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북한이 핵실험이라는 무모하고도 위험한 선택을 한다면, 많은 한국인들은 북한에 분노를 표하는 것만큼이나 이러한 사태를 초래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부시 행정부에게도 반감을 갖게 될 것이다.

이제 이 무모하고도 위험천만한 게임을 끝내는 길은 당신들의 결단에 달려 있다. 부시 행정부의 최고위 관료가 평양을 찾아가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아마 최고위 관료가 평양에 간다면, 북한은 어두컴컴한 지하가 아니라 수만명이 모인 경기장에서 핵실험을 할 것이다. 손에 손에 카드를 들고 말이다.

그리고 김정일이 당신네 특사에게 말할 것이다.

"이게 우리 공화국의 처음이자 마지막 핵실험"이라고.

어떤가? 한번 해볼만한 일이 아닌가? 올브라이트도, 클린턴도 마무리짓지 못한 일을 끝내고, 북한의 핵무장도 막으며, 한국인에게 진정한 친구로 기억되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해볼만한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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