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정상회담: 북핵 문제와 한미동맹
한미정상회담: 북핵 문제와 한미동맹
  • 정욱식대표
  • 승인 2005.06.07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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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1일(미국시간) 워싱턴에서 열리는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한미정상회담은 북핵 문제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는 시점에 열린다는 점에서 초미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북한이 6자회담에 대해 어떤 입장을 표명하느냐에 따라 정상회담 분위기도 상당히 달라지겠지만,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향후 한반도 정세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북미간에 뉴욕접촉이 5월 13일에 있었고, 북한도 적절한 시기에 회신을 하겠다고 밝힌 만큼 6자회담에 대한 북한의 입장 표명은 한미정상회담을 전후해서 나올 것으로 전망할 수 있다.

6자회담에 대한 북한의 입장을 세 가지로 나눠 한미정상회담을 진단하고 노무현 정부의 과제를 살펴보기로 하자.


시나리오 1: 북한이 6자회담 복귀를 발표할 경우

한미정상회담 이전에 북한이 6자회담 복귀를 발표한다면, 북미간의 대결을 해소할 수 있는 중대한 길목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을 만나게 된다. 아울러 그동안 정치적 수사 차원에서 머물러 왔던 '한국의 주도적 역할'도 본격 시동을 걸 수 있다.

우선 북한이 6자회담 복귀라는 전략적 결단을 내린 만큼, 공은 미국으로 넘어가게 된다. 3차례의 6자회담에서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방식의 핵폐기)를 고집해 실질적인 협상을 어렵게 했던 부시 행정부는 4차 6자회담에서 '유연성'을 보여야 한다는 강한 압박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바로 이 점에 주목해야 한다. 4차 회담으로 가는 길목에서 열리는 한미정상회담을 미국의 실질적인 정책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6자회담의 재개는 '위기'를 '대화' 국면으로 전환시킨다는 긍정적 의미를 담고 있지만, 4차 회담에서도 이렇다할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북미 양측에서 '6자회담 무용론'이 불거지고 이에 따라 한반도 정세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될 수 있는 '위험성'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노무현 정부는 4차 6자회담을 북미 대결을 해소할 수 있는 절호의, 그리고 마지막 기회라는 마음가짐으로 한미정상회담에 임해야 할 것이다.

한미정상회담과 이에 앞선 실무접촉에서 미국에게 요구할 것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는 문제의 발단이 되었던 우라늄 농축 문제에 있어서 미국에게 상당한 유연성을 요구해야 한다. 우라늄 농축 문제에 집착하다가 북핵 문제가 악화되어왔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북한에게 무조건적인 항복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가능한 수준에서의 타협을 모색해야 한다는 점을 주지시켜야 할 것이다.

둘째는 북한이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법적 구속력이 있는 대북 안전보장 방안이다. 북미간의 뿌리깊은 불신을 고려할 때, 북한이 '잠정적이고 일시적인 다자간 안전보장'을 믿고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전무하다. 따라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문제를 비롯해 법적 구속력이 있는 안전보장 방안을 북한과 협의할 것을 제안해야 한다.

셋째는 북한의 경제회생 및 남북경제협력을 위해 반드시 요구되는 대북 경제제재 및 테러지원국 해제이다. 미국은 북한이 핵 포기를 하면 이러한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혔지만, 정확히 언제 해제할 것이라는 입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노무현 정부는 북한이 핵 포기를 공약하고 이를 위한 구체적인 조치로 핵확산금지조약(NPT) 복귀 및 고강도의 사찰을 할 수 있는 추가의정서 서명과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 및 테러지원국 해제를 맞바꿀 수 있는 '통 큰 협상'을 부시 행정부에 제안해야 할 것이다.


시나리오 2: 북한이 사실상 6자회담 불참을 선언할 경우

한미정상회담 이전에 북한이 미국의 성의 부족 및 대북적대정책의 지속을 근거로 사실상 6자회담 불참을 선언하면, 한미정상회담은 북한에 대한 압박 및 제재를 논의하는 자리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부시 행정부는 '외교적 노력을 다했다'며 본격적인 대북 압박과 제재, 그리고 남북관계의 속도조절을 노무현 정부에게 요구할 것이다. 노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인 2003년 5월에 한미공동성명을 통해 상황 악화시 "추가적 조치"에 합의했다는 점에서 노 대통령이 부시의 요구를 뿌리치기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이 미국 주도의 대북 제재 및 압박에 동참하는 것은 그 '기대효과'는 극히 불확실한 반면에 치러야 할 비용은 막대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경험적으로나 북한의 입장을 고려할 때 북한이 제재에 굴복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오히려 "제재를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고 밝혀온 북한은 '핵 억제력'을 비롯한 군사적 준비태세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갈 가능성이 높고, 이는 한반도의 전쟁 위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아울러 어렵게 정상화의 기틀이 마련된 남북관계도 최악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이는 제재가 북핵 문제를 풀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 아닐뿐더러, 한국이 감당할 수 없는 위기를 자초할 수 있는 '악수'(惡手)라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노무현 정부는 북한이 6자회담에 불참을 선언하더라도, 평화적·외교적 해결을 포기할 수 없다는 점을 부시 행정부에게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다. 이러한 입장이 한미관계의 긴장을 가져올 수 있지만, 이는 한반도 전쟁 위기 방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할 비용이라고 할 수 있다.


시나리오 3: 북한이 한미정상회담 이후로 입장 표명을 미룰 경우

이렇게 될 경우 한미정상회담은 6자회담의 재개 여부를 판가름할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고, 정상회담에서는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강력하게 촉구하는 내용이 발표될 것이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문제는 6자회담 복귀를 촉구하면서 '경고'에 무게 중심을 둘 것인지, 아니면 북한의 전략적 결단을 유도하기 위해 유화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것인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부시 행정부는 전자를, 노무현 정부는 후자를 선호하게 될 것이고 이에 따라 상당한 진통이 따를 것이다.

"얼굴이 붉혀지는 한"이 있더라도 정부는 한미정상회담을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절호의 기회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회담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부시 행정부의 '혼선된 대북 메시지'가 북한의 전략적 선택을 어렵게 하는 요인인 만큼, 부시 대통령에게 북한과의 평화적 공존 의사를 명확히 밝힐 것을 요구해야 한다.


한국의 입장 정확히 전달해야

물론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자 일방주의적 외교 행태를 보여온 부시 행정부를 상대로 우리의 입장을 관철시키기란 대단히 어렵다. 특히 최근 한미관계의 균열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어, 노무현 정부는 이번 정상회담을 한미간의 신뢰 회복의 기회로 여길 가능성도 높다.

그러나 신뢰 회복이라는 명분으로 할 말을 못하고 부시 행정부의 비위 맞추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인다면, 신뢰 회복의 효과는 거의 없고 한반도의 위기 고조라는 감당하기 힘든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신뢰 회복'의 함정에 빠져 전략적 유연성 내주면 안 된다

한미정상회담이 코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양측의 외교안보팀은 본격적인 의제 조율에 나서고 있다. 북핵 문제가 최대 이슈가 되고 있는 가운데,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작전계획 5029,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균형자론 등 한미동맹 현안들도 폭넓게 논의될 전망이다.

특히 한미 양국에서 '한미동맹 균열론'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는 점에서 부시 행정부는 노무현 대통령의 '동맹에 대한 의지'를 검증하는 자리로 정상회담을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 노무현 정부 역시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정상간의 신뢰를 돈독히 하겠다는 입장이다.

국가간, 특히 동맹국간의 신뢰는 중요하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가 신뢰 회복에 집착할 경우 그 '비용'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의 동맹관을 문제삼아왔던 부시 행정부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달라'며 북한에 대한 공동 압박과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등에 합의할 것을 요구할 것이다.  

이러한 사안들은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의 안보 지형에도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문제라는 점에서 쉽게 합의해줄 성질의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노 대통령이 '신뢰의 회복'이라는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큰 틀에서 정상회담에 임해야 할 까닭이기도 하다.


부시, 전략적 유연성 '조기' 합의 요구

우선 관심의 초점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이다. 이와 관련해 노무현 정부도 이미 동의한 것으로 믿고 있었던 부시 행정부는 노 대통령이 3월 8일 공군사관학교 졸업 및 임관 연설에서 이를 부정하는 듯한 발언을 하자 상당히 격앙된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필자가 5월 초에 만난 펜타곤 관리들은 노 대통령의 발언을 '충격'이라고 표현하면서, “노 대통령이 한국의 허락 없이 주한미군이 동북아 분쟁에 개입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취지의 발언은 “미국의 주권을 침해하고 있는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당시 노 대통령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해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우리 국민이 동북아 분쟁에 휘말리는 일은 없다”며, “(이는) 어떤 경우에도 양보할 수 없는 확고한 원칙으로 지켜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부시 행정부는 이번 한미정상회담을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노 대통령의 확약을 받는 자리로 삼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당초 보도와 달리 미국 측에서 먼저 정상회담을 요구했다는 것도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한다.

아울러 해외 주둔 미군을 포함한 미국 군사력의 전략적 유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미국은 한미동맹을 ‘모범 사례’로 삼고자 가급적 빨리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논의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명시된 대북 방어에서 북한과 중국에 대한 선제적 군사 개입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미군의 역할 변화를 꾀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점에서 한반도와 동북아 안보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사안이다. 한미동맹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쉽게 합의해줄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는 이번 정상회담을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논의를 다시 시작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한국 측의 정당하고 타당한 우려를 직접 전달하고 최소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논의하자는 입장을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부담”을 국민들과 미래의 세대에 넘겨서는 안 된다.


동북아 균형자론, '부메랑' 조심해야

치밀한 전략적 고려와 사전 준비 없이 나온 '동북아 균형자론'이 역풍을 맞고 있는 것 역시 한미정상회담의 전망을 어둡게 하는 대목이다. "동북아의 패권 경쟁을 예방하고 갈등을 조율하는 역할을 하겠다"는 당초의 문제 의식은 위축되고, "'탈미(脫美)·친중(親中)' 전략이 아니냐"는 한미 양국 보수파들의 집중적인 견제를 받으면서 노 정부는 해명하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동북아 균형자론이 부시 행정부에게 '역이용' 당할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 한미 양국 사이의 기류를 보면 그 근거들을 찾을 수 있다.

먼저 노무현 정부는 최근 동북아 균형자론을 해명하면서 '한미동맹' 및 '미국의 균형자 역할'을 유독 강조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탈미'(脫美) 협의를 받아왔던 노 정부가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 비위 맞추기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와 같은 노 정부의 대미 저자세 외교가 '동맹 재편'을 패권주의 강화의 도구로 삼으려고 하는 부시 행정부에게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북아 균형자론'을 노 정부의 한미동맹에 대한 의지의 시험대로 삼으면서 '한국 길들이기'에 나설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부시 행정부는 노 정부의 '동북아 균형자론'이 '탈미' 전략이 아니고 한미동맹을 굳건히 하는 것의 일환이라면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달라'며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비롯한 동맹 관련 현안들에 대해 합의를 요구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노 정부 역시 '탈미' 혐의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와 같은 요구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할 수 있다.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하듯 지난 5월 초에 만난 펜타곤의 한 관리는 한국 정부가 동북아 균형자론을 천명했을 때, 그러한 정책을 사전에 미국과 협의하지 않은 것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했다. 특히 그는 이를 두고 노무현 정부가 한미동맹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느 수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노 정부의 동맹에 대한 의지를 문제삼으면서 한국을 '미국의 범위' 내에 묶어두려고 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이처럼 어설픈 동북아 균형자론과 뒤이은 대미 저자세 외교는 부메랑이 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칫 이러다간 '동북아의 균형자'는 고사하고 대미 종속성이 더 강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이번 정상회담을 동북아 균형자론을 '해명'하는데 급급한 모습을 보일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문제의식을 전달하는 기회로 삼을 필요가 있다.

균형자라는 표현의 적실성을 떠나, 한국은 동북아의 패권 경쟁을 예방하고 갈등을 조율하지 못하면 한반도가 또 다시 강대국 정치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갖고 있으며, 동북아 균형자 발언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임을 미국에게 주지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정욱식/2005년 6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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