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급한 이야기] 살람 아저씨가 위급합니다.
[아주 급한 이야기] 살람 아저씨가 위급합니다.
  • 박기범
  • 승인 2005.08.01 17: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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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 6월. 터키 국제전범재판에서, 살람 아저씨


내전 상황으로 치달은 이라크의 상황 속에서 살람 아저씨가 암살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시아파와 수니파로 갈려 서로를 죽고 죽이는 상황, 그 가운데에서도 엔지오 활동을 하던 이들은 아주 급박한 위험에 처했습니다. 터키 국제전범에 참여하고 이라크로 돌아갔을 때 벌써 살람 아저씨와 함께 활동하던 이 몇이 죽음을 맞이했고, 살람 아저씨는 계속된 미행과 감시, 공포 속에서 죽음의 위협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우선 아저씨가 한 시라도 빨리 이라크를 떠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이에 급한대로 아저씨에게 보낼 1차 지원금을 8월 1일 오전에 보냅니다. 아주 급한 상황입니다.

아래의 통장으로 7월 29일부터 들어오는 돈은 모두 살람의 지원금으로 보내겠습니다.

1차 지원금 송금 : 8월 1일(월요일) 오전
농협 : 755018-51-092845, 박기범(바끼통)
 
 

1. 현실이 된 이라크의 내전

 이라크의 상황이 갈수록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내전,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것.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구조 안에서 단지 서있는 자리를 달리한다는 까닭만으로 죽이고 죽어야 하는 상황. 그 소용돌이 속에서는 이미 이웃이나 친척, 친구도 믿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오로지 증오와 분노, 미움과 의심, 그리고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함만 존재할 뿐.

 이라크가 내전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언론 보도를 통해 알 수 있었고, 특히 지난 번 터키에서 만난 살람 아저씨의 증언에서 그 실체를 생생히 확인했습니다. 살람의 가까운 동무 또한 자신의 집 대문을 나서다 온 몸에 벌집이 되도록 총탄을 맞고 죽었다고 했지요. 까닭은 단 하나, 그이가 수니파 계열이기 때문이었다고 했습니다. 살람 아저씨는  그 때를 떠올리면서 솔직한 심정을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내 손에 총 한 정만 있다면 눈에 보이는 시아파 사람들을 다 죽이고 싶다는 분노마저 느꼈다는 이야기, 그러한 감정이 부당한 것이라는 것은 알지만 지금도 당시의 감정에 대해서는 지금도 부끄럽지 않다고, 진심이었다는 말을 아프게 말했습니다.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이 죽어간 친구를 눈앞에 보고 있자니 참을 수 없는 분노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며 말이지요. 침략군들의 점령 정책은 이처럼 이라크 사람들을 둘로, 또는 셋으로 갈라 놓아왔으며 급기야는 서로가 서로를 증오하게 만들어왔습니다. 내전은 바로 그이들의 계획이었고, 이미 현실이 되었습니다.


2. 닷새 전, 살람 아저씨의 편지 - 위급한 상황

 7월 초, 터키 국제전범재판을 마친 뒤 아저씨는 암만으로 돌아가 며칠을 머물다가 바그다드로 돌아가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저씨와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계속 saba 님이 연락을 취하던 중 닷새 전 살람 아저씨의 다급한 편지 한 통이 사이드(2003, 반전평화팀 팀장)에게 전해졌습니다. 등골이 오싹하도록 두렵고, 무섭고, 불안한 편지였습니다. 

2005년 7월 25일 (月) 23:58 (한국시간)

(편지 앞줄임)

1. 바그다드에는 아직도 물이 전혀 안 나옵니다. 내 어머니와 부인이 물을 얻으러 많은 사람들을 찾아 다녔어요... 그리고 바그다드 기온이 60도에 육박하는데도 전기도 전혀 공급되지 않고 있어요. 6시간마다 30분씩 전기가 공급되고 있습니다. 즉 하룻동안 2시간 동안 전기가 들어온단 거죠.

2. 알후리아 상황은 이보다 더 안 좋을 수 없습니다. 살인과 유괴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입니다, 믿을 수 없을 정도에요. 여태까지는 괜찮았는데- 날 몹시 화나게 만드는 일이 있어요... 알 후리아에 있는 내 친구 2명, 그들도 NGO에요, 그들이 살해되었어요. 그리고 알 후리아에 또 다른 NGO가 있는데 그 사람 역시 죽었습니다. 어머니는 내가 하는 모든 일을 중단하고 암만이나 다른 나라 어디로든 가서 몸을 보존하라 하십니다. 이 일에 대해 조사를 해보니(NGO 활동가 살해 말입니다.), 친구들 말이 현재 모든 NGO 활동가들이 몹시 위험한 상황이라 합니다. 대부분이 이라크를 떠난 상황이고, 이런 암살이 누군가에 의해 잘 조직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요즘은 몹시 조심을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집에 안 있고 다른 곳에 머무르고 있어요. 이런 상황 때문에 집에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컴퓨터로 이런 상황에 대한 조사도 잘 못하고 있어요. 오늘은 바그다드에 있는데, 얼마 전까지 집을 떠나있기 위해 바스라에 있었습니다.

사이드, 난 너무 무서워요. 내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습니다. 만일 내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내 가족들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사이드 도움이 필요합니다. 제발,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말해줘요, 가족들과 함께 집에 있어야 할지, 암만으로 가야 할지, 아니면.... 뭐라도.....

곧 인터넷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노력해 볼게요. 그리고 사이드 답이 필요합니다. 또 파라에게 이메일을 보낼 수 없는 상황이라고 좀 전해줘요, 부탁해요. 인터넷을 쓸 수 없고, 정말 무섭고, 가족들과 함께 있지 못하는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라고요. 가족들은 내 도움이 필요할 텐데, 집 걱정은 말고 가라고 합니다.

이런 느낌은 처음입니다. 굉장히 강열한 느낌입니다. 늘 나를 미행하는 사람이 있는 거 같고, 날 죽일 기회만 노리고 있는 것 같아요... 이 불안은 내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사이드에게도 전해지나요? 상상이 되나요, 내 기분?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보고 싶어요. 같이 이야기하고 싶고, 만나고 싶고... 그리고 한국에 있는 친구들 다 만나고, 보고 싶어요. 내 가족들과 함께 있고 싶어요... 난 그들은 사랑합니다...

답장 기다릴게요. 꼭 빨리 답장해줘요, 부디.

살람이. 


3. 닷새 전부터 어젯밤 사이 -연락이 되지 않는 살람

 아저씨가 보낸 편지를 전해 받은 뒤 어찌해야 할지, 아저씨를 어떻게 도와야 할지, 우리가한국에서 아저씨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막막하고 두려울 뿐이었습니다. 바로 목숨이 걸린 문제여서 섣불리 경솔하게 행동할 수도 없고, 이 소식 앞에서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부터 한국에서 함께 하는 이들과 어떤 의논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하는 문제까지 도무지 판단이 서지 않았습니다. 그저 막연하게 아직 이러한 소식은 준비 없이 공개된 게시판으로 올리거나 해서는 오히려 일을 그르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일단 이라크 활동 당시부터 살람과 개인적으로건 공적으로건 긴밀하게 관계를 맺어온 분들 몇에게 소식을 전하고 의견을 물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그러다가 그 날 밤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아저씨에게 서둘러 편지를 썼습니다. 시간을 기다리며 미룰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아직 아저씨가 이라크를 빠져나가는 것에 대해 흔들리는 것 같은데 어서 이라크를 빠져나가야 한다는 얘기부터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인터넷 사용이나 전화 통화가 될지는 모르지만 어쨌건 그 이야기는 꼭 전해야 했으니까요. 혹시 그릇된 조언을 하는 건 아닌가 싶어 내 판단에 자신이 없기는 했지만 한 시가 급한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날 밤, 살람 아저씨에게)

2005년 7월 26일 (火) 04:55 (한국시간)

 살람 아저씨, 로아이에요. 지금 처해 있는 이라크 상황과 아저씨의 소식에 대해서는 사이드에게 보낸 편지를 보고 알았어요. 많이 놀랐습니다. 아저씨가 느낄 그 감정이 그대로 제게 전해지는 것 같아 저도 등골이 오싹하도록 두려운 느낌에 휩싸였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아저씨를 도울 수 있는 것인지 당장 떠오르지 않았어요. 그저 겁이 나고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뿐이었습니다. 사이드에게 보낸 그 편지를 읽고 나서 지금은 네 시간 정도가 지났습니다.

아저씨, 이 편지를 언제쯤 받아볼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이 편지를 본다면 최대한 안전한 방법을 택해 이라크를 떠나가세요. 물론 서둘러야 하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침착함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해요. 떠날 곳이 암만이 좋을지 다른 어느 곳이 좋을지는 아저씨가 그곳 상황을 보아 판단하세요. 아무래도 아저씨가 지내기에는 다른 곳보다 암만이 괜찮지 않나 싶어요. 한국에서는 아저씨를 어떻게 도와드려야 할지 뚜렷이 떠오르는 생각이 없어요. 일단은 아저씨가 이라크에서 나가 안전을 확보하는 일이 가장 급한 일이겠지요. 그러려면 거기에 필요한 경비가 있을 텐데, 우선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힘을 모아 아저씨가 안전하게 피신 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경비를 마련해 볼게요. 하지만 아저씨하고 연락이 잘 안 되는 상태에서 돈을 마련한다 해도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그게 걱정이기도 합니다. 상황이 어렵겠지만, 혹시 연락을 줄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파라에게 전화를 하거나 메일을 보내주세요. 메일을 보낸다면 구체적으로 우리가 아저씨를 도울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만약에 돈을 보낸다면 어디로 어떻게 송금하면 되겠는지, 그도 아니면 우리 중 누군가 어디로 가서 아저씨를 직접 만나 돈을 전하면 좋겠는지. 아저씨는 이라크를 빠져 나가실 것인지, 이라크에서 나가면 어디로 갈 것인지, 우리가 한국에서 아저씨에게 연락하려면 어디로, 어떤 방법으로 연락하면 좋겠는지 하는 것들을 말해주셔야 해요. 그래야 한국에 있는 우리가 아저씨를 도울 수 있어요.

아저씨, 이스탄불에서 마지막 헤어지던 날 내가 했던 말 기억나요? 살아남아야 해요, 꼭 살아남아야 해요. 상황이 위험할 때 몸을 피하는 일은 절대 비겁한 일이 아니에요. 아저씨 몸은 아저씨만의 몸이 아니에요. 아저씨는 이제 막 평화의 씨앗을 틔우고 있는 이라크의 어린이들의 꿈이기도 하니까요. 우리 약속했지요? 살아내기로, 끈질기게 살아내기로 말이에요. 그리고 다시 우리 만나기로 약속했잖아요. 지금은 다른 것 아무 것도 생각하지 말고 아저씨의 안전만 생각하세요. 지금 아저씨가 해야 할 일은 최대한 아저씨 스스로 안전하게 지켜내는 일이에요.

아저씨, 이곳에서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너무나도 안타까워요. 그저 당장 아저씨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 이 무섭고 끔찍한 시간을 아저씨와 함께 하고 싶어요. 만약에 가족들이 걱정되면 상황을 보아서 가족들과 함께 이라크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지도 알아보세요. 하지만 그게 어떤 자격이나 절차의 문제로 불가능하다면 마음 약하게 먹지 말고 아저씨 혼자서라도 우선 이라크 바깥으로 나가세요. 위험의 원인이 엔지오 활동가이기 때문인 거라면, 그래서 표적이 된다면 그건 아저씨의 다른 가족들이 아니라 바로 아저씨일 테니까요. 보고 싶어요, 살람.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이에요. 무모하게 행동하거나 감정적으로 생각하면 안 돼요. 최대한 지혜롭게 아저씨가 살 수 있는 길을 찾아 그렇게 하세요. 또한 그 과정에서 우리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머뭇거림 없이 바로 도움을 청해주세요. 이건 아저씨가 내게 한 말이에요. "See you soon!". 정말 그 말처럼 우리는 곧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침착하게, 침착하게. 땅 밑에서 식물의 씨앗이 싹을 틔워내듯이 그렇게 마음을 다스리면서 우선은 이라크를 떠날 방도부터 찾아보세요. 아저씨는 이라크 어린이들에게나, 한국의 친구들에게나, 그리고 나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한 사람입니다. 아저씨의 소식 앞에서 너무나도 마음이 괴로워요. 연락이 닿고, 아저씨의 이후 움직임이나 계획, 요청 사항이 전해지면 거기에 맞추어 아저씨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을게요.

건강하세요, 그리고 위험한 상황을 피해야 해요.

또 연락드릴게요.

2005년 7월 26일, 한국에서 로아이.

 다행히 살람의 소식을 듣고 의견을 나눈 이들의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일단 살람이 한 시라도 빨리 이라크를 빠져 나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살람 뿐 아니라 살람과 함께 하고 있는 활동가들은 지금 당장 활동을 접어야 한다는 것, 이랬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살람이 몸을 피하는 일과 그이의 식구들을 위해 최대한의 지원금을 모아 보내주어야 한다는 것에 일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공포와 불안, 두려움에 떨고 있을 살람에게 그이는 혼자가 아니라는, 우리가 늘 곁에 있고 함께 할 거라는 마음을 전하는 일 또한 중요했습니다.

“편지 잘 읽었다. 나도 등골이 오싹함을 느낀다. 생략하고. 살람에게 보낸 편지 내용도 잘 읽었다. 그를 도와주어야 한다. 우리는 아니 이라크를 아는 사람들, 함께한 사람들은 그를 도와야 한다. 도와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거짓을 팔고 지낸 것이다. …… 너의 편지가 살람에게 전달이 되었으리라 믿는다. 꼭 그 편지를 살람이 읽어야 한다. 살람이 아니면 가족 모두 안전하게 피신하여 우리에게 연락을 주어야 한다. 힘든 일이겠지만 우리는 최대한 모든 지혜와 영향력을 모아 도와주어야 한다. ……  어찌할까! 살람과 연락이 되어야 할 텐데. 다른 나라로 안전하게 피신이 된다면 그를 도와줄 방도는 다각적으로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8월1일 한국에 도착한다. 도착하는 즉시 연락을 하마. 지혜롭게 상황을 잘 파악하고 함께 대처를 했으면 한다. 이라크 엔지오들과 가족들이 무사하기를 기도 중에 기억하마.” ( 김재복 수사님의 편지 가운데에서)

 그렇게 나흘, 살람의 다음 연락을 기다리는 일 뿐이었습니다. 어떻게든 살람과 연락이 닿기 전에는, 그리고 이곳에서 살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함께 입을 맞추기 전에는 어떠한 계획도 세울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러한 연락과 계획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는 역시 이 상황을 섣불리 알려내기가 조심스러웠습니다.

 아저씨의 연락은 바로 오지 못했고, 오지 않는 소식에 불안함만 커갔습니다. 


4. 살람의 편지 - 어젯밤 / 2005년 7월 28일 (木) 23:52 (한국시간)

살람의 편지는 처음의 것보다 훨씬 다급했고 흔들렸습니다. 살람은 지금 바그다드에 있는 친구의 집으로 몸을 피해 있고, 살람의 집 앞에는 살람을 노리는 것으로 보이는 이들이 차를 세우고 지키고 있다고 합니다. 살람의 식구들은 문 밖으로 나가지 못한 채 한 방에서 모여 지내고 있으며 누가 찾아온다 해도 그이가 누군지 확인이 될 때까지 문을 열지 못한 채 공포 속에서 떨며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 지난 편지에서 말한 살람의 친구 장례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길에서 살람의 일행은 한 자동차의 미행을 받았습니다. 위협을 직감한 살람의 일행은 경찰서 쪽으로 미친 듯이 차를 몰아 달아나려 했지만, 추적하던 그 자동차는 곧 살람 일행의 차를 바짝 쫓아 그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그 차 안에 있던 사람 넷은 모두 총을 가졌고, 그이들이 살람의 일행 쪽으로 다가서는 순간 다행스럽게도 이라크 경찰차와 미군부대가 그 길목에 들어서게 되어 총을 가지고 다가서던 그이들이 자리를 뜨는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살람의 편지에는 그 때의 공포가 여전히 짙게 배어 있었습니다.

살람은 두 번째 편지에서도 이라크를 빠져나가는 문제에서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식구들을 그 상태로 남겨둔 채 떠날 수 없는 심정 때문입니다. 하지만 살람은 또한 알고 있습니다. 그 곳에 그대로 머물러서는 곧 죽게 된다는 것을……. 한국에서 우리가 살람의 안전을 위한 지원금을 전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살람은 우선 식구들이 앞으로 살아가는 데 드는 최소한의 것을 마련해주기 전에 자신이 먼저 바그다드를 떠날 수는 없는 처지입니다. 누구라도 그러하겠지요.

“ …… 친구들, 내가 지금까지 살아있다는 게 놀라울 지경입니다. 이제, 내 목숨이 정말 진짜로 위태롭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상황 때문에 제대로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뭐가 나은 결정일까요? 바그다드를 떠나 목숨을 지키는 게? 아니면 가족들과 함께 지내며 뭔가 벌어지길 기다리는 게? 어떨 때는 가족들과 함께 있는 게 암만으로 가는 것보다 나은 결정 같아 보여요. 도망간다는 것은 날 부끄럽게 만듭니다. 하지만 가족들과 함께 있으면, 그들은 날 분명 죽일 거예요. 누군가의 죽음을 보는 건 정말 괴로운 일이지요, 하지만 지금 나에게 더 어려운 건 우리 가족 중 누군가가 죽는 걸 보는 겁니다. …… 내 목숨은 지금 정말 위험합니다. 그것 하나는 확실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내 가족들까지 헤치고 싶은지는 확실히 모르겠습니다. 가족들 모두 나에게 암만으로 가라 하지만, 난 아직 뭐가 옳은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내 심정이 이해 돼요? …… 다들 나 때문에 우리 가족들이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 잘 알거라 생각해요. 나 때문에 바그다드에서 몹시 비참한 삶을 살고 있죠. ……  하지만 그것보다 더 내 가족들에게 비참하게 할 일은 누군가 우리 집 문을 두드리며 나에 대한 나쁜 소식을 전하는 일일 겁니다. …… 지금 내 심정은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여러 분들이 지금 정말 필요해요. 지금 여러분 도움이 필요합니다. …… 그리고 부탁할 것은, 만일 내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꼭, 꼭, 꼭 내 온 마음을 다해 여러 분을 사랑했다는 거 알아주세요. 그리고 내가 최선을 다 했다는 것도. 그리고 내가 여러분과 함께 맺었던 우정으로 참 행복했다는 것을. 여러 분은 늘 내 가슴 속에 있습니다, 온 마음으로 사랑합니다. 그리고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안부 꼭 전해주세요.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영원히. 만일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 난 다시 태어난 것 같은 기분일 거예요. …… 친구들 안녕. 마음 깊은 곳에서 사랑을 전합니다. 다시 또 만날 수 있길 바랍니다. 날 위해 기도해줘요. 살람. 이라크에서.” - 살람의 두 번째 편지 가운데에서  


5. 살람 아저씨를 살리는 일

살람 아저씨가 처한 소식을 알게 된지 이제 닷새가 지났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으로서는 많지 않아 보입니다. 현실적으로 가장 급한 일,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살람과 그 식구들이 살아갈 수 있는 돈을 마련해 보내주는 일입니다. 이제는 시간을 더 지체할 수가 없습니다. 살람 아저씨가 바그다드를 떠나려면 우선 아저씨가 없는 상태에서 아저씨의 어린 아이들과 식구들이 그 어둠 같은 시간을 버텨낼 수 있을만한 생활비를 지원하는 일입니다. 그것을 해결하지 못하면 아저씨는 바그다드를 떠나지 못할 것이고, 그래서는 아저씨와 아저씨의 식구들 모두에게 생각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아저씨를 위해서도, 아저씨의 식구들을 위해서도 일단 아저씨가 바그다드를 떠나는 일이 급선무, 일단 급한 것은 아저씨가 마음 놓고 바그다드를 떠날 수 있도록 식구들에게 전할 생활비를 모아주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걱정은 암만 구좌라는 것이 한국에서 돈을 보내면 일주일이나 지나서야 바그다드에서 돈을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간이 많지 않아요.

일단 8월 1일 (월요일) 오전에 1차 송금을 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저씨가 돈을 찾게 될 날은 8월 8일쯤, 오늘부터 해도 열흘이 더 지나야 가능하게 됩니다. 하루, 한 시가 위급한 상황 속에서 열흘도 길어 보입니다. 누군가는 그것도 안 된다고, 아저씨에게 연락을 취해서 당장이라도 이라크를 나가는 쪽으로 생각하게 하라고, 식구들에게 돈을 전하는 일은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고 안타까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당장 아저씨와 자주 연락을 나누며 대화할 수 있지도 못하고, 아무래도 아저씨는 식구들에게 어느 정도 대책을 마련해주지 못한 상태에서는 움직이지 않을 듯싶어 보입니다.

살람 아저씨가 이라크를 나가 암만이나 그 밖의 어느 곳으로 몸을 피하게 된다면 그 뒤로는 조금 더 차분하게 대책을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 뒤에도 계속해서 아저씨가 몸을 피해 생활할 돈과 아저씨의 식구들에게 전할 돈을 마련해야겠지요. 그 때는 좀 더 짜임 있고 안정되게 지원의 방법이나 크기, 뒤따를 상황에 따른 대책 마련을 함께 하면서 말이지요.

아닌 게 아니라 살람 아저씨와 함께 관계를 맺으며 활동을 할 때부터 이러한 걱정은 늘 안고 있었습니다. 이라크에서는 한국인 활동가를 거의 보호하다 시피 하며 지내었고, 한국의 전범민중재판에 증인으로 오는 일이나 터키 국제전범재판에 참가하는 일, 그리고 국경없는어린이(CWB)라는 모임을 만들어 평화배움터 준비나 어린이들 편지 나눔 일을 하는 것까지 아저씨가 하는 일은 이라크 사회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눈에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점령에 협조하는 쪽이거나 점령에 반대하는 쪽 할 것 없이 이미 아저씨가 하는 일은 알려졌을 테니 말이지요. 그래서 한국에 와서 증언 활동을 하는 일이나 그 밖의 여러 가지 기자회견이나 인터뷰 같은 언론에 노출되는 일들 앞에서 몇몇 이들은 이미 크게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본다면 한국의 반전평화운동 진영은 어느 정도 살람 아저씨에게 많은 부분 기대고 오히려 도움을 얻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범민중재판이나 그 밖의 간담회, 증언회, 기자회견들에서 살람 아저씨의 역할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커다란 자리였습니다. 물론 그것은 아저씨가 원한 것이기도 했고, 아저씨로서는 한국의 반전운동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라크의 평화를 위해 앞으로 닥칠 신변의 위협을 무릅쓴 것이었겠지요. 한국에서 그러한 자리를 준비한 이들 또한 이라크를 위한 일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함께 되돌아보았으면 합니다. 아니, 적어도 지금 살람이 처한 상황을 우리의 문제로 함께 여겼으면 합니다. 전쟁터에서 건너 온 사람 살람 가드반, 그이를 위험 속에 노출시켜가며 함께 활동을 하는 동안 혹시 이 쪽의 필요에 따라서만 손을 내밀지는 않았는지, 한국에서 벌이는 활동의 필요가 아니라 그이의 활동에 대한 지원과 연대를 지속적이고 구체적으로 함께 해 왔는지……. 또는 그저 한 사람의 '이라크인'이 아니라 한국인들과 맺은 관계를 가슴 깊이 소중히 여기고 있는 하나의 인간, 친구로 여겨왔던지.

살람 아저씨를 살리는 일에 마음 모아 함께 해요. 2003년 이라크민중지원 활동 때부터 한국팀과 함께 이라크 자치 운동을 함께 벌여온 활동가, 한국인 활동가들을 현지에서 지원해주고 때로는 위험에서 돌보아주던 현지인, 한국 전범민중재판의 증언자이며 터키 국제전범재판의 한국팀과 함께한 동지. 그리고 한국과 이라크 어린이들의 편지 나눔을 함께 벌이고 있는 두 나라 어린이들의 벗이자 평화배움터라는 이라크 아이들의 꿈을 살리는 일, 우리 가슴 속의 사랑을 지키는 일.  

2005년 7월 29일 바끼통 편지에서

2005. 8. 1  /  박기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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