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명사람들> 철산3동 군고구마 장사, 서도식 어르신
광명사람들> 철산3동 군고구마 장사, 서도식 어르신
  • 강찬호기자
  • 승인 2003.12.04 17:42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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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명사람들> 철산3동 군고구마 장사, 서도식 어르신

“그렇다고 도둑질 할 수는 없는 일”

 

 

 

 

 ▲겨울의 문턱, 군고구마가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겨울의 문턱으로 들어서는 때다. 퇴근 무렵 골목길을 지키고 서있는 군고구마가 서서히 그리워지는 때다. 그러나 작년과는 분위기가 조금 다른가 보다. 거리에 군고구마 장수가 적어졌다는 것이다. 경제가 어려워지고, 일터를 잃어버린 이들에게 군고구마통은 하나의 생계수단이다. 어렵다고 하는 올해 현실인데, 전년에 비해 군고구마통이 줄어들었음은 아직 본격적인 겨울철이 아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일치감치 군고마통을 들고 나온 어르신이 있다. 철산3동 서도식(71) 어르신이다. 시민회관에서 파보레 방면으로 인도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버스 정류장에서 그를 만날 수 있다.

 

 ▲ 떨어진 페지를 주워주는 서도식 어르신. 이들 사이의 우정이 겨울을 녹인다.

 

도심 한 구석, 어르신들의 세상을 만나다.

 

서 어르신이 장사 하는 곳을 지나는 할머니가 다가와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 “추워서 불이 좋다.”며 어느 새 군고구마통 불 옆으로 다가온다. 서 어르신, “좋기는 뭐가...” 이미 서 어르신은 이곳을 오가는 많은 어르신들과 인사를 나누는 사이다. 바로 옆 쌈지 공원으로 산책을 나오기도 하고, 약수를 뜨러 오는 어르신들이다.
폐지를 수레에 가득 실고 도로변을 따라 오르막길을 오르는 어르신도 서 어르신에게 인사를 건넨다. 잠시 수레가 멈추자, 실었던 폐지가 몇 개 길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러자 서 어르신이 얼른 달려가 실어준다. 그리고 수레를 끌던 어르신도 수레를 길가에 세워놓고, 잠시 쌈지 공원 벤치에서 휴식을 취한다. 도심 한 구석에 어르신들의 세상이 따로 존재한다. 그리고 그 세상은 나름대로 바쁘다.

 

오전 9시 준비...그리고 저녁11시까지..부부가 함께 일 한다.

 

서 어르신이 군고마통을 들고 나오는 시간은 오전 9시경이다. 그리고 저녁 11시 정도까지 일을 한다. 군고구마 값은 비싸졌는데, 장사는 잘 안된다. 하루 종일 팔아도 1만원 정도밖에 못 파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조금이라도 이문을 남기기 위해 군고구마는 영등포 영산시장에 나가서 사온다고 한다. 그곳이 도매시장이기 때문이다. 작년에 비해 군고구마 장사들이 눈에 많이 안 띠는 것도 서 어르신에게 관찰되는 풍경이다. 서 어르신은 부인과 함께 이 일을 한다.

 

최근에 일을 확장했다. 군고마통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붕어빵 장사를 시작했다. 부부가 함께 나눠서 일을 하는 것이다.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부인이 나온다. 붕어빵 장사 준비가 어느 정도 될 즈음, 서 어르신은 근처 집으로 가서 점심을 드신다고 한다. 이렇게 두 부부는 일을 나누고, 시간을 쪼개며 일을 한다.

 

도둑질 할 수는 없는 일...현실은 냉정하고.

 

사람들이 다니는 거리인지라, 단속의 대상이 되는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이 서 어르신의 입장이다. “시청 찾아가서 사정을 한다. 늙은이니까. 그렇다고 도둑질 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집 날리게 생겼는데....” 서 어르신이 이렇게 완곡하게 표현을 하는 데는 사정이 있다. 서 어르신은 오랜 기간 동안 학고방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98년부터 3,4년을 주차장을 보증금 없이 임대해서 운영을 해왔다. 불법건물이지만, 그래도 이 당시는 사정이 나았다. 그래서 무리가 되더라도, 집을 마련하고자 했다고 한다. 당시 ‘학고방 생활이 한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사설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았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주차장이 불법건물인지라, 철거가 되게 되면서, 그나마 낼 수 있었던 대출금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닥쳐버린 것이다. 그리고 카드를 이용하면서 ‘돌려막기’식으로 대출금을 처리했는데, 이 마저도 어려워지게 되었다. 카드를 남발하면서 발급을 하던 카드사들의 행태로 인해 개인 신용 불량자들이 급속하게 양산이 되면서, 개인 신용관리를 통합하는 조치가 취해지고, 이에 따라 돌려막기도 불가능해지게 된 것이다. 결국 서 어르신은 신용불량자 처지가 된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거리로 나와, 군고구마 장사를 하지만, 대출금 갚기에 급급한 실정이다.

 

 ▲ 시민운동장 아래 약수터에 터를 잡고 겨울을 훈훈하게 만드는...

 

40년간 떠도는 삶

 

서 어르신의 고향은 충북 영동이라고 한다. 6.25를 겪고, 18세 즈음 고향을 떠났다. 젊은 시절에 대해, 서 어르신은 자신의 삶에 대해서 ‘방탕생활’이라고 평한다. 여러 곳을 떠돌아 다녔다. 그래도 두려움은 없다고 한다. 한때는 부산에 머물기도 했는데, ‘오형제파’ 두목이었다고 한다. ‘대단하셨네요’ 했더니, 한 동네정도에서 활동을 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수원에 머물기도 했다. 목수였다. 목공소에서 일하기도 했고, 공사현장에서 일을 하는 건축목수 일도 했다. 목수 일을 하면서, 돈을 벌수도 있었을 텐데, 맘 좋아 남기지 못하고 일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69년도에 지금의 광명으로 들어왔다. 당시 광명사거리에 5층 건물(빌라)이 지어지고 있었는데, 발코니 공사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목수생활은 97년도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불의의 사고가 닥쳤다. 일 하다가 손을 다쳤다. 그리고 그 후 시작한 일이 주차장 임대 일이었다.

 

49살, 기독교 접하면서 안정적인 삶으로

 

한편 서 어르신에게도 인생의 전기가 찾아 온 계기가 있었다. 그렇게 떠돌던 생활도 49세때 기독교를 접하면서 조금은 안정이 된 것이다. “예수를 만나 새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안수집사도 되었다. 장로도 될 수 있지만, 3천만원이라는 돈이 없었다고 한다. 무슨 영문인지, 그 정도의 돈이 이것저것 필요하게 된다는 것이다. 서 어르신이 적을 두고 있는 교회는 우리나라 최대의 대형교회다.
세상을 떠도느라, 결혼도 늦게 했다. 31살. 2남1녀의 자녀를 두고 있다. 장남은 아직 결혼을 하지 못했고, 나머지 아들과 딸은 결혼을 한 상태다. 장남이 정확하게 무슨 일을 하고 있는 지는 잘 모르겠다고 한다. 잘 이해가 안 되는 말이기도 하지만, 어느 면에서 함께 살고 있는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이기도 하다.

아파트 가격이 치솟고, 부동산이 재산 증식의 제1수단이 되어버린 세상이다. 칠순의 나이에, 한을 풀기위해 마련한 집을 지키기 위해, 서 어르신은 거리로 나섰다. 집을 지키기에는 너무도 고달파 보이는 현실이다. 그리고 어르신이 마주하는 현실이 너무도 ‘현실적’이어서 마음이 아프다. 우리네 서민살이는 갈수록 고달프다.

 

 

  

<2003. 12. 4  강찬호기자 tellmec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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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여 2003-12-04 17:42:39
열심히 일하시는 모습... 마음이 한편 짠 하기도 하지만 일 하실 수 있다는 것이 참 다행입니다. 지금보다 더욱 건강하시고 언제 한 번 들러 보겠습니다. 그때 가면 훈훈한 정..나누어 주실거지요?

bo헤미안 2003-12-04 17:42:39
저도 올겨울에 고구마장사 할껀데...할아버지가 구우신 군고구마 사먹어보고싶네용.작년에 해봣는데..집없는 어르신들이 불쌘다고 오실때마다..하나씩 잡수라고 드렷더니만..아주좋아라 했고..저도 기분좋았던..고구마장사의 추억.. ㅡㅡ..짐 내가 뭔 소리를 하고있는지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