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7. 맞벌이에 멍드는 양성평등
신년기획> 7. 맞벌이에 멍드는 양성평등
  • 양정현
  • 승인 2003.02.25 14:33
  • 댓글 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7. 맞벌이에 멍드는 양성평등

양 정현        

 

직장과 보육의 경계에서 고통받는 여성들

 

철산동에 살며 학습지 교사로 일하는이모씨는작년 2개월의 출산휴가가 끝난 직후부터 불안이 시작됐다.
아이를 맡길 곳이 없었다. 아이를 데리고 직장에 출근 할 수는 없는 노릇. 첫돌도 넘지 않은 젖먹이를 돌봐줄 만한 보육시설이 없었던 것이다.
아이를 돌봐줄 아주머니를 구했다. 한달 50여만원이 아주머니 월급으로 지출됐다. 그나마 다른 아주머니들보다 적은 돈을 요구해 부담이 덜했다. 경제적인 비용은 제쳐놓더라도 일단 마음이 놓였다.

몇 개월 뒤 불안은 또 다시 재현됐다. 아주머니가 다른 지역으로 이사가는 바람에 일을 그만두게 된 것. 후임자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척추디스크로 활동이 편치 않은 친정어머니에게 할 수 없이 아이를 부탁했다.
주말마다 친정을 방문해 잠깐 동안 아이 곁에 머무르는 것도 아이에게나, 엄마에게나 또 다른 상처였다.
더구나 보육문제 이외에 참기 힘든 고통은 집안청소와 빨래 등 집안 일로 쉴 틈이 없다. 밤 10시쯤 들어온 남편의 저녁상까지 차려주고 나면 피로가 몰려오지만 자정이 지나서야 가까스로 잠자리에 든다. 하루하루 직장과 집안 일로 전쟁을 치르면서 어설픈 '슈퍼 아줌마' 노릇하기도 벅찬 이씨에게 처녀시절의 꿈은 기억조차 가물가물해졌다.

3년전 광명으로 이사온 16개월 된 아들과 3살 된 딸을 키우는 최모씨.
그런데 이사 오면서부터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다. 보육에 대한 대책을 전혀 세우지 못하고 이사온 것이 화근이었다. 보육시설에 대한 정보를 찾으려 해도 쉽게 구할 수 없었고, 시립어린이집은 대기자가 많아 입학은 하늘에 별 따기였다. 그렇다고 민간어린이집은 그 차이가 천차만별이고 보육료가 시립에 비해 높아 믿고 맡길만한 곳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맞벌이 부부의 비애가 보육문제로 극대화되었던 것이다. 결국 최모씨는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만다.

 보육문제로 더 이상 신경쓸수가 없어 불만이 있더라도 그나마 괜찮다고 소문난 민간어린이집에 맡겼다. 그만큼 높은 보육료를 부담해야 했다. 그렇게 한 달이 흘렀나?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가만 보니 보육문제의 심각성이 장난이 아니었다. 아이를 볼모로 돈벌이에 혈안된 보육시설장, 보육철학은 둘째 치고 프로그램의 내용도 형편없을뿐더러 학부모가 참여할 공간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그런데 광명시도 가관이었다. 위탁체에 맡기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관리 감독이 소홀할 뿐만 아니라, 보육정책을 책임져야할 지방보육위원회가 단 한차례도 열리지 않은 해도 있었고, 위원들의 구성을 보면 관련 시설장과 공무원이 대부분이었다. 보육에 관한 한 광명시 뿐만아니라 대한민국은 절망이었다.

 

보육은 여성 사회참여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광명지역 보육수요는 개발계획으로 인구유입이 예상되고 있어 해마다 증가할 예정이지만 보육시설과 질적수준은 이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특히 2세 이하의 영아 보육시설이나 시간연장형 보육시설, 직장 보육시설은 그 수가 크게 부족, 여성 사회참여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일하는 여성에게 있어 육아 문제는 누구에게나 심각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0-2세 영아보육은 육아의 사각지대로 꼽히고 있다.
출산휴가가 끝나자마자 젖먹이를 안고 동동거리는 모습은 이제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자녀의 대부분이 친인척들에게 맡겨지는 상태에서 '보육문제는 노인문제'라는 말이 더 이상 우스개로만 들리지 않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지난해 연말을 기준해 광명지역 보육시설 수는 192개. 보육대상 아동수는 5,084명이다.보육시설 평균 아동수는 26명으로 경기도 평균치 22명을 약간 넘어서고 있다.
시립보육시설 13개, 민간보육시설은 80개이다. 개인가정에서 소규모로 보육을 담당하는 곳이 98개로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 가운데 만 2살까지의 영아를 전담하는 보육시설의 경우 시립보육시설 이외에 민간시설은 소수에 불과하다.
더구나 첫돌 이후만 가능한데 대부분 영아는 꺼리는 것이 관례이고 시립보육시설도 편법으로 운영되고 있는현실이다.
밤 10시30분까지 운영되는 시간연장형 보육시설도 부족하기는 마찬가지. 현재 민간 어린이집 10여곳 이내에서 보육이 가능하다.
직장생활의 특성상 노동시간이 길고 야근이 비일비재한 우리나라 현실에서 여성이 직장일에 동등하게 참여하기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하게 되어 있다.

 

@ 양성평등은 구호로만 그칠 것인가.
보육에 가사노동에 멍드는 주부의 고민은 심각하다.

 

 보육의 공공성 확보는 정치인의 립서비스

 

대통령, 국회의원, 지방선거때마다 "여성들이 마음껏 일할 수 있도록 보육시설을 확충하겠다"고 밝힌다. 하지만 구체적인 실천방안은 없어 여성들은 정치인의 립서비스로 받아들인다.
광명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보육의 공공성 확보를 위해 정책의 우선 순위로 놓거나 구체적인 대책을 세우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부족한 보육시설 확충을 위해서는 보육의 공공성을 확립해야 한다. 실제로 192개 광명지역 보육시설 가운데 93%는 민간보육시설이다.
광명여성의 전화 강은숙 회장은 보육의 공공성 확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보육사업의 민간 의존성 심화는 보육서비스 질을 현상유지 하거나 보호자들의 과중한 경제부담 을 만든다".
"시설의 증설도 중요하지만 더욱 필요한 것은 보육문제를 개인의 부담으로만 여기는 것에서 벗어나 정부와 시예산의 확대와 차등보육로 도입으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을 늘리는 것이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려하는 민간어린이시설의 모원장은 "보육시설간 과당 경쟁으로 정원조차 제대로 충원되지 않는 곳도 있다"며 "시에서 적극적인 보육시설 평가인증제를 도입, 우수한 보육시설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현재 정확히 광명시가 보육예산을 얼마나 지원하고 있는지는 파악하기 어렵다.
다만 정부와 자치단체가 보육에 사용되는 총비용 중 지원하는 예산은 28%로 미국 41%, 일본 54%, 스웨덴 83%에 비해 턱없이 낮다.

 

@ 부천 보육정보센터의 홈페이지. 보육에 대한 정보를 시민에게 제공한다.

 

가까운 곳에 보육료가 저렴하고 수준 높은 시립 어린이집이 있습니다. 귀여운 자녀들을 시립 어린이집에 맡기시고 엄마들은 마음놓고 일하세요!'

 

보육문제를 개인문제로 돌리지 않고 현실적인 여건에서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한 주변시의 몇가지 사례가 있다.
2002년 3월 과천에서는, 보육위원회 회의 전면 공개, 시립보육시설의 운영위원회 의무화, 보육발전 기본계획 수립 의무화 등의 내용을 담은 보육조례 개정안이 시민서명과 발의에 이어 지방의회에서 무수정 통과되어 최소한의 자치단체가 할 수 있는 법적근거를 마련했다.
이외에도 부천시의 경우는 보육정보센터를 운영하며 보육에 관한 정보를 시민이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하였다. 보육정보를 주변사람들에게 입에서 입으로 전해듣는 광명시의 경우와는 대조적이다.
안양시의 경우도 올해부터 보육인력은행을 운영하며 양질의 보육교사를 지원할 예정으로 있다.
하루 9시간 일하는 여성의 경우 가사노동시간인 2시간50분을 더하면 일에 매달리는 시간이 무려 11시간50분이나 된다.
또한여성부자료에 의하면 시부모 38.4%, 친정부모 23.2% 등을 통해 자녀의 보육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맞벌이 여성은 가사노동과 보육의 일방적 책임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린다. 맞벌이 여성에게 양성평등은 허울좋은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하루빨리 광명시의 여성들이 시청앞에 다음과 같은 현수막이 내걸리기를 소원한다.
"가까운 곳에 보육료가 저렴하고 수준 높은 시립 어린이집이 있습니다. 귀여운 자녀들을 시립 어린이집에 맡기시고 엄마들은 마음놓고 일하세요!"

 

 <광명시민신문 양정현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3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조명선 2003-02-25 14:33:28
엄마가 되어 보니..이론이 아니라 현실로 알게 되었어요.열악한 보육현실 앞에 엄마.아빠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고 나서 가슴아파하는 일 밖에 없음을. 보육환경에 대한 기사를 다루어 주어 감사합니다.나아가 더욱 관심을 가지고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고민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허걱 2003-02-25 14:33:28
너무나 공감이 갑니다. 자녀보육에 관해서는 절망입니다. 개혁 대통령님 육아문제 해결해주세요

대안 2003-02-25 14:33:28
절망만 하지 말고 대안을 만들어가세요. 공적 차원에서 진행할 다뤄어야 하겠지만, 광명지역 공동육아가 3월 부터 시작됩니다. 관심있는 분은 모집 기사를 보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