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코 '지옥의 문' 안으로 들어가려는가?
기어코 '지옥의 문' 안으로 들어가려는가?
  • 정욱식대표
  • 승인 2004.06.22 19: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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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코 '지옥의 문' 안으로 들어가려는가?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나고 말았다. 정부와 여당이 추가파병을 확정하자마자 이라크 저항세력이 한국인을 납치해 파병을 철회하지 않으면 참수하겠다는 끔찍한 경고를 보내온 것이다.

월요일 출근길에 접한 장면은 악몽 그 자체이다. 피랍된 김선일씨는 "나에게도 생명은 소중하다"며, "살려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특히 한국이 군대를 이라크에 보낸 것이 이러한 사태를 초래했다며 즉각 한국군의 철수를 요청했다.

그러나 정부는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은 재건을 위한 것으로 원칙에 변함이 없다"며 김선일씨의 호소와 이라크 저항세력의 경고를 일축하고 말았다. 특히 정부는 "지난 17일 납치됐기 때문에 시점상 반드시 한국군의 파병과 관련이 있다고 볼 수만은 없다"며 파병과의 무관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참으로 황당하고도 무책임한 논리가 아닐 수 없다. 알 자르카위로 알려진 납치범들이 "한국정부와 한국인에게 메시지를 보낸다"며 "우리는 한국군이 이 땅에서 철군하기를 원한다. 더이상 이라크에 군대를 보내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이 한국인의 머리를 보낼 것이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알 자지라 방송을 통해 전세계에 타전되었는데, 파병 결정과 무관할 수도 있다는 궁색한 논리를 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무고한 시민을 납치해 생명을 위협하는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옳던 그르던 이라크 저항세력은 미국 주도의 동맹군 철수와 친미정권 수립 저지를 달성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는 실정이고, 그들의 과녁에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지지하고 군대까지 파견한 한국도 예외일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라는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위와 같은 사태를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추가파병 결정을 강행했다는 점이다. 오무전기 노동자 피살 사건을 비롯해 이미 작년 말부터 한국인 역시 이라크 저항세력의 표적이 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고, 이라크 저항세력은 한국이 군대를 보내면 한국도 공격 대상으로 삼겠다는 경고를 잇따라 내놓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우리는 평화재건을 위해 간다"든지, "이라크인들은 우리를 환영한다"든지, "안전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등의 안일하고도 무책임한 주장을 하면서 결국 오늘날과 같은 참담하고도 어이없는 사태를 초래하고 만 것이다.

우리가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이번 사태를 통해 한국이 침략전쟁의 당사자인 미국, 영국에 이어 세계 3위의 파병 국가라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많은 국가들이 파병 대열에서 벗어나 자국 국민의 안전을 도모하고 있는 것과 극명하게 대조되면서, 한국이 이라크 저항세력 및 반미테러집단의 주된 공격 목표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예고한다.

이라크 내에서 반한 감정이 높아지고 있다는 소식이나, 최근 파병 국가들에 대한 이라크 저항세력 및 알 카에다의 공격 대상 및 지역이 미국과 그 동조국으로 맞춰지고 있다는 것은 이와 같은 우려가 결코 지나치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더구나 9·11 테러 때 알 카에다가 한국의 미국 시설도 항공기를 이용한 공격 대상으로 고려했다는 미국 의회의 9·11진상조사위원회의 발표는, 한국도 대형테러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려되는 것은 마치 이번 사태를 계기로 추가파병을 철회하거나 유보하는 것이 테러위협에 굴복하는 것이 될 수 있다는 정부와 국회의 시각이다. 그러나 파병 방침을 철회하는 것은 '테러 위협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과 군인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근본적인 테러 방지책'이다.

정부 스스로 테러의 원인을 제공하면서 강구하는 테러 대책으로는 절대로 국민과 군인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 이는 무분별한 '테러와의 전쟁'을 벌여 오히려 미국은 물론이고 인류사회에 테러 공포를 확산시키고 있는 부시 행정부의 오류를 반복하는 것과 다름 아닌 것이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난번처럼 이번에도 무사히 풀려날 것이라는 요행을 바라면서 '추가파병'이라는 고집을 꺾지 않을 것인지, 아니면 즉각 파병 방침을 철회한다고 발표해 김선일씨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칠 것인지 정부와 국회는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다.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기 전에, 아랍연맹의 사무총장인 아무르 모우사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지옥의 문을 여는 것이 될 것"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리고 그의 말은 차츰 현실로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이제 한국도 부시 행정부가 열어버린 '지옥의 문' 앞에 와 있다. 아무런 명분도 실익도 없는 파병을 강행함으로써 국민들을 지옥으로 떠밀어버릴 것인지, 아니면 지금이라도 파병 결정을 철회하고 군대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이라크를 돕는 길을 찾을 것인지, 중대한 갈림길에 서게 된 것이다.

정욱식/2004년 6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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