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갑신년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2004! 갑신년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 편집인
  • 승인 2003.12.31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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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갑신년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광명시민시민신문 독자 여러분!
참으로 힘겨웠던 한 해가 역사 저편으로 물러가고 새 희망의 새해가 밝아 왔습니다.
2004! 갑신년에는 가슴속에 품은 뜻을 모두 이루시길 기원드립니다.

2004년도에는 우리 경제가 되 살아나
매일 매일의 삶이 희망으로 가득차길 기원합니다.

2004년 총선에서는 정말 나라와 민족을 염려하는 이들이 당선되어서 우리 민족사 새장을 열게 되기 바랍니다.

새해에 광명시민신문은독자들의 성원에 누가 되지 않도록더욱 노력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위의 신년휘호는 고려말기에 민중들의 고통을 온몸으로 함께하며 살았던 원감국사의 오도송(悟道頌)의 두 번째 구절입니다.
세상이 어지러워도 사랑과 정의를 향한 뜻은 어떤 시련에도 흔들림 없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보았습니다. 

원감국사(圓鑑國師) 충지는 몽고족의 침입과 원나라의 내정간섭으로 이어지는 격동기인 고려후기 사회의 시대적 아픔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살다 간 장흥출신의 승려입니다. 국사는 고종13년(1226) 전남 장흥에서 탄생했으며, 속명은 위원개(魏元凱), 법명은 밀암(宓庵), 법호는 충지(沖止), 시호는 원감(圓鑑)입니다.

국사는 유년시절부터 천재 소리를 들었다고합니다. 9세에 취학(就學)하여 17세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했고, 19세에 예부시(禮部試)에 장원으로 뽑혔습니다.

국사는 29세에 불문에 출가했는데, 그 동기는 전쟁과 민란 그리고 질병 등으로 민중들의 고귀한 생명이 허무하게 사라져 가는 시대적 혼돈 속에서 겪었던 생에 대한 고뇌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국사는 승려가 된 후 41세가 될 때까지는 두타(頭陀)의 행각(行脚)을 하였으며, 삶도 죽음도 없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용맹 정진을 거듭했습니다.
지리산 상무주암에서 홀로 선정에 들매 그 모습이 마치 허수아비 같이 미동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얼굴에는 거미줄이 덮였고 무릎에는 새발자국이 찍힐 정도였다고 전해집니다.
김해 감로사에 주석하던 어느 날 한 선덕(禪德)이 찾아왔습니다. 그 선덕이 국사에게 물었습니다.“무엇이 부처님입니까?” 이 물음을 듣고 국사는 크게 깨달았고 이 오도송을 남겼습니다.

春日花開桂苑中(춘일화개계원중)
暗香不動小林風(암향부동소림풍)
今朝果熟沾甘露(금조과숙첨감로)
無限人天一味同(무한인천일미동)

따스한 봄날  계원(桂苑) 안에 꽃이 활짝 피었는데,
그윽한 향기(暗香)는 소림의 선풍(선풍)에도 흔들리지 않네.
오늘 아침 잘익은 과일은 감로에 젖고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하늘과 같아 한 가지 맛이로세.

 

 

  

<2003. 12. 31  이승봉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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