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명사람들>3년을 하루같이 발달장애아동을 돌봐온 자원봉사자 송록희씨
광명사람들>3년을 하루같이 발달장애아동을 돌봐온 자원봉사자 송록희씨
  • 조은주기자
  • 승인 2004.05.11 14: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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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을 하루같이 발달장애아동을 돌봐온 자원봉사자

3년을 하루같이 발달장애아동을 돌봐온 자원봉사자

철산8단지 송록희 씨를 찾아서

 

    

송록희씨(여,35세)를 좋은 사람으로 추천을 받고, 어떤 분일까 하는 궁금한 마음으로 댁을 방문하였다. 딩동! 하고 벨을 누른 후 잠시 후에 문을 열어주는 순간 “어!”하는 감탄사가 기자와 송록희씨의 입에서 동시에 나왔다.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인상인데… 서로가 서로에게 느끼는 묘한 잠깐의 갈등을 느끼며 집 안으로 들어섰다. (이야기 도중에 서로가 어디서 봤는지를 확인하고는 잠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깨끗하게 치워져 있는 마루에 아마도 책장을 가득 메우고 남은 책들일 것 같은 여러 권의 책이 마루에 가지런히 쌓여져 있었다.  
어디서 봤을까 하는 생각은 일단 접어두고 송록희씨의 자원봉사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처음엔 너무나 쑥스럽다며, 말문을 열지 못했는데, ‘좋은 사람들’ 이란 코너의 취지가 좋은 일을 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숨은 보석 같은 일들을 주변에 많이 알려 더 많은 자원활동을 이끌 수 도 있고, 훈훈한 이야기로 읽는 분들의 마음을 밝게 그리고 따뜻하게 해주는 것에 있으니 너무 쑥스러워 마시라는 이야기에 “그래요? 그럼 제 마음이 좀 편해 지네요” 하며 밝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발달장애아동을 위한 조기교실’에 3년째 자원봉사

    송록희씨는 현재 종합사회 복지관 ‘발달장애아동을 위한 조기교실’에 3년째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그 전에는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민가협)간사를 맡아 9년 동안 활동해 왔었다.  결혼 후 한결이(초등3년)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시기에 양육과 일 사이에서 갈등 하다가 민가협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이후 송록희씨는 내 가족과 내 아이만을 위해서 산다는 게 자꾸만 양심에 꺼려지고 미안한 마음이 들고 너무 이기적인 삶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 아이 10번 쓰다듬을 것 다른 아이 5번 내 아이 5번 이렇게 쓰다듬어 줄 수 있는 일을 찾게 되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오전 두시간이 별 하는 일 없이 후딱 지나가는 시간인데, 그 시간이라도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예전부터  약간의 관심이 있었던 발달장애아동을 위한 자원봉사를 해야겠다고 맘을 먹었다.
    이후 이화여대 평생교육원에서 진행되는 발달장애아동을 위한 지도자 교육과정을 들으며 자원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처음 무작정 종합사회복지관을 찾아가서 자원봉사를 신청하면서 “매일매일 올께요.”라고 했더니 복지관 담당자가 “매일매일 온다는 분치고 계속 오시는 경우를 못 봤습니다. 욕심내지 마시고 일주일에 한 번만 오시죠.”하는 소리에 “조금 부끄럽더라구요. 그래서 욕심 부리지 말고 천천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그렇게 시작하게 되어서 벌써 3년이 되었네요.” 요즘은 일주일에 하루는 부모역할교육을 듣고 특별한 일이 없을 경우는 매일 복지관에 가고 있다.

베푸는 것 보다는 배워오는 것이 많다고

    일을 하던 중 프로그램을 진행하시던 선생님의 갑작스런 빈자리를 채워서 오전 프로그램 교사로 근무를 하기도 했었다. 그 일은 보수도 나오고 책임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송록희씨는 그 일을 과감히 내려놓고 자원봉사활동으로 돌아갔다. 그 이유는 아이들이 최상의 교육을 가장 적절한 선생님으로부터 받아야 하는데, 아직은 부족한 내가 좀 물러서야 아이들에게 더 좋은 선생님이 올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 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현재까지 자원봉사만을 해오고 있다. 그리고 그 때의 경험은 송록희씨와 아이들과 더욱 가깝게 해 주는 계기가 되었다. 같은 시간에 일도 하고 보수도 받는 것에 대해 만족할 수도 있었을 텐데,정말로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깊구나 하는 마음이 잔잔하게 전달되어졌다.

      방학식을 하는 날이면 한결이와 동네 아이들은 복지관으로 가서 놀이도구 청소도 함께 하고 놀이도 함께 한다. 그 중 한 아이는 거길 다녀오고 나서 '난 커서 특수학급 선생님이 될 꺼야' 하는 꿈을 키우기도 하고 함께 놀이를 하면서 장애에 대한 편견도 지울 수 있어서 오히려 송록희씨는 그곳에서 베푸는 것 보다는 배워오는 것이 많다고 말한다.
     “복지관을 다녀오면 마음이 맑은 아이들과 함께해서인지 내 영혼까지 맑아지는 것 같아서 정말 이 일에 감사해요.”

오후에는 책 읽어주는 아줌마로 변신

    송록희씨의 하루 일과는 오전 오후 할 것 없이 바쁘기만 하다.오전엔 복지관을 다녀오고 오후엔 아파트 문을 활짝 열고 동네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는 아줌마로 변신한다. 아이가 하나라 혼자서 꽁꽁 가둬져서 자라는 게 안타까워서 현관문을 활짝 열고 동네 아이들이 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했는데, 이제는 참새들이 방앗간 드나 들듯이 하고 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학교를 다녀온 아이들이 제 집 드나들듯이 자유롭다. 매 주 수요일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함께 느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는 날이다. 한결이 1학년 때부터 했으니 이것도 3년째 이다.
    처음엔 “재밌어요.”, “좋아요.” “ 그 아이가 나빠요.” 정도의 느낌밖에 표현하지 못하던 아이들이 이젠 제법 자기의 느낌을 구체적으로 표현 할 수 있게 되었단다. 다 큰 아이에게 어떻게 책 읽어줄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보통은 아기들이 잠잘 때 잠깐 일어주는 정도 인데… “다 컸지만 그래도 엄마가 읽어주는 책을 좋아해요. 마치 아기로 돌아간듯한 편안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나도 아이들이 어릴 땐 그래도 자주 책을 읽어주는 편이었는데 이제는 아이들에게 책 읽어준 때가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집에 가서  한 번 꼭 읽어줘 봐야겠다는 결심을 한 번 다져본다.

     인터뷰를 하는 중간에도 학교를 다녀온 아이들이 계속해서 들어온다. 교육비를 받고 하는 일도 아닌데, 집안에 아이들이 항상 들락거리면 좀 귀찮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세요? 했더니 “전 아이들의 소리가 시끄럽게 들리지가 않아요.
    그리고 한결이가 아이들과 함께 생활 하면서 점점 밝아지는 모습을 확인하면서 너무 즐겁고 행복하구요. 아마 아이들의 재잘 대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렸다거나 한결이의 변화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면 계속 못했을 것 같아요..”

민주화운동 통해 인간답게 산다는 것의 의미 깨달아

    그동안 살면서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던 시기는 언제 라고 보세요?라고 물었다.
    송록희씨는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일학년을 채 마치기도 전에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건국대 사건(전국 반외세 반독재 애국학생 투쟁연합 발대식)으로 구속된 적이 있었다. 그 이후에도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두 번의 투옥생활을 겪으며 사람이 사람으로서 인간답게 산다는 것, 그리고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에 대해서 스스로 모르는 것이 너무 많고 그것 때문에 참 바보같이 당한 경험들이 민가협 활동을 한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지금도 역시 그 때 당시에 느꼈던 인권의 문제가 언제나 가슴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고 복지관 봉사활동이나 책 읽는 아줌마로서의 일도 그 때 정립되었던 가치관의 연속이라고 생각한다.
    “장애인은 장애인으로서의 인권이 있고 아이들은 아이들로서의 인권이 존재하고  모두가 참 소중한 부분이죠. 똘레랑스(용인)!죠” 하고 웃는다. 솔직히 나는 그 웃음에 답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나와 다름 그리고 우리와 다름에 대해 인정하고 용인하는 자세가 부끄러울 만큼 부족함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나의 화두인 이 말로 인해 그저 얼굴만 붉어질 뿐이었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은 누구나 발달장애아동 봉사할 수 있어

    다시 정신을 차리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간다.
    “만약에 자원봉사를 하고 싶은데 발달장애등에 대한 지식이 없는 경우도 할 일이 있을까요?”
    “물론이죠. 선생님이 프로그램을 진행하시면서 아이의 특성과 함께 글씨 쓸 때 손을 잡아주거나 기어 다니기를 할 때 손을 펴주고 하는 구체적인 사항을 부탁하기 때문에 누구라도 아이들을 키워본 사람이라면, 아니 그렇지 않더라도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있다면 누구라도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자원봉사 하시는 분들 중에 참 좋은 분들이 많아요. 그 분들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뿌듯해지고 부자가 된듯한 기분이 들죠. 기사가 나간 후에 많은 분들이 오시면 좋겠어요.
    일주일에 하루 하시는 분들도 계시니까 부담 없이 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더 어려운 아이들과 함께 하고파....

    이곳 복지관 아이들은 신체 지체가 아닌 발달장애 어린이들이 대부분이다. 4살에서 7, 8살 까지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신체 발달 훈련, 언어, 낮은 수준의 인지 발달 훈련 등을 진행한다.
    취학 할 나이가 되면 증상이 가벼운 아이들은 특수학급이 있는 일반학교로 입학을 하게 되고, 증상이 무거운 아이들은 다른 지역에 있는 특수학교로 가기 위해 가족 모두가 이사를 가거나 아니면 기숙 시설이 되어있는 지방 학교로 보내기도 한다.
    앞으로 꿈이 뭐에요? 어떤 일을 하고 싶으세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 문제에 대해 예전부터 참 많이 생각하고 아직도 계속 생각하는 듯한 모습으로 말문을 열었다.
    “장애아동에 대한 조금 더 깊은 이해를 위해 공부를 더 하고 싶은데 대학원 학비가 만만치 않아서 엄두가 나지 않아요. 남들은 자원봉사 할 정도면 먹고 사는 것 걱정 없으니까 하는 거지 라고 말하는데, 저희 사는 게 그리 넉넉하지는 않거든요. 공부하는 문제는 나중에 꿈으로 남겨두고 있어요.
    그리고 복지관에 오는 아이들은 그래도 그나마 교육비를 낼 수 있는 아이들이고, 부모의 보호를 받고 있는 아이들이죠.  앞으로 기회가 되면 복지관에 조차 올 수 없는 소외되고 힘든 가정의 장애아동을 돌보고 싶어요.  그냥 빨래만이라도 해주고 올 수 있어도 행복할 것 같아요.  그것이 앞으로의 제 꿈이에요”

송록희씨가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자원활동을 하고 있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그리고 소외된 아이들을 위해 지금 보다 조금 더 큰 한결이와 함께 직접 그 집을 찾아가는 모습도 눈앞에 그려진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눈에 그려진다는 것은 아마도 송록희씨의 꿈이 오랜 고민의 끝에 달린 열매와 같아서 인 것 같다.

 송록희씨의 꿈은 반드시 이루어 질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많은 사람들이 같은 꿈을 꾸어주고 있고, 이 기사를 보는 모든 애독자들도 역시 같은 꿈을 꾸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송록희씨 만나서 정말 반가왔습니다. 나중에 꼭 다시 뵙자구요!!!

<조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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