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중대제안', 미국에게 역이용 당할 수 있어
한국의 '중대제안', 미국에게 역이용 당할 수 있어
  • 정욱식대표
  • 승인 2005.07.18 16: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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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미의 관심을 모았던 한국의 '중대제안'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경수로 사업을 중단하는 대신에 남쪽에서 200만㎾의 전력을 직접 보내겠다는 계획인 것으로 드러났다. 사실상 뇌사 상태에 빠진 경수로 사업에 들어갈 비용을 남북한의 전력망을 연계하는 쪽으로 전환해 핵 협상의 돌파구를 마련해보겠다는 복안이다.

일단 이러한 제안에 대해 미국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12, 13일 방한했던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한국의 중대제안에 대해 "아주 창의적이고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데 유익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긍정적인 방안"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앞선 10일 뉴욕타임즈는 한국의 중대제안에 대해 미국 정부의 고위 관리들이 "(미국의 기존 제안과) 양립 가능하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이 이처럼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첫째는 한국의 '중대제안'이 '미국의 범위 안'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난 3차 회담에서 북한이 핵폐기 준비단계에 들어가면 북한의 에너지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 방안의 핵심은 경수로 사업을 중단시키고 비핵 에너지를 지원하는 것이다. 한국의 중대제안은 이러한 미국의 입장과 부합하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라이스는 한국의 중대제안이 "작년 6월에 내놓은 제안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둘째는 한국의 중대제안이 제네바 합의에 따라 미국의 주선 하에 지어주기로 한 경수로 사업을 대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시 행정부는 2001년 출범 직후부터 경수로의 안정상의 문제와 북한이 핵무기 개발에 전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근거로 경수로 사업의 폐기를 시도해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금까지 경수로 사업 중단에 대해 난색을 표해온 한국이 경수로 대신에 비핵 에너지를 지원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한국의 중대제안과 관련해 가장 아쉬운 대목은 미국과 협상하지 못했다는 점에 있다. 이미 10억 달러가 넘게 투입된 경수로 사업을 포기한다는 것은 한국으로서도 미국에게 크게 양보한 것이다. 더구나 경수로 사업을 대신하는 전력 제공 비용도 한국이 모두 부담하기로 했다.

정부가 이처럼 큰 결단을 내리게 된 배경에는 부시 행정부가 '절대 불가'를 고수하고 있는 경수로 사업에 매달려봐야 실익이 없고, 북핵 문제 해결도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는 정부의 중대제안이 에너지난에 허덕이고 있는 북한은 물론이고 경수로 사업 불가를 외쳐온 미국의 입장을 동시에 고려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에게 이처럼 크게 양보하면서 미국의 정책 변화를 요구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한국이 미국의 입장을 고려해 경수로 사업을 포기하고 전력 제공 비용을 전담하기로 한 만큼, 이를 지렛대로 삼아 미국도 기존 제안을 대폭 수정할 것을 요구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중대제안에 정통한 정부의 고위 관리는 "미국에게 북한을 자극하는 발언을 자제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기존 제안의 수정은 요구하지 않았다"고 밝혀,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해주었다.

북한이 망설일 수밖에 없는 이유

관심의 초점은 '북한이 남한의 중대제안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에 모아진다. 이와 관련해 정동영 장관은 6월 17일 면담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중대제안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신중히 연구해서 답을 주겠다"고 답했다고 설명했다.

일단 북한도 남한의 제안에 관심을 가질 법하다. 심각한 에너지난에 허덕이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경제회생을 위해서라도 에너지가 절박한 상황이다. 특히 남측에서 제안한 200만kw는 북한의 전체 전력 생산량과 맞먹고, 전력을 제공받는 시점 역시 경수로보다 훨씬 빠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관하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우선 북한이 그토록 강조해온 '주권'이 걸려 있다. 북한으로서는 경수로 사업을 포기한다는 것은 사실상 평화적 핵 이용 권리까지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구나 북한은 핵 발전소의 보유를 체제의 자부심 가운데 하나로 여겨왔고, 경수로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 사업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북한이 과연 경수로를 포기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드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또한 전력 공급의 안정성 대해 '북한이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도 중요한 문제이다. 정부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한, 송전이 중단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지만, 곳곳에 변수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 한반도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우선 전력 공급은 북한의 핵 폐기를 조건으로 하고 있는데, 이 과정으로 가는 것이 결코 순탄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의 핵 프로그램의 모호성과 복잡함, 그리고 북미간의 불신을 고려할 때, 북핵 검증 과정에서 얼마든지 돌출변수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핵문제 이외에도 미사일, 생화학무기, 재래식 군사력, 인권 등 결코 만만치 않은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 역시 고려할 수밖에 없다. 아울러 북한으로서는 남한의 정권 교체 여부와 전력 공급의 안정성 문제를 연계해서 고려할 가능성이 높고, 대남의존성의 심화 역시 북한으로서는 선뜻 중대제안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중대제안이 보완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우선 경수로 사업을 완전히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재개하는 방안에 대해 미국의 동의를 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복귀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추가의정서에 서명하는 대신에, 미국은 북핵 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전제로 경수로 사업의 재개 가능성을 수용하는 형태로 협상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전력 공급의 안정성과 지속성에 대한 북한의 우려를 완화하는 차원에서 한나라당이 요구하고 있는 국회 동의를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최근 박근혜 대표를 중심으로 일부 의원들이 대북정책에 있어서 전향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국회 동의를 받을 수 있는 유력한 근거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대북정책에 대한 초당적인 협력을 증진시키고, 향후 남한의 정권 교체 여부와 관계없이 송전은 계속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북한에 전달해 북한의 중대제안 수용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것을 정부와 여당은 고려해야 할 것이다.

중대제안의 중대한 걸림돌

북한이 중대제안을 수용할 것인가의 여부는 중대제안 자체보다는 다른 '근본 문제'들이 어떻게 해결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은 핵 포기의 상응조치로 에너지 지원 이외에도 법적 구속력이 있는 안전보장, 경제제재 및 테러지원국 해제, 북미 관계정상화 등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러한 요구들이 충족되지 않으면 핵을 포기할 동기와 명분은 그만큼 약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근본문제들에 대한 북미간의 입장 차이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미국은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방식으로의 핵 폐기) 방식으로 핵문제가 해결된 '이후'에 이러한 근본문제의 해결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에 북한은 핵 동결 및 폐기 과정에서 이러한 상응조치들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특히 관계 정상화에 대해서 미국은 핵문제가 해결된 이후에도 미사일, 생화학무기, 재래식 군사력, 인권, 일본인 납치 문제 등에 있어서 상당 부분 진전이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고, 북한은 관계 정상화가 이뤄지기 전에는 핵을 완전히 포기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의 중대제안은 '중대한 결함'을 갖고 있다. 중대제안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들 근본 문제들과 관련해 미국의 기존 입장을 유연화시켜야 하는데 중대제안에는 이러한 내용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중대제안의 후폭풍도 생각해야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중대제안은 분명 북한에게도 매력적인 요소가 있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이 적대정책을 포기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지 않는 한, '핵 포기'라는 전략적 결단을 내리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이번 6자회담 결과를 낙관하기 어려운 요인이기도 하다. 이번 회담에서 극적인 돌파구가 마련되기 위해서는 미국의 기존의 제안을 대폭적으로 변경하거나 북한이 사실상의 선(先) 핵포기라는 결단을 내려야 하는데, 이를 기대하기가 힘든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한국의 중대제안에도 불구하고 이번 회담에서도 이렇다할 성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럴 경우 한국의 입지는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 중대제안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 포기라는 전략적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그 다음부터 미국의 대북 압박과 제재를 반대할 명분이 약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이 한국의 중대제안을 치켜세우면서 북한의 결단을 압박하고 있는 모습의 이면에서 이와 같은 불길한 징후를 발견할 수 있다. 미국으로서는 북한이 중대제안을 수용해 선 핵포기 조치를 취해도 좋고, 북한이 이를 거부하면 '5 대 1' 대북 압박 구도를 본격화할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한국이 앞으로 미국에게 기존의 제안을 수정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미국이 이를 상당 부분 수용하면 협상의 돌파구를 열 수 있는 중대한 기회를 창출할 수 있고, 미국이 이를 거부하면 최악의 상황을 방지할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운명적 순간'에 한국이 해야 할 '운명적 역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욱식  /  2005년 7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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