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만 문제? 미국 핵도 6자회담 걸림돌
북핵만 문제? 미국 핵도 6자회담 걸림돌
  • 이승봉
  • 승인 2005.07.27 11: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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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6일부터 4차 6자회담이 예정된 가운데, 회담 참가국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외치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회담 재개가 목표가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를 향한 실질적인 진전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 역시 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고, 또한 북한의 목표라고 말하고 있다. 앙숙관계인 북한과 미국이 이처럼 한 목소리로 한반도 비핵화를 말하는 것은 분명 주목할 일이다.

그러나 양측이 말하는 한반도 비핵화의 의미와 내용은 상당히 다르다. 우선 미국은 북핵 문제가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방식으로의 핵 폐기) 방식으로 해결된 상태를 한반도 비핵화로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해 미국은 북한이 플루토늄을 이용한 핵무기 개발뿐만 아니라 북한이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있는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도 폐기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더구나 경수로 등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도 사실상 불허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반면 북한은 미국의 핵 위협도 해소되어야 한반도 비핵화가 달성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북한은 3월 31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북한도 핵보유국이 된 만큼, 6자회담은 북한의 핵 포기와 이에 대한 미국의 상응조치를 주고받는 수준이 아니라 군축 회담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즉, 북핵 문제뿐만 아니라 "조선반도와 그 주변"에 가중되고 있는 미국의 핵 위협도 6자회담의 의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북한은 남한의 핵 투명성도 검증을 통해 입증되어야 한다는 점과 함께, 미국의 핵우산도 제거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ㆍ미가 기술적으로는 전쟁상태에 있고 남조선이 미국의 핵우산 밑에 있는 조건에서 그전까지는 우리가 핵무기를 가지는 것이 오히려 조선반도에서 전쟁을 막고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는 기본 억제력으로 된다"는 것이다.

북한, 미국 핵문제 제기할까?

관심의 초점은 북한이 위와 같은 입장을 고수하면서 4차 6자회담에서 미국 핵문제의 의제화를 시도할 것인가에 모아진다. 만약 북한이 3월 31일 담화에서 밝힌 것처럼 핵군축을 핵심적인 의제로 삼으려고 한다면, 4차 회담은 협상다운 협상도 못해보고 서로 말싸움만 하다가 끝날 수도 있다. 그리고 미국 등 다른 참가국들은 북한의 의도에 강한 의구심을 표하면서 본격적인 대북 압박 및 제재에 돌입하려고 할 것이다.

이는 북한이 핵군축 회담을 고집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이 자신의 핵문제를 협상테이블에 올려지는 것 자체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없을뿐더러, '핵군축'이라는 표현 자체가 한반도 비핵화와 양립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북한이 미국 핵문제를 아예 거론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오산이 될 공산이 크다. 즉, 북한이 미국의 핵무기 감축과 폐기, 그리고 남한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 철수 등 비현실적인 문제들은 거론하지 않더라도, 미국이 제네바 합의에서 약속한 소극적 안전보장 문제는 제기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소극적 안전보장(NSA)이란 핵보유국이 비핵국가에 대해 핵무기 사용 및 사용 위협을 하지 않겠다는 것을 보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핵우산은 핵보유국이 비핵국가에 대해 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다른 핵보유국이 핵무기로 보복할 수 있다는 적극적 안전보장(PSA)를 의미한다. 잘 알려진 것처럼,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핵우산 아래에 있다.

가중되는 미국의 핵위협

굳이 북한의 주장을 인용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볼 때에도, 미국의 북한에 대한 핵 위협은 가중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미국이 단 한번도 북한을 핵 선제공격 대상에서 제외시키지 않았다는 것은 이를 뒷받침해준다.

한국전쟁 당시 핵무기 사용을 검토했던 미국은 정전협정서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대량보복전략’을 채택해 남한에 핵무기를 배치하기 시작했고, 카터 행정부가 다른 비핵국가들에 대해 소극적 안전보장을 천명한 순간부터 팀스피리트 훈련을 시작했다. 남한에서 핵무기를 철수한 이후에는 미국 본토의 공군력과 핵잠수함을 이용한 핵공격 계획을 유지했고, 제네바 합의 체결 때에는 겉으로는 소극적 안전보장을 약속했지만 이 역시 공수표였다.

더구나 부시 행정부 출범이후에는 핵태세검토보고서(NPR)에서 북한을 이라크와 함께 “고질적인 군사적 우려”(chronic military concern)로 명시하면서 우선적인 핵공격 대상으로 명시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부시 행정부는 북한의 지하시설을 겨냥한 소형 핵탄두 개발을 추진하는 한편, 유사시 북한에 대한 핵무기 사용 계획이 포함된 '콘플랜 8022'를 마련했다. 북한이 말하는 미국의 핵 위협에 상당한 일리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6자회담이 열리면 북한이 핵 포기 조건의 하나로 소극적 안전보장(NSA)을 비롯한 미국의 핵 위협 해소를 요구할 것임을 예고한다. 특히 과거에 미국에게 기만을 당했던 사례를 들면서 ‘법적 구속력이’(legally binding) 있는 안전보장을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핵 패권주의를 강화하면서 생화학무기 사용에 대해서도 핵무기로 보복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부시 행정부는 이와 같은 북한의 요구를 수용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앞으로 북한의 선(先) 핵포기를 요구하는 미국의 주장과 핵포기의 상응조치의 하나로 미국의 핵 위협 해소를 요구하는 북한의 주장이 부딪치면서 합의 도출을 어렵게 하는 핵심적인 요인이 될 것임을 예고한다.

한국이 발언권을 높일 수 있는 이유

한국은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정당한 이유와 조건을 갖고 있다. 북한의 핵개발로 가장 큰 위협을 받을 나라는 한국이다. 또한 미국이 북한에 대해 핵무기를 사용할 경우에도 한국은 그 피해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잠재적 최대 피해자’는 그 문제를 제기할 정당한 근거를 갖기 마련이다. 아울러 한국은 북한과 같은 민족이고, 미국과는 동맹 관계에 있다. 양자의 핵문제를 모두 제기할 수 있는 조건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북핵 불용’이라는 확고한 입장을 갖는 것이 대미 발언권을 높이는 요소이듯이, 미국의 대북한 핵 위협 해소에 적극 나서는 것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및 남북관계의 질적 발전과 신뢰 강화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요소이다. 민족과 동맹 사이에서 야기되는 딜레마에 얽매일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역이용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미핵(美核) 문제’로 인해 6자회담이 좌초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이면서도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단기적 목표와 중장기적 목표를 연계시켜 로드맵을 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기적 목표는 북한의 핵 포기를 유도할 수 있는 상응조치 가운데 하나로 ‘높은 신뢰도’를 갖는 대북한 소극적 안전보장의 제공을 미국에게 요구하는 것이고, 중장기적 목표는 동북아 비핵지대를 창설하는 것이다.

먼저 대북한 소극적 안전보장(NSA)은 단계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1단계로는 북한이 모든 핵무기 프로그램을 포기하는 것을 공약하는 것과 동시에 “핵보유국은 비핵국가에 대해 핵무기 사용 및 사용 위협을 하지 않겠다는 점을 확인한다”는 내용을 공동발표문에 담는 것이다. 이는 미국을 특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미국의 수용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중장기적 목표인 동북아 비핵지대의 중요한 기초를 놓을 수 있다.

2단계는 북한의 핵 포기의 구체적인 조치로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복귀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추가의정서에 서명하는 것을 조건으로 부시 대통령의 서명이 담긴 안전보장을 북한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서면 안전보장에는 물론 NSA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NPT 체제에 활력을 불어넣어 NPT 강화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핵 위협을 해소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검증이 필요하겠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6월 17일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의 면담에서 NPT에 복귀하고 IAEA 사찰을 받을 수 있다는 의사를 피력한 것은 이러한 접근을 가능케 하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3단계는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 해체가 가시권에 들어왔을 때,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면서 여기에 대북한 NSA를 포함시키는 것이다. 이는 북핵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는데 확실한 인센티브가 될 것이며, 미국이 핵 포기 국가에 대해 법적 구속력을 갖춘 NSA를 제공한 사례를 만듦으로써 이란 등 다른 국가들의 핵문제를 해결하는데 모범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단계는 이를 제도적으로 확대하는 동북아 비핵지대의 창설이다.

‘비핵화된’ 한반도의 안전보장

기실 21세기 초입에 불거진 이른바 ‘제2의 북핵 위기’는 우리가 핵무기 문제를 본질적인 차원에서 이해하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한반도 비핵화’를 요구하고 있는 주변국가들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비핵화된 한반도’는 어떻게 핵보유국으로부터 안전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를 되물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한반도 특수성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동북아와 세계를 핵무기의 위협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보편적 가치의 실현과도 직결된 것이다. 그리고 동북아 6개국이 참여한 6자회담은 이를 제기할 수 있는 중요한 공간이기도 하다.

동북아 비핵지대가 이상론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이미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 지역(틀라텔로코 조약, 1967년), 남태평양(라로통가 조약, 1985년), 동남아시아(방콕 조약, 1995년), 아프리카(펠린다바 조약, 1996년) 등 지구의 절반 이상이 비핵지대로서의 지위를 획득했다. 물론 이들 지역과 동북아 지역을 단순비교할 수는 없지만, ‘비관적 현실주의’에 매몰돼 한반도의 핵 딜레마 해소와 동북아 공동안보 증진을 위한 중요한 주춧돌을 놓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특히 21세기 들어 전세계적으로 핵비확산 문제가 중요한 이슈로 제기되고 있고, 그 중심에 한반도가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적극적으로 동북아 비핵지대를 제안하는 것은 한반도 평화의 국제적 지지와 협력을 확보할 수 있는 유력한 근거이기도 하다. 아울러 일본의 핵무장을 제도적으로 방지하고 동북아 군비경쟁을 종식시킬 수 있는 의의도 갖고 있다.

또한 동북아 비핵지대에 대한 현실적인 방안이 없는 것도 아니다. 현재 동북아 6개국 가운데, 공식적으로는 남북한과 일본이 비핵국가이다. 따라서 이들 세 나라가 핵보유를 하지 않겠다는 비핵지대화 조약을 체결하고, 미국, 중국, 러시아 등 핵보유국이 비핵국가에 대해 핵무기 사용 및 사용 위협을 하지 않겠다는 보장을 받아내는 방식으로 동북아 비핵지대화를 향한 의미있는 첫발을 내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정욱식/2005년 7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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