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는 이라크에서 철수할 수 있을 것인가?
부시는 이라크에서 철수할 수 있을 것인가?
  • 정욱식대표
  • 승인 2005.08.03 10: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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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진단] 사면초가에 몰린 부시의 선택은

아마도 21세기에 인류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숙제는 부시 행정부의 침공으로 시작된 이라크의 비극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침공 2년 반이 지나도록 이라크의 상황은 안정화되기는커녕, 저항세력의 무차별적인 테러와 이에 대한 보복으로 '피의 악순환'이 확대재생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더구나 최근 런던과 이집트 시나이 반도의 고급휴양지 샤름 엘-셰이크 등에서 발생한 테러 사건은 이라크 전쟁이 '전선 없는 전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일깨워주고 있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이라크인들의 고통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이미 사망자 수는 최소 4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끊임없는 유혈사태로 정상적인 생활 자체가 어렵다고 한다. 특히 이라크 어린이의 4분의 1이 만성적인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고, 의료·보건체계도 복구되지 않고 있다.  

이라크 내 유혈사태의 양상도 갈수록 복잡하고 대담해지고 있다. 최근 이라크 알-카에다는 주이라크 이집트 대사를 납치·살해한데 이어, 2명의 알제리 외교관도 살해했다. 또한 지난 주에는 수니파 헌법기초위원 2명의 암살로 수니파 대 시아파의 내전 양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듯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24일 "최근 각 분파간, 특히 저항세력간의 보복살인이 크게 늘어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많은 이라크인들은 내전이 이미 시작됐다고 말하고 있다"고 전했다.

부시,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쥔 부시 행정부는 미군 사망자가 2천명에 육박하고 연일 수십명의 이라크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며 이라크 정책을 변경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다만 이라크 보안군의 치안유지 능력이 확보되고, 이라크 헌법이 제정되어 새로운 정부가 구성되면, 미군 감축에 들어갈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조건부 감축' 계획이다. 향후 정치 일정이 미국의 뜻대로 되지 않거나 이라크 보안군의 치안유지 능력도 확보되지 않으면, 미군을 계속 주둔시키겠다는 의미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더구나 부시 행정부는 완전철수가 아니라 상당 규모의 미군을 이라크에 계속 주둔시킨다는 방침이다.

이러한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정책은 이라크에서의 민주정부 수립 및 안정 회복의 가장 큰 걸림돌이 미군 주둔에 있다는 점에서 진단과 처방이 뒤바뀐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이라크의 유혈사태를 확대재생산시키면서 미국이 '베트남의 악몽'으로 빠져드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사면초가에 몰리고 있는 부시 행정부

1990년대 후반부터 이라크 침공을 주창해온 미국 네오콘들에게 부시 행정부의 출범과 뒤이은 9.11 테러는 자신들의 오랜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로 인식되었다. 그리고 이라크 점령을 통해 세계 2위의 석유 매장량을 장악하고 중동 전체를 친미 질서로 대체하면, '제국의 문'을 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침공의 명분으로 삼았던 대량살상무기는 발견되지 않았고, 알-카에다와 후세인 정권 사이의 연계설도 근거없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미국의 체면은 땅에 떨어졌다. 더구나 2003년 5월 1일 부시 대통령이 승리를 선언한 이후에 오히려 전쟁이 본격화되고 전쟁 비용도 폭등하면서 미국 안팎의 여론은 더욱 싸늘해지고 있다.

실제로 침공 초기 70%를 넘나들었던 부시의 이라크 정책에 대한 미국 여론의 지지율은 50% 미만으로 떨어진 지 오래다. 특히 미국 내에서 '이길 수 없는 전쟁'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미군 철수 여론도 높아지고 있다.

9.11 테러 및 국가안보지상주의에 짓눌려 있던 민주당이 공세의 고삐를 당기고 있는 것 역시 주목할 현상이다. 이들은 부시가 미군 철수 시기를 밝히지 않는 것이 사태 악화의 주요 요인이라며 부시 행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부시의 이라크 정책 비판 대열에는 일부 공화당 의원들도 가세하고 있다.

부시의 이라크 군사 계획도 차질을 빚고 있다. 이라크 저항세력 척결을 이라크 사람들에게 맡기고자 군과 경찰을 양성해온 '이라크화'(Iraqization) 작전은 점차 실패로 끝나고 있다. 이라크 현지 미군 사령관들조차 이를 자인하면서 이라크 군경이 저항세력을 효과적으로 제압할 수 있는 데에는 수년이 더 걸릴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라크 정책에 대한 지지율과 함께 급락하고 있는 신병 숫자도 부시의 지속적인 이라크 정책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 되고 있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신병 지원율이 크게 떨어져, 육해공 모두 20% 안팎의 미달이 발생하고 있다. 더구나 군대 지원 연령기에 접어든 자식들을 둔 베트남 전 반전 세대들이 대대적인 입대 지원 반대 운동까지 벌이고 있어 부시 행정부를 더욱 당혹케 하고 있다. 이라크에서 미군 사상자가 끊이지 않고 전쟁의 부도덕성이 만천하에 알려지면서 미국인들의 빗나간 애국주의 열풍도 한풀 꺾이고 있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이 "우리편에 서든, 적의 편의 서든 양자택일을 하라"며 강요한 이른바 '의지 연합'(coalition of willing)도 약화되고 있다. 한때 34개국에 달했던 파병 국가들은 현재 20개국 수준으로 급락한 상황이고, 부시가 '새로운 유럽'이라고 치켜세웠던 우크라이나와 강력한 동맹국인 이탈리아도 철군 내지 감군에 들어갈 예정이다.

향후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정책의 가장 큰 장애물은 대다수 이라크인들이 미군 철수를 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후세인 정권의 주된 지지기반이었던 수니파는 물론이고, 침공 초기 미군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보였던 시아파들도 미군 주둔에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2005년 1월 미국의 브루킹스 연구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수니파의 82%와 시아파의 69%가 미군의 초기 철수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갈수록 싸늘해지고 있는 이라크인들의 민심은 부시 행정부에게 엄청난 부담을 주고 있다. 부시 행정부가 공언해온 것처럼 '자유선거'를 통해 이라크에 민주정부가 수립될 경우, 새로운 정부가 자국의 여론을 의식해 미군 철수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라크의 미래, 어둠 속으로

우선 관건은 향후 예정된 정치 일정이 무사히 치러질 수 있느냐에 여부라고 할 수 있다. 향후 주요 정치 일정은 8월 15일에 헌법 초안을 마련하고 10월 15일 국민투표를 거쳐, 12월 15일 새헌법에 근거한 총선을 치르고 12월 31일 정부가 출범하는 것으로 짜여져 있다. 부시 행정부는 이러한 정치 일정이 무난하게 진행되고 이라크 보안군의 치안유지 능력이 강화되면, 철수를 시작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부시의 이러한 계획은 희망사항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특히 과거의 사례와 현재의 양태를 볼 때, 이라크 헌법 제정 등 정치 일정을 무산시키기 위한 저항세력의 공격도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러한 대혼란을 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부시 행정부가 구체적인 철군 계획을 밝히고, 과도정부를 포함한 저항세력과의 평화협상에 들어가는 것밖에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저항세력을 테러집단으로 규정하고 이들과 협상하는 것은 테러에 굴복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부시의 미국'으로부터 희망의 근거를 찾기가 어려운 까닭이기도 하다. 

정욱식/2005년 7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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