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않을게! 진실을 인양하라!!”
“잊지 않을게! 진실을 인양하라!!”
  • 양영희(하중초 교사, '혁신학교 보내도될까요' 공동저
  • 승인 2015.02.15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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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실종자 수습을 위한 세월호 인양 및 진상규명 촉구를 위한 팽목항 문화제
2월14일 진도 팽목항에서는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 세월호 인양 촉구를 위한 문화제가 열렸다. 유가족들은 안산에서 진도 팽목항까지 도보를 통해 이날 현장에 도착했다.

1월 26일 안산에서 출발한 세월호 피해자 가족들은 19박 20일, 500킬로미터를 걷고 또 걸었다. 낮에는 걷고 밤에는 침을 맞고 파스를 붙이며 쓰러질 듯 힘들어도 눈물과 슬픔이 그들을 앞세워 걷게 했다. 골반이 무너질 듯 아픔이 와도 세월호 실종자가족들은 움직이기 힘든 몸을 자식들 얼굴을 생각하며 결박하듯 서로를 이어 끌며 걸었다고 한다. 비통함에 빠져있는 그들과 함께 걷는 이들이 곳곳에 있었다. 그 응원이 넘어질 듯 아슬한 세월호 가족들에게 힘이 되어 주었다. 14일엔 팽목항에서 세월호 가족들과 마지막 도보행진을 함께 한 사람들이 모여 ‘온전한 실종자 수습을 위한 세월호 인양 및 진상규명 촉구를 위한 문화제’를 열었다.

서울에서 버스로 출발한 우리 팀은 5시간이 걸려 도보 행진을 하고 있는 가족들을 만나 2시간 정도를 걸어 팽목항에 도착했다. 남도는 봄날처럼 온화했지만 팽목항의 바람은 차가웠다. 걸으며 벗었던 외투를 모두들 다시 입었다. 자원봉사자들이 곳곳에서 세월호 가족들과 도보 행진팀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계셨다. 분향소에도 길게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팽목항의 실종자 가족들이 머무는 숙소만 봐도 마음이 아파왔다. 그분들이 널어놓은 빨래가 바닷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왜 배가 침몰했는지 아무것도 밝혀지진 않은 채, 아직 9명은 차디찬 바다에서 300일이 넘게 나오고 있지 못한 상태다. 가족이 외출했다 조금만 늦어져도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참사 후 시간이 길어질수록 가족들은 쓰러지며 절망해 가는데 사람들은 다시 일상을 살며 기억의 한편으로 밀어 넣기도 한다. 유족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사람들에게서 잊혀지는 일이라고 했다. 국가가 어떤 것도 해주지 못할 때 그들 곁으로 다가간 건 바로 따뜻한 마음을 실천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문화제에서 모든 세월호 가족들은 이렇게 당부했다. “끝까지 같이 해 주실 거죠?”


피해자 가족 발언에서 ‘아이를 착하게 키운 못난 아버지, 어른 말 잘 들으라고 한 아버지를 둔 탓에 아들이 죽게 되었다’며 단원고 학생 아버님은 통곡했다. 다른 부모님은 ‘아침부터 밤까지 자식들 위해 일한 죄 밖에 없는데 왜 이런 일이 생겨야하냐’고 묻기도 했다. 이날 세월호가 있는 바다까지 다녀오신 은화 어머님은 말한다.

"오늘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오늘이 305일째입니다. 제 딸이, 아직 50미터 아래 바다에 있어요. 저도 그 물 안에 들어가고 싶었어요. 그 물이 너무 추울 것 같아서, 우리 딸 꺼내줘야 할 것 같아서…그런데 저만 왔습니다. 딸하고 같이 못 오고 저만 돌아왔습니다. 아파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엉엉 울다가만 돌아왔습니다."

은화 어머님은 분향소에 아이 영정 사진이라도 놓을 수 있게 배를 인양해 달라고 통곡했다. 세상에 이런 걸 소원이라고 말하는 나라도 있나? 화가 치밀었다. 국가의 기능이 마비된 나라의 백성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단원고 2학년 학생으로 수학 여행길에 올랐던 아이들이 19살이 되면서 주민등록증을 받게 되었다. 살아서 나온 27명의 그 친구들은 일상의 모든 변화마다 바다 속에서 죽어간 친구들을 떠올린다. 주민증도 그래서 슬픈 일이 되어버렸다. 그 아이들이 친구들을 생각하며 팽목항에 함께 앉아 있었다. 세월호 참사는 살아서 나온 아이들에게도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게도 그걸 지켜보는 국민모두에게도 고통이다. 결코 바로 잡을 수 없는 슬픔이다.


세월호 가족들은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해 달라고 온 몸으로 외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세월호 진실이 규명되어야 하고 그것은 선체인양밖엔 답이 없는 것이다. 배 안에 모든 증거들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속엔 아직 9명의 실종자가 가족의 품을 그리워하며 기다리고 있다.

절규와 통곡이 가득한 팽목항에서 3000여명의 참가자들은 눈물만 훔치며 세월호 가족들의 슬픔을 가슴으로 이어 받았다. 팽목항 등대로 가는 길엔 세월호 피해자들에게 쓴 노란 리본과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의 이름이 새긴 노란깃발이 아이들의 절규처럼 펄럭인다. 어둠이 내리자 팽목항 등대는 누군가의 영혼처럼 반짝 반짝 슬픔을 전한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육성기록을 모은 책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손에 들고 우리는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를 향해 걸었다. ‘씨팔! 이것이 나라야?’ 하고 분노하던 유가족이 팽목항에 모인 노란 물결의 시민들을 보는 순간 마음이 녹았다던 그 이야기에 세월호 참사의 해결방법이 있다는 생각을 하며.

2015.2.14.오후 5시. 팽목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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