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비 소식
반가운 비 소식
  • 양영희(교육잡지 벗 이사, 민들레 편집위원)
  • 승인 2017.06.07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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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골편지

오래 농부의 손에서 핸드폰이 놓여나지 못했다.
임을 기다리듯 시간마다 체크하는 비 소식은 땅속까지 완전히 말라버린 극심한 가뭄으로 식물들이 타들어갈 때까지 들려오지 않았다. 가뭄에 머리를 감거나 샤워를 하는 일에도 죄짓는 마음이 들었다. 차가 더러워도 세차도 하지 않았다. 비가 오지 않는 일이 나의 잘못과는 상관없는 일이지만 온 산하가 목마름으로 지쳐 가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물 쓰는 일이 죄스럽다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 드디어 비가 왔다. 비님이 오셨다. 탑골 마을의 농부들은 기꺼이 반가운 비를 맞아가며 행복해 했다. 꽃모종도 옮기고 밭작물들이 다시 생생해지는 표정도 읽으며 마을이 살아나고 있다. 동네 어르신 표현대로 ‘매번 팔십 노인네 눈물만큼만 오더라.’는 비가 이번에는 이틀째 그치지 않고 있다. 가뭄해갈에 필요한 만큼 주룩주룩 쏟아지진 않았어도 잔잔하게 오래 내리며 우리 마음까지 시원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때마다 적당히 내려주었다면 이토록 고맙고 감사할까 싶을 정도다. 뭐든 귀해야 그 진가를 아는 걸까? 나라면 땡볕에서 두 달 이상을 물 없이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이슬같은 비가 고추며 옥수수며 장미꽃잎을 고르게 어루만지며 생명을 지킨 수고를 치하하는 듯하다. 사람의 힘으로는 농사의 반도 지을 수 없다. 나머지는 하늘의 소관이다. 비도 바람도 햇살도 농부는 그저 기다릴 뿐이다. 하늘을 백번도 더 올려다보며 짓는 농사다.

그런데 사실 사람은 나무를 자르고 핵발전소를 짓고 탄소를 마구 배출하며 하늘의 질서에 교란을 일으켰다. 그 결과 어느 섬은 아예 사라지고 있으며 우리는 점점 사막화되어 가고 있다. 우리의 농사와 먹거리 습관은 전통에 기반하고 있으나 거기에 맞는 날씨는 이제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 조상들이 착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기다리면 오던 비는 그 어떤 주술을 쓰더라도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지금처럼 우리가 마구 무한한 욕망과 자본의 폭압에 둘러싸여 폭력적으로 산다면 말이다.

올해 사다 심은 목련과 몇몇 나무들은 이미 생명을 잃었다. 우리에게 생명을 가져다주는 것들이 먼저 죽고, 하나씩 오래 버티지 못하는 것들부터 쓰러질지도 모른다. 그걸 알리려고 비는 아주 오래 참았다 내리는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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