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어느 날, 나주 심향사에 머물다.
8월 어느 날, 나주 심향사에 머물다.
  • 김윤옥 시민기자
  • 승인 2011.09.15 09: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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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시민기자의 여행기.

나주 심향사로 길을 나섰다.

오후5시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배꼽시계는 배가 고프다고 울려 댄다. 며칠 전 하던 일을 그만 두고 잠시 쉴 겸 훌쩍 떠난 여행지에서 매일 5시에 저녁을 먹은 것이 습관이 되었다. 보통 여행하면 경치 좋은 곳에서 푹 쉬거나 유명한 관광지를 보는 거지만 내가 선택 것은 절에서 잠시 쉬고 오는 것이었다. 불교 신자도 아니고,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으로 절은 선택한 것도 아닌 그냥, 절이 주는 편안함 때문이라고 하면 될까? 암튼 아는 거사님께 부탁을 해 나주에 있는 ‘심향사’라는 절을 소개 받았고, 무작정 기차표를 예약했다.

내가 만나왔던 사람들, 나를 둘러싸고 있던 환경, 무엇을 향해 어디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지 모르는 내 인생에서 한 발자국 물러서 있고 싶었다. 그리고 진짜 뭘 원하는 지 내 자신과 마주치고 싶었다. 20대 후반의 오춘기가 시작돼 버린 걸까? 입고 가는 옷 외에 티셔츠 1장, 바지 2개, 속옷, 칫솔, 치약, 비누, 여행용 스킨로션, 썬 크림, 손수건 그리고 필통, 책2권, 이어폰, 핸드폰과 충전기, 지갑. ‘더 소박하고 가볍게 가자. 여행에서 짐은 정말 딱 짐일 뿐이다.’

아침 7시 영등포역에 도착했다. 티켓을 확인해 보는데 아뿔사. 출발지가 용산역인게 아닌가. 아~도대체 정신은 어디에 두고 온 걸까? 예매하면서 용산역이라고 확인하고 다이어리에까지 적어 놨는데 무의식적으로 영등포로 와버렸다. 여행의 시작부터가 절망과 좌절의 시작이 될 줄이야. 부랴부랴 지하철을 타고 용산역으로 갔다. 하지만 기차는 이미 떠나버렸다.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이 태클은 뭐지?’ 출발지를 잘못 확인한 것을 탓할 대상을 찾고 있는 내 모습에 더 서글프다. 다행이도 처음 예약한 기차보다는 2시간 늦게 도착하지만 환승해서 갈 수 있는 기차가 있었다. ‘그래, 술 마시다 안주로 삼을 여행 에피소드가 생겼다’고 위안을 삼고 있다.

도착한 나주 역사 안 편의점에서 봉지 사탕을 하나 샀다. 여행객을 받아 준 주지 스님께 감사함을 표하고 싶어서다. 절이 산 속 깊은 곳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심향사’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사이 평지에 있는 절이었다. 마침, 점심 공양시간이라 종무소에서 일하시는 보살님의 안내를 받아 절에서 일하시는 다른 분들과 점심을 함께 했다. 어디서 왔는지? 불교 신자인지? 어떻게 절에 오게 되었는지? 나이는 몇 살인지? 몇 가지 질문을 받고 대답을 하며 인사를 나눴다. 내가 3박 4일 동안 묵을 방을 안내 받고는 깜짝 놀랐다. 나무로 된 이불장에 깨끗한 흰 벽지. 거기에 화장실까지 따로 있었다. ‘심향사’를 소개 시켜 주신 광명에 계신 거사님께 더욱 감사드렸다. 짐을 풀고 잠시 누웠다 일어나려고 했는데 짐과 함께 도시 생활의 고단함도 내려놓아 버려서 스르륵 잠이 들었다. 그렇게 오후 5시, 저녁 공양을 알리는 목탁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심향사에 머물다.

저녁식사 시간 후 주지스님이 손금을 봐주셨는데 역마살이 끼여서 가고 싶은 곳은 꼭 가야되는 사람이라고, 잔주름이 많은 걸 보니 근심 걱정이 많다는 말도 덧붙였다. 어찌나 잘 맞추시던지 스님께 돗자리 하나 사드려야겠다. 스님께서 내일 새벽에 예불을 올리겠냐고도 물으셨다. “네, 몇 시에 일어나면 되죠?”라고 물어보니 ‘기독교 신자라면서 불상에다 절하면 귀신을 섬기는 거 아니냐. 나이롱 기독교 신자가 아니냐.’라고 말하며 웃으셨다. “예수께서 절에 오셨어도 아마 예를 갖춰 절을 하셨을 꺼예요.”라고 대답했다. ‘타종교와 타종교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바로 자신의 종교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된다고 믿는다.’ 이렇게 말하면 유일신 사상의 기독교에서 나이롱 기독교인되나? 웃으며 넘겼다.

새벽 4시 20분 핸드폰 알람 소리. 외부 환경 변화에 바로 적응 하는 인간 본성을 괴로워 하며 일어났다. 인자한 얼굴상이지만 아직도 불상을 보면 깜짝 깜짝 놀란다. 주지스님과 키 큰스님께서 불경을 읊기 시작하셨다. 대웅전에서 한 번 예불을 드리고, 그 밑에 작은 법당에서 예불을 한 번 더 드렸는데 작은 법당에서 나는 108배를 드렸다. 종교를 떠나 ‘절’이라는 행위가 주는 의미는 크다. 우리는 하루에 몇 번이나 자신의 몸을 낮추며 살까? 어른을 만나 고개와 허리를 숙이는 인사 외에는 많지 않다. 절은 나를 낮추는 행위이며 동시에 몸을 내려놓으며, 마음도 함께 내려놓게 된다. 광명으로 돌아가면 하루18번 아니 단 8번이라도 꾸준히 절을 해봐야지라고 다짐을 해본다. -제발.
태어나 처음 올린 새벽 예불을 끝낸 뒤 아침 공양을 했다. 아무리 피곤해도 낮잠은 자지 않으려고 했는데 방에 들어서자마자 장 속 이불을 꺼냈다. 새벽에 힘들게 드린 예불이 도로 아미타불이 되어 버리는 순간이지만 푹신한 이불 속에서 행복했다. 세탁기를 사용하러 보살님이 오셨는데도 일어나지 못했다. 마치 누군가 다리를 꽁꽁 묶어 놓은 느낌에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은데 108배로 평소에 안 쓰는 근육을 쓴 게 무리였다. 다시 기운을 내 몸을 추슬러 공양간으로 향했다. 이제 설거지는 제법 익숙해졌다. 자취 경력 6년의 설거지 솜씨라며 보살님께 자랑을 할 정도다. 오늘은 거사님과 법당 청소를 하려고 한다. 작은 법당으로는 청소기를 들고 가서 청소기를 돌렸고, 대웅전에서는 비치 된 큰 청소기를 돌렸다.

큰 청소기를 보면서 “우와! 이 청소기 대빵 좋은거 같아요”라고 내가 말하자, 거사님께서는 “청소를 잘해야 좋은 청소기지, 몸집만 크다고 좋은 게 아니여”라고 대답하셨다. 큰 청소기에 코드를 꽂았는데... 어, 정말 몸집만 컸지 힘은 별로 없었다. ‘눈으로 보이는 것만 이 전부라고 판단하는 게 어디 이럴 때 뿐이겠는 가...’
깨끗해진 대웅전을 보며 뿌듯해하며 공양간으로 돌아왔다.

청소가 끝난 후 엄청난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공양간에서 쓰는 플라스틱 그릇을 삶고, 닦는 일이었다. 절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내가 심향사에 쉬러 온 걸로 알고 계셔서 새벽 예불과 공양시간, 법당 청소 외에는 딱히 정해 놓은 일은 없었다. 멀리서 온 젊은 처자에 대한 배려로 할 일이 생겨도 도와 달라는 말을 먼저 하시지는 않으셨다. 나 스스로 밥값은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그릇 삶기와 닦기를 도왔다. 두 보살님과 함께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그릇을 삶고, 닦고 옮기기 시작했다. 플라스틱 그릇을 삶기 위해 락스을 넣고 물을 팔팔 끓이는데 일이 벌어졌다. 그릇이 반질반질 깨끗해지기는 하나 노랗게 변하는 것이다. 이렇게 작업이 중단 되나 싶어 속으로는 솔직히 환호하기도 했다. 하지만 보살님께서는 불을 줄이고 짧게 삶는 것으로 작업 방법을 변경 한 후 일을 계속하기로 결정했다. 플라스틱을 물에 삶는 게 걱정이 되긴 했지만, 깨끗한 그릇에 공양을 줄 수 있다는 기쁨만으로 입꼬리가 올라 가 있는 보살님의 얼굴을 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 가사 중 ‘인간이 인간답게 사회가 평등하게 노동이 아름답게 민중이 주인 되게’ 가 있는데, 노동이 아름답게 되는 건 어떤 모습일지 어렴풋이 오버랩 되었다. 함께한 사람들 덕분에 일이 무사히 끝났다며 몇 번이나 칭찬 해주시고, 절에 오는 사람들이 깨끗한 그릇에 공양을 할 수 있다며 기뻐하던 보살님의 모습. 그리고 일한 뒤 먹어서 더 맛있었던 저녁 공양. 오늘 밥값은 제대로 했다.

처음 마음은 절에만 있으려고 한 거였는데 갑자기 먼 곳까지 온 김에 나주에 유명한 곳을 가보고 싶어졌다. 내일은 새벽 예불 끝나고 아침 공양 후 나들이를 다녀와야겠다. 스마트폰으로 검색해보니 야외 드라마 촬영세트장도 있고 금성목사라는 곳도 있었다. 드라마 촬영세트장 근처에는 배를 타는 곳도 있다고 하니 무조건 가봐야겠다. 무작정 혼자 떠나는 여행만큼 신나는 일도 없다. 물론 두려움, 걱정, 외로움도 포함 되어 있지만 아무튼 좋은 느낌만은 분명하다.

저녁 8시 반, 광명은 광란의 밤일 테지만 여기는 새와 나무, 돌들도 잠드는 시간이다. 또 다시 새벽이 밝았다. 세 번째 새벽 예불 시간, 108배에 요령이 생겼다. 한번에 1에서부터 108까지 한꺼번에 세는 게 아니라 1에서 30까지, 1에서 20까지, 다시 1에서 25까지, 1에서 20까지, 1에서 5까지 1에서 8까지 이렇게 끊어서 숫자를 세는 것이다. 그러면 ‘몇 개만 더 하면 된다’ 라는 생각으로 좀 더 훨씬 쉽게 108배를 할 수 있다.

보살님께 저녁 공양시간 오후 5시까지 돌아오지 못하면 밖에서 밥을 먹고, 늦어도 6시까지는 꼭 돌아올 거라고 말씀을 드리고 절을 나왔다. 하지만 문제는 돈이다. 나주에 내려올 때 지갑에 현금 만원과 신용카드만 들고 왔는데 이미 택시비로 4천원을 써서 6천원 밖에는 없다. 버스와 점심은 카드로 해결하면 되지만 배 값과 입장료가 걱정이다. 가면 무슨 해결책이 나올겠지라는 태평한 생각으로 우선 걷기 시작했다. 미리 여행의 경로를 정하지는 않았다. 우선 걷다가 볼 만한 것이 있는 곳에 머무르고, 그 곳에서 만나는 사람에게 이야기를 들을 생각이었다. 우선 시내로 나가는 길을 물었다.

시내로 가는 길에 천주교가 박해받던 시절 순교한 순직자들을 기리는 성당이 있어 안으로 들어갔다. ‘조선명탐정-각시투구꽃의 비밀’이란 영화를 보면 천주교인 주인공이 조선시대의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노예 제도를 인간 평등사상으로 비판하며, 계급 차별의 부당함을 폭로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노예는 평생 자기 밭 한 평 가지지 못하고, 평생 소처럼 일만하고, 자기 자식 역시 또 다시 노예로 키워야 하는 삶.
조선시대와 비교해서 과연 21세기 현실은 얼마나 많이 달라졌을까? 의사 아버지의 자식은 커서 의사가 되고, 사장 아버지는 아들에게 회사를 물려주고, 심지어 요즘에는 자식에 조카까지 특채로 취직 시켜 주는 시대. 양반과 노예 대신 우리 사회는 돈에 의한 계급 사회가 아닌가.

그 다음으로 찾은 곳은 ‘금성목사’라는 곳이었다. 금성은 나주의 옛 명칭이었다. ‘목’은 ‘특별시’, ‘도’처럼 행정구역 단위를 뜻하는 말이다. 안내에 따르면 금성(나주)은 고려성종(전체 12목), 고려현종(전체 8목), 조선시대(전체 20목)에 이르기까지 모두 목으로 지정 받을 정도로 지리적 요충지였다고 한다. 그 이유는 영산강을 통해 국가에서 세금으로 거둬드린 곡식과 물자들을 운반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4대강 사업의 내용도 듣게 되었는데 현재 나주를 흐르는 영산강 상류에는 댐이 설치되어 있고, 바다와 강의 경계에 하구둑이 설치돼 있어 이미 강의 위 아래를 막아 강물 흐름이 많지 않은데 거기에 4대강 사업까지 진행되고 있는 현실이라며 흐르지 않은 물은 썩기 마련인데 물고기 로봇으로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 있을지에 우려했다. 수심을 깊게 만든다고 해도 물에 흐름에 따라 토사가 계속 운반 되어 쌓일텐데...라는 말도 덧붙였다. 또한, 속도전으로 4대강 사업이 진행되면서 문화재 사전 조사가 형식적이었다는 것과 삽시간에 파헤쳐진 강의 생태계 파괴에 대한 책임은 어떻게 질 것인가에 대한 걱정이 담겨 있었다. 마음 편히 쉬려 나주가지 온 건데 어딜 가도 마음 편히 살기는 힘든 대한민국이다.


버스를 타고 30분쯤 영화 촬영 세트장에 도착했다. 너무 더워서 모든 게 다 녹아버릴 것 같다. 평일이라 구경 온 사람도 없어서 혼자 거닐다가 배를 타러 갔다. 3명이상 배를 타야 배가 출발하는데 다행이 가족끼리 여행 온 사람들이 있어 배를 탈 수 있었다. 할머니께서 “아가씨, 혼자 여행 왔어요?, 여기 과일 좀 먹어요.”라고 물으셨다. 아직도 어르신들은 젊은 여자 혼자 여행 하는 걸 보면 걱정을 많이 해주신다. 혼자 여행의 묘미는 바로 이렇게 낮선 사람들과의 만남이다. 어린 아이들도 있어서 뭐 줄 게 없나 가방을 뒤지다가 촬영세트장에서 받은 천연비누를 발견했다. 외국에 나갈 때는 우리나라 동전이나 기념될 만한 것을 챙겨서 고마운 사람을 만나면 꼭 감사의 인사를 전했는데...나주에서는 천연비누로 할머니께 감사함을 전했다.

나는 유독 배타는 것을 좋아한다. 배 위에서 느끼는 강바람과 물가에 사는 풀잎의 흔들림이 참 좋다. 그래서 사고 싶은 것을 적을 때 차보다 먼저 보트를 적곤 했다. 짧지만 오늘 나들이는 이 정도로 마무리하고 절로 돌아가야겠다. 시골이라 버스가 자주 없어 이번에 놓치면 한 시간을 넘게 기다려야한다. 광명에 올라가면 버스 기다리면서 늦게 온다고 투덜거리지 않아야겠다. 버스정류장 옆 편의점에서 그렇게 먹고 싶었던 과자를 집어 들었다. 그런데 냉장고 속 시원한 맥주가 날 유혹한다. 아! 버스정류장에서 마시는 맥주 한 잔. 카악! 속까지 시원하다. 내가 가지고 온 신용카드는 나주에서 교통카드로 쓸 수 없었고, 방금 마신 맥주 값은 내일 교통비였는데 다 썼으니 내일은 절 뒷산에 올라가봐야겠다.
저녁 공양 전에 돌아 와서 절에서 사용하는 방석과 이불을 벗겨 세탁하고, 청소기를 돌렸다. 살림 잘 하는 보살님은 일을 하시면서 부처님이 기뻐하실 것이라며 소녀처럼 좋아하신다. 난 방석이 정말 무겁단 생각과 그래도 절이 더 깨끗해지니 기분은 좋다.

밤에는 눕자마자 잠들어 버렸다. 새벽에 다리와 허리가 아파 몇 번 깨긴 했으나 새벽 예불 시간에 맞춰 잘 일어났다. 오늘이 마지막 새벽 예불이다. 부처님도 날 아쉬워하시려나? 예불의 마지막 부분에서 스님은 매일 사람들의 주소와 이름을 쭈욱 읊으신다. 아마 누군가를 위해 기도를 드리시는 거겠지. 하루도 빠짐없이 누군가를 위해 저렇게 기도드리면 부처님뿐만 아니라 온 우주가 그 마음을 들어 줄 것 같다. 물론 기도보단 실천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오늘은 나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마음을 보탰다.

새벽 예불을 마치고, 아침 공양을 하자마자 산으로 향했다. 108배 때문에 다리에 알이 배여 산을 오르는 걸음이 괴로움이다. 그래도 산을 오를 때 목까지 숨이 차오르고 벅차오르는 느낌이 참 좋다. 가파른 산을 오르는데 30분정도 만에 정상 근처에 있는 정자까지 왔다. 정자 의자에 대자로 누웠다. 따뜻한 햇살, 살랑거리는 바람, 편안한 누울 자리, 모든 걸 누구의 허락 없이 산에 오는 사람이면 누구나 똑같이 누릴 수 있다. 바로 내가 산을 좋아 하는 또 다른 이유다.

올해 겨울 4박 5일로 참여한 ‘깨달음의 장’이라는 정토회의 수련프로그램이 생각났다. 20여명의 팀원이 둥그렇게 앉은 후 각자의 앞에 자신이 들고 온 가방을 놓는다. 수행자(진행자)분께서 물으셨다. “그 가방은 누구의 것입니까?” 모두 자기 가방을 보고는 “저의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수행자가 “왜 그것이 당신이 것입니까?” 참가자 전원은 자기가 돈을 주고 샀거나, 다른 사람에게 받아서 소유권이 자신에게 있으니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질문의 답에 대한 힌트는 “그럼, 태양은 누구의 것입니까? 흐르는 강물은 누구의 것입니까?”였다. 세상 어느 것 내 것이라 말 할 수 있는 것은 없으니 욕심을 버리고, 빌려 쓰는 감사한 마음과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어 쓰며 살아야 되지 않겠냐는 내용이었다. 가진 게 많은 사람일수록 자기 것을 내려놓기가 아마 더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깨달음의 장에서 내려놓았던 그 순간 찾아 왔던 마음의 평온을 잊을 수 없다.

마지막 점심 공양을 하고, 영화의 한 장면처럼 기차 출발 2분전에 나주역에 도착했다. 3박4일, 얼마나 깊은 성찰과 나 자신과의 마주침이 있었는지는 확실히 대답할 수는 없다. 다만 내가 어딜 가든 세상사를 피할 수는 없으니 이젠 즐기는 법을 찾아야겠다. 잠시 훌쩍 어디론가 떠날 수는 있어도 여행의 끝은 항상 일상이다.

다시 일상으로 여행 온 토요일 오후. 자, 광명에서 즐기자.


광명시 소하동에는 “금강정사”라는 절이 있다. 신도님들께서 직접 만들어 손맛이 일품인 대추자와 식혜 등을 부담 없는 가격(2천원내외)에 마실 수 있고, 좋은 경치도 구경할 수 있다. 또한 주말에는 템플스테이도 진행한다.

9월, 천고마비의 계절. 몸 대신 마음을 살찌게 해보자.

넘어지고 깨어지더라도
한 조각
심장만 남더라도
부등켜안고
가야만 하는 겨레가 있다.
통일 세상 우리가 만들어요.

지나는 길에 우연히 본 벽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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