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심당의 삶과 건강(4)_인류의 진화와 절약 유전자
한심당의 삶과 건강(4)_인류의 진화와 절약 유전자
  • 이승봉 칼럼
  • 승인 2019.02.23 15: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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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심당의 삶과 건강(4)

한심당의 삶과 건강(4)

인류의 진화와 절약 유전자

인류가 지구에 출현한 시기는 대략 300만년 경으로 추정됩니다. 고생인류는 아프리카 남부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류(類)의 출현으로 시작됩니다. 이들은 인간과 극히 유사한 원숭이나 원숭이에 유사한 인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두개골의 용적(容積)이 고릴라보다 컸으며 직립으로 걸었습니다.

현생 인류는 후기 홍적세로 불리는 약 1만 년 전에 출현 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들은 사냥과 채집 생활을 하였습니다. 여름에는 천막을 쳤고, 겨울에는 오두막을 혹은 붙박이 집을 짓기도 할 정도로 도구 사용에 능해졌습니다. 현생인류의 두개골, 팔 다리, 체격 등은 지금의 인간과 거의 같았고, 두뇌의 작용도 고도로 발달했습니다. 이들은 후기 구석기시대의 문화를 만들었으며, 후에 여러 인종으로 갈라져 나갔습니다.

▲인류의 진화 과정(서울신문 2012. 4. 23)

 


이처럼 인간은 오랜 동안의 진화 과정을 통해 오늘날의 모습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크게 달라진 모습은 무엇일까요?

그 의문에 대해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크루즈대의 애드리엔 질만(Adrienne Zihlman) 교수팀은 인간과 가장 가까운 영장류인 보노보 유인원과의 비교를 통해 단서를 찾아내었습니다.

보노보는 하루의 대부분을 나무 위에서 보내며 과일과 잎을 따 먹고 지내는 유인원입니다. 집단생활을 하고, 배란기가 아닌 평소에도 성행위를 즐기며, 선사시대의 인류처럼 모계사회를 이루고 사는 점 등 인간과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침팬지와 마찬가지로 유전자의 98%가 인간과 일치한다고 합니다.

이 연구를 통해 밝혀진 것은 인간이 보노보에 비해 근육은 줄고, 지방은 늘고, 피부는 얇아졌다는 것입니다. 이런 차이는 초기 인류가 직립보행을 하면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시 이리저리 떠돌며 수렵, 채집 생활을 하던 초기 인류는 굶어죽지 않기 위해 몸 안에 지방을 저장해 놓아야만 했습니다. 특히 여성들은 자녀에게 젖을 먹이기 위해 지방을 더 많이 저장해 놓을 필요가 있었죠. 초기 인류의 경우 체지방률이 여자는 36%(보노보 4%), 남자는 20%(보노보 거의 0%)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나무에서 내려온 인간에게 상반신 근육은 필요가 없어졌고 대신 지방의 저장이 중요해 졌다는 것입니다.

또 인간의 얇은 피부는 아마도 땀을 흘리는 능력을 얻은 때와 같은 시기에 생겨났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초기 인류는 나무 그늘을 벗어났기 때문에 체온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땀을 흘리는 능력을 발전시키게 되었고 이것이 얇은 피부를 갖게 된 배경이라는 것입니다.

지방의 저장이 더욱 필요해 진 이유로는 인간의 뇌가 커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커진 뇌가 활동하려면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데 뇌는 골격근에 비해 16배나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고 합니다. 인간은 그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해 더 많은 체지방을 필요로 하였을 것입니다.

인간이 지방을 축적하는 방향으로 유전자가 만들어진 이유는 지방이 탄수화물이나 단백질에 비해 2배 이상 높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방의 축적은 먹을 게 부족했던 초기 인류의 생존력을 높여주고 커다란 뇌를 유지시킴으로 인류가 만물의 영장이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온 셈입니다.

굶주림으로부터 생존하기 위한 또 하나의 기제는 에너지를 절약하도록 진화 하였다는 것입니다. 굶주림을 대비하여 잉여 에너지가 들어오면 항상 지방으로 바꾸어 저장합니다. 오랜 진화의 과정에서 인간의 몸은 에너지를 최대한 절약하도록 만들어져 왔습니다.

<내가 우울한 건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때문이야>란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면서 신경인류학을 공부한 박한선 선생이 쓴 책입니다.
저자는 식욕과 비만에 대해 신경인류학적 해석을 내놓습니다. 다이어트를 결심하지만 늘 실패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인간에게 먹을 것이 풍족해진 것은 겨우 100년 남짓, 그보다 훨씬 긴 99.9%의 시간 동안 인간은 굶주림과 싸워왔다. 그 덕분에 달고 기름진 것을 매우 좋아하도록 유전자에 각인이 되었다. 왜냐하면 달거나 기름진 음식은 모두 양질의 에너지원이기 때문이다. 맛있다고 여기는 이유는 진짜 맛있다는 미학적 즐거움을 주는 게 아니라, 먹어보면 단위 무게에 비해서 많은 에너지를 함유하고 있어서 영양가가 풍부한 음식이라는 신호를 갖고 있는 덕분이다.

두 번째는 절약 유전자 가설이다. 인간은 음식을 먹고 나면 행여 에너지가 남으면 그걸 다른 곳에 쓰지 않고, 다음 음식이 언제 들어올지 모르니 그걸 잘 저장하도록 세팅해 놓았다. 칼로리 잉여가 있으면 지방으로 저장을 하는 것이다. 마치 곰이 가을에 열심히 먹어서 지방으로 축적을 하고 나서 겨울잠을 자러 가듯, 인간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먹은 에너지를 다 사용하지 않고 절약하고 잉여를 어떻게든 만들어 지방을 만든다. 일에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살을 빼려고 하면 잘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밥을 적게 먹어도 살이 안 빠지는 건, 스트레스 상황을 원시인일 때 굶주림이 지속되는 겨울 시즌과 동일한 위기 상태로 인식한 덕분이다. 적게 먹어도 지방을 만드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게 된다.>

그러니 비만은 진화의 부작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굶주림에 시달리던 인간은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먹고, 섭취한 음식을 즉시 지방으로 저장하는 능력을 유전자에 새겼던 것입니다. 먹을 기회가 생기면 가능한 한 많이 먹는 습성이 체질화 된 것이죠.

하지만 먹을거리가 풍부한 요즘도 이 유전자는 여전히 작동합니다. 인간은 필요 이상으로 넘치게 먹고, 또 영양분을 끊임없이 저장합니다. 게다가 기술의 발달로 신체활동은 과거 보다 훨씬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니 현대 인간들에게 비만은 필연적으로 오게 되는 것이죠. 인간의 몸은 살이 빠지면 필요한 열량도 줄어들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게다가 체중이 감소할 때면 입맛을 돋우는 호르몬 분비가 상승합니다. 다이어트가 어려운 이유가 바로 이러한 것들에 기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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