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분석]정치연합의 꽃이 피려나?
[6.2 분석]정치연합의 꽃이 피려나?
  • 박치관 (정치기획사 트라이온 대표)
  • 승인 2010.06.11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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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앞서가고 정당이 따라가는 식 ‘이젠 안돼’
6.2 지방선거 투표 바로 전날 선배로부터 휴대폰 문자 한건을 받았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내용이어서 집에 들어와 인터넷을 열고 선거관련 기사에 댓글로 수차례 올렸다. ‘기도하는 심정으로 선거혁명에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깁니다!’ 여기에서 ‘선거혁명’이라 함은 꼭 투표해야 한다는 것과 아는 지인들한테 투표를 권하는 일일 터이다.

6.2지방선거는 집권 한나라당에 치명적인 타격이 되었고 일부 언론들에서도 ‘선거혁명’이라 말한다. 2010년 6.2선거혁명도 2002년 노무현을 당선시킨 대선처럼 투표 당일 오후에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범야권 서울시장 후보인 한명숙은 피 말리는 접전 끝에 근소한 표차로 낙선하였다. 많은 가능성과 아쉬움을 남기는 선거였다. 한나라당 차기 대권주자인 오세훈은 상처뿐인 영광을 안고 당선되었으며, ‘강남 특별시장’이란 오명까지 얻었다.

인천광역시의 송영길, 경상남도의 김두관, 강원도의 이광재, 경기도의 김상곤 교육감, 서울의 곽노현 교육감 당선자 모두 야권단일 후보의 이름으로 당선되었다. 가장 준비가 덜된 경기도의 국민참여당 유시민, 부산의 김정길마저 적지 않은 득표율을 보여주었다. 정치연합이 선거혁명을 일으킨 동력임이 확인된 것이다. 정치연합에 적극적이었던 민주노동당과, 그에 소극적이었던 진보신당의 성적표는 의미 있는 대비를 보여준다.

우리나라 정치사에서 성공적인 정치연합의 예를 들자면 1997년 DJP연합이다. 당시 우리나라 정당들은 주로 영남에 기반한 한나라당, 주로 호남에 기반한 평화민주당, 주로 충청도에 기반한 자민련으로 크게 나뉘어 있었다.

이때 정치 9단이라 불리는 김대중은 군사독재의 잔재인 김종필과 지역정치연합을 실현하여 한국정치사 최초로 ‘민주정부’를 수립하였고, 임기 중에는 남북정상회담까지 이끌어내었다. 김대중과 김종필은 집권기간 중에 사이가 틀어져서 김종필이 ‘연립’정부에서 빠져나왔고 김대중의 집권 후반기는 한나라당의 공세에 계속 수세에 밀렸다.

2002년 새천년민주당의 노무현 후보는 자당의 세 부족 때문에 국민통합21의 정몽준과 선거연합을 시도했다. 투표일 직전에 정몽준은 선거연합 파기를 선언했고 이것은 노무현 바람의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렇듯 정당은 자당의 힘만으로 집권하기 어려우면 연합을 시도한다. 내각제 국가에선 사실 연립정부가 비일비재하기도 한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는 새로운 정치를 준비해온 사람들이 문국현을 앞세워 창조한국당을 창당하여 대선을 치렀는데, 이때도 투표일 바로 직전까지 통합민주당의 정동영과 후보단일화로 논란을 벌였다. 결국 후보단일화는 이뤄지지 못했고 현재 창조한국당은 국민들 사이에 존재감을 거의 상실했다. 문국현은 그때 정동영에게 후보단일화 해주는 게 옳았던 것일까? 곰곰 생각해볼 일이 아닐 수 없다.

얼마 전 TV토론회에 나왔던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2012년 대선에 대해 언급하면서 ‘단독으로 집권할 수 있으면 하겠지만 그게 안 되면 다른 야당과 연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1야당의 대표로서 정치연합의 필요에 대해서 솔직하고 정확하게 말한 것으로 보인다.

6.2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정치지형이 크게 바뀔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70년대부터 자리 잡기 시작한 지역주의가 드디어 본격 와해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지역주의가 와해되면 정치연합도 퇴행적인 지역연합이 아니라 미래 지향의, 국민 각계각층의 이해관계가 보다 많이 반영되는 실질적인 연합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현재 정당정치 발전단계에서는 정치연합을 잘 하는 것이 정치선진화의 지름길이라 말할 수 있다.

이번 6.2지방선거는 정당, 시민연합단체의 정치연합을 바탕에 깔고 진행되었다. 연합의 한 방법은 반MB의 깃발 아래 모든 정치세력이 모이는 민주대연합론 이고, 다른 한 방법은 민주당을 제외한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시민사회, 지식인이 합치는 진보대연합론 이다.

민주대연합론 이 약간 보수적인 방법이라면 진보대연합론 은 너무 앞서가는 방법이다. 어쨌든 2010년 6.2지방선거는 민주대연합론 이 옳았음을 보여줬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연합인지 깊은 연구와 토론이 필요해 보인다.

정치연합 논의에서 제1야당인 민주당이 가장 중요한 주체인데 민주당은 덩치만 크지 정강정책도 불분명하고 정치기반도 편중되어 있는 문제점을 여전히 안고 있다. 야당들 가운데서 혁신이 가장 필요한 당이 민주당이다.

민주당의 혁신이 일어나야 하는데 혁신이 내부에서 일어나지 않으면 외부에서라도 연합의 조건으로써 강제가 들어가야 한다. 민주당에 혁신을 강제하는 작업에는 민주당의 내부 문제점을 잘 알고 있고 조직세도 갖추고 있는 국민참여당 의 역할이 기대된다.

6.2지방선거에서 야권의 선전이 확인되자마자 정치평론가들이 아연 바빠지기 시작했다. 앞만 보고 질주하는 MB에 대한 견제 가능성, 2010년 7월 보궐선거, 2012년 총선, 대선에서의 정권교체의 희망을 본 것이다.

그렇지만 2012년 있을 수 있는 정권교체가 DJP연합과 같은 낡은 행태가 반복되어서는 의미가 없고 그런 수준의 연합은 국민들의 지지도 기대할 수 없다. 정치연합의 원칙과 방법에 대한 논의가 절실해지는 대목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정치연합에 대한 논의에서 정당구조(특히 민주당)의 현대화는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정치란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고 삶의 희망을 주는 것이 되어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국민이 나라걱정을 더 많이 하고 국민이 앞서가고 정치가 뒤따라오는 그런 식이 아니었나 싶다. 앞으로는 정당들이 경쟁적으로 국민 각계각층의 생활을 지켜주고 향상시키는 일에 몰입하면 좋겠다. 그래서 정치인들이 유권자들로부터 ‘너희가 좋아서가 아니라 저들이 싫으니까 표를 준다’는 소리를 안 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앞으로 진행될 정치연합 논의에 큰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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