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명사람들>꿈의 궁전으로 놀러 오세요.
광명사람들>꿈의 궁전으로 놀러 오세요.
  • 강찬호기자
  • 승인 2003.11.05 11: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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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명사람들> 철산4동 임태신씨

꿈의 궁전으로 놀러 오세요

 

 

 

▲ 꿈의 궁전?에서 휴식의 한때를 즐기고 있는 임태신 씨

 

꿈의 궁전???

 

꿈의 궁전에는 경력 10년이 넘는 베테랑들이 모여 있다. 이름만큼이나 거창한 꿈의 궁전은 광명시청 본청 뒤편 주차장에 있다. 그리고 이곳에는 광명시청 청사와 의회 건물을 청소하는 청소원들이 있다.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이라고 부르는 것이 통상적일 것이다. 모두 다섯명이다. 한명을 제외하면 경력이 10년을 다 넘어섰다. 오랜 분은 올해로 18년째다. 재작년에 정년퇴직을 한 사람도 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것은 이제 너무도 당연한 상식. 그러나 예전에는 그러지 않았다. 그리고 아직도 고루한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은 존재한다. 꿈의 궁전에서 일하는 이들은 이 분야 전문가들이다. 적어도 시청에 누가 있고, 누가 어떤 면을 가지고 있는지. 그 뒷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야기 했다. “광명시장이 인사 정책을 펼 때 이들의 의견을 들어 반영을 한다면 일의 업무능력을 몰라도, 인간성 정도는 반영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청사를 청소하는 것과 관련한 제반 사항에 대해 이들이 가장 잘 알 것이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청소도구를 비치하거나, 어떤 경로를 통해 처리를 해야 하는 것인지 등. 그러나 아직도 이런 베테랑들의 영역이 존중이 되고 있지 못한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선입견이나 무지의 소치다. 이들은 이일에 대한 자긍심과 긍지를 가지고 일을 한다. 그래서 정년이 현행보다 연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도 가지고 있다.
서론이 길었다. 꿈의 궁전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이를, 푸른광명21실천협의회 김혜옥 간사의 소개로 만났다. 금주의 광명사람 임태신(철산4동, 49세)씨다.

 

오전 5시30분이면 출근한다.

 

처음엔 그곳에 가건물이 있는데 유심히 보지 않았다. 그래서 잘 몰랐다. 사물, 대상을 인식하는 것은 그것을 보려는 눈, 관심이 있을 때, 비로소 자세히 들어온다. 청사 뒤 주차장을 따라가다 보니 가건물이 나온다. 그리고 7,8평 규모의 작은 컨테이너안에 휴식 공간이 나타난다. 3,4명이 있다. 그리고 임씨는 반갑게 맞이해준다. 일회용 컵을 사용하지 않기 위해, 휴대용 컵을 가지고 다니는 기자는 이 컵을 내밀면서, 커피 대접을 받았다. 그리고 만남을 시작했다. 꿈의 궁전은 손님을 반갑게 맞이해준 것이다.
먼저 이들이 하는 일을 소개한다. 새벽 5시30분이면 출근을 한다. 오전9시 공무원들이 출근을 하기 전까지 청소를 마무리 한다. 그리고 아침을 먹는다. 아침과 점심은 이곳에서 해먹는데, 반찬은 집에서 가져오고, 밥만 하는 것이다. 당연히 식사당번은 교대로 한다. 해당 식사 당번은 조금 일찍 이곳으로 와서 식사 준비를 한다. 가족의 아침식사를 챙기지 못하기 때문에, 가족들의 아침식사는 전날 밤에 미리 준비를 해놓고 나온다고 한다. 그리고 휴식을 취하고 담당 구역별로 청소를 하게 된다.
퇴근시간은 공무원들 시간과 같다. 근무시간만을 놓고 보면, 상당히 많은 시간을 이곳 직장에서 보내게 된다. 한편 꿈의 궁전에도 운영비가 필요하다. 손님이라도 오게되면 접대를 해야하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 꿈의 궁전 운영비는 시청에서 나오는 폐지 등을 팔아 조달한다. 이날 커피 대접도 이렇게 해서 가능한 것이었다.

 

귀를 열고 들어야 할, 야사(野史)

 

이야기를 조금 바꿔보자. 어디나 정사(正史)와 야사(野史)가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야사를 재미있어 한다. 야사를 곤혹스러워 하는 이들은 어떤 선에서든, 그리고 그것이 크건 작건 간에 당대에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사회적 지위로 우위에 있다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크고 작은 권력은 도처에서 나타난다. 가족 안에서, 직장 안에서 그리고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 중앙과 지역 등... 그 영역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청사를 청소하는 이들은 공무원 사회에서는 사회적 약자 일 수 있다. 그래서 이들의 말이 잘 안 먹히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서두에 청소와 관련해서는 이들이 베테랑임을 언급했지만, 그런 것이 묵살이 되는 것이다. 속상하지만 그렇다고 강하게 항의할수도 없는 일이다. 이들의 신분상의 위치 때문이다. 이들은 일용직이다. 이미 사회적으로 임시직의 비율이 50%를 넘어 58%까지 이른다는 통계가 있는 것이 현실인 만큼, 그리 낯설 것도 아니다. 고용의 불안정은 합리적, 혹은 생산적 업무 개선의 통로까지 차단을 하는 현실을 낳고 있는 것이다.
비약일까. 또 있다. 시민들은 공무원들에 대한 기대가 있다. 공직자라는 상이다. 이들이 모범을 보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은 하루라도 신문이나 뉴스를 보면 알 수 있다. “분리수거 안한다. 자기 사무실에서 나온 것도 스스로 처리 안 한다.” “공무원 깨끗한 줄 알지만 그렇지도 않다.” “기본이 안 되어 있는 이들도 있다.” 공공건물이 금연구역으로 지정이 되어 있음에도 화장실에서 담배를 숨어 피는 이들도 있다. 과도기 현상일까. 아마 이런 혹독한 평가에 눈살을 찌푸릴 이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에 대해 권위적 발상으로 접근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그만 두면 될 것 아니야.’ ‘더럽지 않으면, 청소가 필요 없잖아.’ 그러나 이런 발상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자신이 서있는 자리만 살펴보면 될 것이다.
이들은 또 공익사업장에서 일하는 ‘공익’에 대해 주문을 한다. 바라는 것이 많다. 생활환경을 어지럽히는 행동 들 때문이다. 소양교육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도 일은 재밌다고 한다. 일의 양도 지금은 많이 나아진 것이라고 한다. 공공근로가 배치가 되어, 청사 마당을 청소하는 일은 덜게 되었다. 청사도 깨끗해져 한결 나아졌다고 한다. 그러나 예전에는 그 양이 많았다고 한다. 단적인 예가 청사 뒤에 쓰레기 소각장이 있었을 때, 쓰레기 소각일을 다했다고 한다. 쓰레기가 타다가 파편에 다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또 타고 나면 재를 정리해야 한다. 한 여름에 이런 일을 하는 것은 보통 힘든 게 아니란다.

 

광명에서 나고, 살고 있다.

 

임씨가 하는 일과 관련된 이야기가 길어졌다. 개인적인 이야기로 다가가 보자. 임씨는 광명 토박이다. 이곳에서 나고 자랐다. 아들과 딸에게도 이곳을 고향으로 심어주고 싶다고 한다. 남편의 고향이 경기 이북이다. 북부 민통선 지역인지, 접근이 어려운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부부에게 광명은 더 각별하다. 임씨는 광명의 산증인이다. 시가지가 개발되기 전의 정서를 아직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임씨는 그 시절이 지금보다 더 좋다고 한다. 임씨는 광명시가 개청이 되기 전에는 시흥군 서면 원노온사동 원노온사리에 살았다. 밭 메기, 논메기는 기본이다. 채를 가지고 미꾸라지를 잡으러 다니던 기억도 있다. 애기능에 가면 먹을 것이 많았다. 숲이 깊어 들어가기가 무섭기도 했다고 한다. 봄, 가을 소풍의 단골지역이 애기능이었다고 한다. 임씨는 온신초등학교 21회 졸업생이라고 한다. 집에서 가까운 앞산에 가면 취나물도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사라졌다. 지금은 외지인도 많이 들어와 있다. 비교적 시골인 이곳에도 주차문제로 난리를 겪기도 한다고 한다.

 

임씨는 지금 철산4동 도덕파크에 살고 있다. 예전에 살고 있던 노온사동은 이제 친정이 있는 곳이다. 이런 정서를 잊지 못해서 인지 임씨의 꿈은 시골에 내려가 자연과 함께 살고 싶다고 한다. 나물을 캐고, 콩으로 메주를 담고 싶어 한다. 얼마 전에도 강원도 한 지역을 보고 왔단다. 아들이 군대생활을 강원도에서 했는데, 면회차 방문한 곳이 눈에 들어왔다고 한다. 임씨는 지금도 틈이 나면 산에 다닌다. 나물을 캐기도 한다. 자신을 산에 버려도 잘살 것이라고 자신한다.

▲ 광명에서 나서 광명에 지금까지 살고 있다.

 

 

지나칠 수 없는 연애담, 세상에 공개되다.

 

시원시원하고 활달하다는 것이 임씨에 대해 기자가 받은 인상이다. 그럼 연애는 어땠을까. 연애담, 결혼담으로 가보자. 주도적으로 남자를 꾀어 찼거나, 아니면 능력있는 여성의 한 상징으로 여겨지는 연하 남자를 남편으로 선택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기대로 물음을 던졌다. 그런데 이외로 쑥스러워 한다. 그리고 동거동락하는 동료들도 처음 듣는 이야기란다. 이런.
임씨는 결혼을 스므살에 했다. 냄새가 난다. 혹 속도위반. 그러나 처음에는 부인한다. 그러나 진실은 감출 수 없는 법. 바로 들통이 났다. 사연은 이렇다.
이 즈음 임씨는 광명사거리 명성약국 근처에 있는 박스 만드는 공장에 경리로 근무했다. 당시 노온사동 집에서 회사까지 가려면 하루에 2~3차례 다니는 마이크로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임씨는 주로 걸어 다녔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의 남편은 회사 상사로 일했다. 남편 매형이 사장이었다. 임씨보다 10살이나 많은 남편이기에 별다른 감정 없이 그저 편한 아저씨로 따랐다. “아저씨, 아저씨” 그러나 이미 남편은 사전에 임씨에게 눈독을 들였나 보다. 그리고 사장인 매형과 남편이 각본을 미리 짠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가는 사건이 발생했다. 서울에 공장장이 입원하였는데, 봉투를 주면서 남편과 둘이서 면회를 다녀오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병문안을 간 남편이 병실에서 술을 먹더라는 것이다. 귀가 시간이 늦어지면, 마이크로 버스도 끊겨 난처한 상황인데, 임씨는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임씨 부친은 호랑이었다. 임씨는 호랑이 아버지 탓에 연애 근처도 못가 본 쑥맥이다. 동료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친다. “아버지 무서우면, 연애도 못한다.” 그렇게 귀가는 늦어지고, 역사는 이루어지게 된다. 그리고 이후 남편의 태도가 달라졌다. 집까지 걸어 다니지 말고, 버스를 이용하라는 것이다. 차비를 쥐어 주면서. 그렇게 시작된 인연은 동거로, 결혼으로 발전을 한다.

 

모나면 못한다.

 

임씨는 본래 낙천적인 사람이다. 신명도 많다. 낙천적이기에 지금의 일도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모나면 하지 못한다고 한다. 어려서는 여군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부친이 반대했다. 노래 좋아해서 기타를 배우고자 했지만, 그마저 여의치 않았다. 이런 이유로 임씨는 딸아이에게 피아노, 기타를 가르친다. 여군도 가라고 한다. 물론 농담이겠지만. 임씨는 평소에 화장을 하지 않는다. 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 자연미인, 그리고 그 가치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꾸며야 할 이유가 많은 사람은 그 만큼 감춰야 할 것도 많은 이들일 것이다.
결혼생활 30년. 남편생각에, 자녀 생각에 지내온 시간들이다. 이제 조금씩 몸이 안 좋아지고 한다. 그럴 때마다 지나 온 시간을 돌이켜보면, 자신을 너무도 돌보지 않고 살아온 것 같아, 아쉬움도 있다고 한다. 특별히 종교는 없지만, 절에 가면 편안해진다고 한다.
“따봉이다. 포용하고 이해한다. 어려운 사람 보면 돕는다. 인정이 많다. 마당발이다. 본으로 삼을만하다.” 임씨에 대한 동료들의 평이다. 광명의 산증인으로, 광명을 고향삼아 임씨는 꿈의 궁전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일을 하고 있다는 기쁨에 정년퇴직을 연장해서라도 일을 더하고 싶은 것이 지금의 욕심이다. 그리고 시골의 인심과 자연의 충만함을 느끼면서 인생의 남은 여정을 보내고 싶은 임씨의 소박한 꿈을 통해, 이 글을 읽는 모두가 꿈의 궁전을 마음속에 하나씩 간직했으면 하고 바램을 가져본다.

 

 

  

<2003. 11. 5 강찬호기자tellmec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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