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투기 열풍과 한미 FTA
아파트 투기 열풍과 한미 FTA
  • 정지창교수
  • 승인 2006.11.14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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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신도시 개발 등 정부의 요란한 부동산 대책을 비웃듯 천정부지로 치솟는 아파트 값을 보면,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힘은 아파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빠져든다. 이른바 21세기 한국경제의 성장동력은 문화산업이나 IT(정보통신)산업이 아니라 아파트 투기와 사교육 시장인 것처럼 보인다.

기득권 수호의 철옹성

사실 요즘 평균적인 한국인이 가장 열심히 추구하는 인생의 목표는 수도권에 아파트를 장만하고 자식들에게 조기 과외를 시켜 명문대학에 보내는 것이다. 돈을 버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아파트 투기이고, 출세의 지름길이 일류대 입학이라는 사실을 모든 사람들이 경험으로 터득하고 있다.

최고급 아파트와 최고의 학원이 갖추어진 서울의 강남에 산다는 것 자체가 한국사회에서는 엄청난 특권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서울 주변에 우후죽순처럼 들어선 신도시를 포함하여 수도권의 고급 아파트 벨트에 사는 사람들은 한국의 정치와 행정, 사법, 언론 등 모든 분야의 핵심권력을 좌지우지하며 기득권을 수호하기 위해 보수의 철옹성을 구축하고 있다.

그러니 아파트 투기를 막기 위한 중과세 정책이나 과외를 막기 위한 각종 입시정책이 이들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쳐 실패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국토의 균형발전이라는 명분도 수도권의 기득권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지는 한, 실현 불가능한 꿈에 불과하다. 행정수도 이전이 관습법에 위배된다는 헌법재판소의 기상천외한 판결로 좌절된 것이 바로 그 증거이다.

조선왕조를 비롯한 역대 왕조들은 토지제도의 개혁을 핵심과제로 삼고 수많은 정책을 수립하고 새로운 제도를 시행했으나 한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정책과 제도가 잘못돼서가 아니라 당시의 핵심 권력층이 바로 대토지 소유자, 즉 지주들이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참여정부의 지방분권 정책이나 아파트 투기대책도 그 정책이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기득권 세력이 똘똘 뭉쳐 워낙 전방위적으로 반발하고 있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 결과 개혁에 반대하는 기득권 세력은 물론이고 개혁이 미흡하다고 느끼는 진보적 지식인과 소외계층까지 참여정부에 등을 돌리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궁여지책으로 한미 FTA에 매달리는 것은 아닌지

나는 혹시라도 대통령이 이러한 진퇴양난의 위기에서 한국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으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에 매달리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일부에서는 임기 중에 한 건 실적을 올리기 위해, 또는 너무 몰라서 용감하게 나서는 게 아니냐는 터무니없는 추측을 하지만 나는 그렇게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대통령으로서의 기득권까지 포기하며 사심없이 개혁을 추진하려 해도 무조건 반대만 하니, 외부에서 충격을 주는 방식으로 개혁을 밀어붙일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까? 아니면 주변의 참모들이 그런 식의 논리로 한미 FTA의 당위성을 설득했는지도 모른다.

북핵문제가 터지니까 전쟁불사론까지 외치던 세력이 아파트 투기를 막기 위해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발동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주장에는 펄쩍 뛰는 꼴이 우습다. 그리고 기득권 세력에 포위되어 사면초가의 궁지에 몰리자 엉뚱한 한미 FTA를 유일한 구원의 동아줄로 믿고 매달리는 참여정부의 모습이 서글프기만 하다. 
 


· 글쓴이 / 정지창
· 영남대학교 독문과 교수
· 전 민예총대구지회장
· 저서: <서사극 마당극 민족극>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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