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일경로당 전 회장 임석필 옹
광일경로당 전 회장 임석필 옹
  • 이재길기자
  • 승인 2005.08.01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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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법이 경로당 짓눌러

산다는 것은 죽는다는 말이 내포된 말이다. 하루를 살았다는 것은 하루를 죽은 셈이 된다. 죽음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늙어서 제 수명을 다해 죽는 것은 행복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에서 노인으로 사는 것은 행복한 일일까? 
광일경로당을 찾았다. 남성 노인 10여 명과 여성 노인 20여 명이 각방에서 화투를 소일거리 삼아 모여 있다. 평화로운 분위기이지만 요새 경로당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선거법 때문이다. 선거법 제113조 `국회의원·지방의회 의원·지방자치단체장 및 후보자(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를 포함)와 그 배우자는 선거구 안에 있거나 선거구민과 연고가 있는 기관 단체시설에 기부행위를 할 수 없다`는 규정이 경로당을 위기로 몰았다. 
임석필(76세) 옹도 상당히 분개한다. 
“선거법 때문에 경로당이 다 힘들어요. 가뜩이나 가난한 동네라 어디 손 빌릴 데도 없는 광일경로당은 타격이 너무 큽니다. 선거법 취지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정치인들이 자기들은 돈 안 쓰게 해놓고, 받을 것은 받는단 말이예요.”
통계에 따르면 전국에 약 5만 개의 경로당이 있다. 광일 경로당도 그 중 하나다. 국가의 공식 지원금은 수도세, 전기세, 가스 요금 같은 공과금을 지원해 주는 것 이외에 없다. 봄과 가을에 30만원, 여름과 겨울엔 40만원이 나오는 게 전부. 이 돈 중에 남은 것을 융통하는 것이 회장이 하는 일 중에 한 가지. 그러니 회장 일이 힘들 수밖에 없다고 한다. 자리에 같이한 광일경로당 현 회장인 백영신 옹이 거든다. 정치인들이 발 길이 끊어졌지만, 순수한 의도로 노인을 섬기는 동네 젊은이가 돼지도 잡아서 대접했다면서 자랑을 늘어놓는다. 그만큼 경로당운영이 힘들다는 말로 들렸다. 

월 회비 삼천 원이 없어 경로당 가입 못 해
 
노인이 되면 3개월에 36,000원을 받는다. 교통비다. 이나마도 3년 전엔 3만원 주던 것을 개천하나 넘으면 서울인데, 서울시 노인들과 같이 받게 해달라고 시장에게 요청해서 받게 된 것이다. 겨우 6,000원 가지고 그러냐고 하는 이들을 위해 경로당의 현실을 덧붙인다. 
경로당 회원은 입회비 3만원과 월 3천 원을 받는다. 이 3천 원을 내지 못하여 경로당에 들어오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경로당에 오는 노인들은 중간층이라고 보면 맞아요. 저층이라고 할 참 어렵게 사는 노인들은 회비를 못내 들어오지 못합니다. 잘 사는 노인들이야 들어오려고 하지 않아요.” 
씁쓸한 말이다. 기자가 겨우 3천 원을 못 내서 못 들어오느냐고 재차 묻자 임 옹이 창문 바깥의 놀이터를 가리키며 "저기 앉아 있는 노인들이 다 그런 분들이예요“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혀를 찬다.

여름이 무서워   

연금 같은 노후 보장이 안 된 노인, 그렇다고 자식 잘 키워 효도 받는 경우가 아니라면 노인들에겐 무더운 여름은 또 하나의 고통이다. 열대야는 수면을 방해한다. 더위는 심혈관 질환을 높이는 위험인자다. 
“상반기에만 세상을 떠난 노인이 6명이나 됩니다. 건강이 가장 큰 문제예요.” 
임 옹도 예외가 아니다. 20여 년 간이나 혈압과 당 약을 복용하고 있다. 함께 경로당에 다니던 부인(74세)은 당이 높아 걷는 것이 불편하여 옆에서 간호해야 한다. 경로당 회비 삼천 원을 못 낼 형편인 노인들이 자기 몸 아프다고 병원에 갈 엄두나 낼까. 
“돌아가시는 노인들을 위해 경로당이 부조라도 하나요?” 하고 묻자 “삼만 원을 조의금으로 내는 것 말고는 없어요.” 그런다. 누구나 노인이 되고, 누구나 죽는다. 이 상식이 인색함 속에 방치된 현실이 서럽다.    
노인에겐 영양부족도 큰 문제다. 경로당 운영비가 부족하다보니 먹는 재미가 사라졌다. 이래저래 쓸쓸한 노년생활이다. 그나마 임 옹은 자식농사를 잘 지어 남부러움을 산다. 교육자로서 자식들에게 늘 모범을 보인 것이 자식농사법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다섯 아들이 잘 성장해 효도가 남다르다고 한다. 살림은 부인과 막내아들 내외와 함께 하고 있다. 경로당이 살려면 가정이 우선 잘되어야 한다는 역설이 담겨 있어 보인다. 

담백한 인생사

임 옹은 전남 무안이 고향이다. 학교는 목포로 다녔는데, 김대중 전 대통령이 목포북교 4년 선배라고 한다. 임 옹은 목포사범고를 졸업한 뒤 교사 생활을 평생직으로 삼았다. 1953년에 발령 받아 66년에 서울로 올라왔다. 구로남, 이태원, 영등포, 사당 초교를 거쳐 1994년에 개봉초교에서 교감으로 정년퇴임했다.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광명에 자리를 잡은 것은 20년 전이다. 정년퇴임 후엔 호남 향우회를 조직하였고, 신민당에서도 활동하였다. 선거관리위원을 7년, 평통자문위원 3년, 바르게살기협의회 3년 활동을 하는 등 바쁘게 생활하였다. 나이가 들면서 모든 직책을 내려놓았다. 올해는 광일노인정 회장직도 내려놓았다. 5년을 역임했다. 능력이 닿는 범위에서 정성껏 회원들을 돌보았다고 한다. 그밖에 광명7동에 있는 ‘사랑의 집’과 광명장애인협회를 계속 후원하고 있다.

노인 철학

임 옹은 잘 먹고, 즐겁게 살자는 신념을 가지고 산다. 일종의 노인철학이다. 이 세상의 영화를 다 누려봤다는 솔로몬은 말하기를 “사람이 세상에서 온갖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속썩이지만, 무슨 보람이 있단 말인가? 평생에 그가 하는 일이 괴로움과 슬픔뿐이고, 밤에도 그의 마음이 편히 쉬지 못하니, 이 수고 또한 헛된 일이다. 사람에게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 자기가 하는 수고에서 스스로 보람을 느끼는 것,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임 옹은 성공한 삶을 산 것이다.
 더 나아가 “노인이 대접 받으려 하기 전에 사회 모든 면에서 모범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정확하게 살아야 해요. 그리고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 거예요.” 
이것이 임 옹의 확고한 지론이라고 한다. 인생은 계절과 닮았다. 무더운 여름에 데워진 땅에서 상승하는 열기는 젊음과 같다. 그 열기는 이내 비를 몰고 온다. 비는 내려온다. 밑으로 흐른다. 젊다고 우쭐거릴 이유가 없다.  장일선이 말한 ‘하심’을 잊지 말아야 할 일이다. 노인이야 말로 내려놓고 밑으로 가야 한다. 잘 죽는 일만 남았다. 그마저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메멘토모리-네 죽음을 기억하라-.    

인터뷰는 7월 31일 일요일 오후 3시에 광일경로당에서 했다.  

2005. 8. 1  /  이재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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