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시장 떡볶이 할머니 송창순씨
새마을시장 떡볶이 할머니 송창순씨
  • 이재길기자
  • 승인 2004.10.18 15:56
  •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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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순 씨(78세)를 인터뷰하는 일은 매우 어려웠다. 극구 사양하는 할머니의 마음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었다. “나는 그저 밥 먹기 위해 떡볶이 판 일 외에 남에게 자랑할 만한 일을 한 일이 없어요. 창피하게 무슨 인터뷰예요. 아저씨 어서 가세요. 예”
그저 겸손히 손을 내저으며, "부끄럽다“며 거절하는 송창순 씨의 어색한 몸동작엔 스산한 가을의 고독보다 더 깊은 인생의 우수가 담겨있다. 그야말로 한국 여성의 오뚜기 인생이 떡볶이 색깔보다 더 진하게 담겨있는데 무엇이 부끄럽다는 말인가.
누군 칠순도 못 지내고 황천길 떠나고, 누군 벌써 정신 놓아 치매에 시달리며, 자식들에게 짐 된다고 눈총 받는다는데, 이 할머니 인생을 보자.


광명 6동에서만 30년 장사, 여전히 가장(家長)
 
서른일곱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밥벌이를 위해 시작한 떡볶이 인생이 어느덧 40년에 이른다. 아직도 명퇴, 정년퇴직 못한 가장이다. 
영등포공원 근처에서 시작한 떡볶이 장사는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고 한다. 거의 매일 같이 보건소 직원들이 단속을 나와 장사도구와 음식들을 뒤엎고, 압수해 가버려서 너무도 힘들었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도 어린이들과 학생들이 거의 물밀듯이 몰려오는 통에 손이 모자랐다. 몇 인분으로 나눠주지 못할 상황이어서 알아서 먹고 돈 내는 진풍경이 벌어질 정도로 장사가 잘되었다고 한다. 
“어느 날, 중년 신사가 의자에 앉아있더니 뭘 시키지도 않고, 가지도 않는 겁니다. 장사를 거의 끝낼 쯤 해서 갑자기 신분증을 보여주는데, 보건소 소장님입디다. 그분이 하는 말이 칸막이도 없이 장사하면 먼지가 음식에 들어가니 비위생적이라면서, 이러면 장사 못한다고 충고해서 겁이 덜컹 났지요. 그런데 음식을 청결하게 만들고, 많이 주면서 속이질 않으니 장사하시라며 가는 겁니다.” 그 뒤로는 보건소 직원들이 오더라도 떡볶이 판은 안 가져가고 다른 부식물만 단속했다고 한다. 
“그때 쯤 해서 광명으로 이사 온지 30년 됩니다. 그땐 뚝방 옆에서 살았는데 홍수가 나서 장사 도구 다 잃기도 했습니다.” 지금 철도차량기지가 있는 옥길동과 광명5, 6동 경계 하천 옆에서 광명생활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당시엔 주변에 단독주택 몇 채 뿐이고 다 논이었다고 한다. 그 후 지금까지 새마을 시장이 자리한 광명 6동 지역에서만 30년을 살고 있다는 송 할머니, “30년 장사에 남은 것은 단골들입니다.” 인터뷰 중에도 단골들이 계속해서 떡볶이를 사갔다.




오전 8시에 열고 밤 10시에 닫아

할머니는 아침 일찍 장사를 시작한다. 늙었다고 청결하지 못하다고 소문나는 것이 싫어서 언제나 청소로 시작한다. 그때부터 온 종일 서서 일한다. 밤 10시까지. 14시간 노동이다. 돈 많이 벌겠다는 질문에 씁쓸한 듯, 먹고 살고 있는 것이 전부라고 한다. 
송 할머니의 인생은 한국 노동자들의 애환이 그대로 묻어난다. 대다수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 높은 노동강도 속에서 성실과 근면을 다해 일해 왔지만 여전히 월세의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는 악순환, 구조적인 어떤 문제가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노동자는 뼈 빠지게 일해도 여전히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산다. 할머니도 별반 다르지 않다.


사글세방 주인이 방 내놔

송 할머니는 사글세방에서 산다. 월 10만원, 그리고 시장 안에서 남의 가게 자투리를 쓰는데, 월 15만원을 지불한다. “세비 주는 날이 왜 이리 빨리 돌아오는지 모르겠어요” 하고는 웃는다. 그동안 돈 모아서 다 어디다 썼기에 가게 하나 없느냐는 외람된 질문에 “자식 키우고 나니 남은 게 없더라구요.” 뻔하다. 자식들 키우다가 목돈 들어가고, 남은 것도 다 주었다는 것. 이 땅의 어머니들의 전형이 아닌가. 
가게 갖는 것이 소원이냐는 물음에 “이 나이에 가게 가지면 뭔 소용이겠어요. 내가 일 못하면 아들놈과 손주놈 살 일이 걱정일 뿐이죠.” 할머니는 사십이 넘었지만 놀고 있는 막내 아들이 경제적인 문제로 이혼 한 뒤, 12살 손자까지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장성한 아들이 있으니 사회복지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다.
 떡볶이 장사는 가을과 봄에 잘된다고 한다. 그렇지만 “요새는 빵도 맛있고, 먹을 것 풍년이지요. 그래서 장사가 잘 안돼요. 예전에 팔면 반이 남아요. 지금은 물가도 올라서 재료비 빼면 남는 것도 별로 없어요.” 장사가 잘 된다는 가을이건만 할머니의 손 큰 것을 못 따라주는 세상인심이 야속하다. 
근처에서 미장원을 하는 욱 00 씨는 “참 좋은 할머니이신데, 사글세가 밀려서 주인이 방 내 놨다고 하데요. 매일 머리 꾸미시는데 돈이 없으셔서 거의 무료로 해드리다시피 해요.”
기자가 몇 날을 지켜보니 시장 안 다른 떡볶이 집들보다 손님이 많다. 할머니 손 큰 것도 맞다. 몇 사람에게나 확인해보아도 맛이 좋고, 양을 많은 주기 때문에 온다고 한다. 그런데 78세 노인이 14시간 서서 일하는 결과가 사글세도 못 치룰 정도라니 안타깝다. 인터뷰를 마치고 떡볶이를 몇 인분 사들고 오는 기자의 마음이 내내 무거웠다.


2004. 10. 18 /  이재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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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심당 2004-10-19 14:52:53
마음이 짠하네요. 30년을 14시간씩 열심히 일해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건 우리 사회 전체의 모순이요 책임입니다.

또~옥 2004-10-21 16:23:52
떡볶이 색깔보다 더 진하게 담겨있는 인생..
안타깝습니다.
할머님께 좋은 일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이재길 2004-10-23 16:35:41
떡볶이를 먹고 있는 손님들은 이곳 단골인 광일초교 학생들.
인터뷰까지 했는데, 사진 첨부 때 보낸 사진 설명구가 누락되었나 봅니다. 김다솔(4학년)/김혜연,혜진(5), 이동혁(6) 군. 이들은 한결같이 맛봏고, 양이 많다고 수다와 너스레를 떨었음! ㅋㅋㅋ

염통 2004-10-22 22:13:40
안녕하세요
할머니

오버란 2004-10-23 17:12:02
열심히 일한만큼 가질 수 있는 세상살이였음 얼마나 좋을까요..
그 많은 시간 일한만큼 할머니의 돈주머니에 복이 가득하면 또한 얼마나 좋을까요.. 힘 내셔요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